[주체의 해석학 읽기] 휘폼네마타 2회차

자작나무
2026-01-14 11:59
32

서양 철학책을 읽는데 밑도 끝도 없는 당나라 때의 미인(당삼채) 인형!!!

 

오늘날의 시선에서는 미인인가?!? 라는 생각이 들지만^^ 미인이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변천하여 오늘날에 도달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때 그들은 왜 위의 인형의 모습을 혹은 그 인형 배후의 요소들로 미인을 규정하고 있을까, 그렇게 역사적으로 탐구하는 방법을 오늘 또다시 <주체의 해석학> 책을 읽으면서 배워갑니다.  

 

메모는 오늘 오후 2시까지!! 덧달기로 올려주세요.

댓글 6
  • 2026-01-14 12:06

    65쪽 주체가 자신의 존재를 변형시키는 대가로만 획득될 수 있다고 생각된 연금술과 방대한 지식의 주요 부분들은 과학과 영성 간에 구성적, 구조적 대립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잘 증명합니다. 대립은 신학적 사유와 영적 요청 간에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단절은 근대과학의 출현과 더불어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요컨대 분리는 신학의 주변에서 그 기원과 전개를 찾을 필요가 있는 완만한 절차였습니다.

    97쪽 플라톤이 배려해야 할 자기를 찾기 위해 khresis 개념을 사용했을 때 그가 발견한 것은 실체로서의 영혼이 결코 아니라 주체로서의 영혼입니다… 즉 자기 배려는 우리가 다수의 ‘무엇인가의 주체’인 한에서 자기 배려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기제적 행위의 주체, 타자와의 관계의 주체, 일반적 행동과 태도의 주체, 자기와의 관계에서의 주체인 한에서 자기 배려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115쪽 그 결과 플라톤주의는 고대 문화와 유럽 문화 전반에 걸쳐 이중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플라톤주의는 진실 접근을 위해 필요한 영성 조건들을 부단히 다시 제기함과 동시에 인식, 자기 인식, 신성 인식, 본질 인식 속에서 영성이 요청하는 바를 제거시킵니다. 바로 이 점이 <알키비아데스>와 이 텍스트가 여는 역사적 관점과 관련해 내가 논의하려 한 바입니다.

  • 2026-01-14 12:27

    1/6일자 강의 후반부를 이어서 1/13일자 강의는 자기 배려라는 표현이 나타나게 된 맥락 혹은 요소를 4가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푸코는 이것을 <알키비아데스> 정독을 통해서 발견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첫번째 요소를 푸코는 이렇게 적습니다.

    76쪽)자기 배려의 필요성은 권력 행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자기 배려는 알키비아데스의 특권과 같은 신분적 특권에서 한정된 정치 행위, 아테네의 실제적 통치로 넘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돌보기'는 타인들에게 정치 권력을 행사하려는 개인의 의지에 내포되어 있고 또 거기로부터 연역됩니다. 자기 자신을 배려하지 않으면 타자들을 잘 지배할 수없고 자신의 특권들을 타인들에게 가하는 정치 행위로 변환시킬 수 없으며, 합리적 행위로 변환시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 배려의 출현 지점은 특권과 정치적 해위 사이에 놓이게 됩니다.

    이를 다시 정리하길 "일인자들의 신분과 통치 능력 간의 관계가 문제시되는 세계"가 자기 배려의 성격을 규정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푸코의 책을 읽다가 그가 <알키비아데스>라는 텍스트를 꼼꼼히도 읽어서 잘 정리해냈다고도 생각하지만 그의 정리에는 플라스 알파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바로 어쩌면 철학자의 자질이겠지만...푸코는 텍스트 속의 자기 배려의 의미 혹은 그 조건들을 정리하면서 거기서 하나의 혹은 둘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 문제에 대한 탐구가 플라톤 이후의 자기 배려의 성격을 낳았고 철학적 사유가 진척되었다고 보입니다. 가령 푸코가 <알키비아데스> 읽기에서 찾아낸 문제는 바로 자기 배려라고 할 때의 '자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입니다. 이것은 1/13일자 전반부 강의에서 말해집니다. 두번째 문제는 "이 배려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인데 이것은 1/13일자 강의 후반부에서 설명됩니다.

    92쪽)"내가 어떤 종류의 동물에 속하고,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는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 관계는 무엇이며, 재귀대명사 자기는 무엇을 지시하며, 주체의 측면이나 대상의 측면에서 동일하나 이 요소는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돌보아야 합니다. 즉 내 자신을 돌보아야 할 자는 나이며, 그러고 나서 나와 동일한 무엇을 돌보아야 하고, ~을 배려하는 주체와 동일한 무엇을 돌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대상으로서의 나 자신입니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어서 여기서의 자기는 바로 영혼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이 말입니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행위 주체로서의 영혼입니다. 즉 그것은 신체, 신체의 기관, 신체의 도구들을 사용한다는 한에서 영혼입니다."(96) 이렇게 발견된 영혼은 "실체로서의 영혼이 결코 아니라 주체로서의 영혼"(97)입니다.

    1/13일자 강의 후반부는 배려는 무엇으로 이뤄졌는가에 대해서인데, 이에 대해서 그는 "<알키비아데스>의 결정적 한순간" 나아가 "플라톤주의의 구축의 순간, 유구한 자기 테크닉과 자기 배려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에피소드가 구축되는 순간"(104)을 발견합니다. 즉 그것은 자기 배려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자기 인식을 중심으로 모든 기술들의 총체적 재구성이 이루어집니다.(104) 그러면서 또 다른 문제가 등장하죠. "배려해야 할 자기를 잘 알 필요가 있다"(105)는 자기 배려와 자기 인식의 착종 형태로 드러나겠지만, 어쨌든 자기 인식의 문제가 다시 거론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푸코는 눈의 은유를 들어서 설명하면서, 앞서 말한 자기=영혼이라는 공식을 깨면서 다시 영혼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이건 뭐 '꼬꼬무'입니다. 계속 문제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어떤 규정된 것들 정의들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 그게 오늘날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 2026-01-14 14:51

    95쪽, 구두수선공 이야기.
    무얼 동작하기 위해 손을 움직일때, 우리는 무엇을 하는걸까요?
    거기에는 먼저 손이 있고, 그리고 이 손을 사용하는 사람, 손을 사용하는 부분인 주체가 있다.
    -신발 절단용 칼
    -이 연장을 사용하는 주체
    신체가 무슨 일을 할때, 신체를 사용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 신체를 사용하는 이 부분은 무엇일까?
    그것은 신체 그 자체는 아니다. 신체는 스스로를 사용할수 없다.
    ...(96쪽) 신체를 사용하는 요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영혼이다.
    ...(화두선에서 이손가락을 움직이는 이놈은 무엇인가? 손, 신경세포, 뇌, 마음?)

    97쪽 Khresthai
    theois khresthai 신을 이용하다, 이말은 '인간이 신과 적합한 관계를 유지하다'이다.
    즉 신을 경배하고 숭배하고, 신과 더불어 자신이 해야할 바를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khresthai heauton 자신을 이용하기
    마찬가지로, 자기를 숭배하고 자신과 더불어 자신이 해야할 바를 행하는 것이다.

    플라톤이 자기배려하는 표현에서 heauton이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 khresthai 개념을 사용한다. 이 개념이
    그래서 플라톤은 영혼이 신체와 맺는 도구적인 관계를 말하것이 아니라,
    자기를 둘러싼 것들, 자기가 이용하는 대상, 자신이 관계한 타자, 자신의 신체, 자기자신에 관련하여
    영혼의 독특한 초월적 입장을 지시하는것이다.
    영혼이 자기를 숭배하고 자신과 더불어 자신이 해야할 바를 행하는 것으로
    실체적인 영혼이 아니라. 주체하는 영혼, 주체를 만드는 영혼을 말한다.

    106쪽. 눈의 비유
    눈은 자기와 동일한 속성을 가진 것 에서 자신을 볼수 있다. 거울속에서 더 나아가 신 속에서.
    영혼은 자기 시선을 '자신과 동일한 속성을 갖는 요소로 향할때, 영혼은 자신을 볼수있다. 즉
    영혼과 동일한 속성인"사유와 인식'을 가진 요소, 즉 신성. 신 이다.
    그래서 영혼은 신으로 향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파악할수 있다.
    그래서
    107쪽, 이 운동은 '신을 인식하는 것'을 자기 인식의 조건으로 만든다.
    자기 배려를 위해서는 자기를 인식해야하고, 자기인식을 위해서는 자기와 동일한 요소내에서 자기를 응시해야한다.
    이 요소는 신적 요소이다. 따라서 자기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신적 요소 내에서 자기자신을 응시행한다.
    자신을 보기위해서는 신을 인식해야한다.

  • 2026-01-14 14:55

    65쪽 "여기서 인식 주체는 신(神)에게서 자신의 모델, 완결 지점, 최상의 완벽성을 발견하고, 그와 동시에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주체의 일치는 서구의 사유로부터 분리시키고 해방시킵니다."

    같은 쪽 "5세기 말(성 아우구스티누스)부터 17세기까지를 관통하는 기독교의 주요 분쟁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2세기 내내 그건 영성과 과학 간의 분쟁이 아닌 영성과 신학 간의 분쟁이었습니다."

    ☞ 근대 이전까지 영성은 과학이 아닌 신학과 대립했던 것으로 푸코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립이 아닌 영성과 신학의 분쟁으로 보는 분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67쪽 "19세기 철학사 전반은 데카르트 이후로, 아무튼 17세기 철학 이래로 영성의 구조들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던 철학의 내부에서 영성의 구조들을 재성찰하기 위해 가한 일종의 압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1) 고전철학의 전통: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 주체 실존의 자명성, 자기 인식의 중요성
    2) 스피노자의 <지성개선론>: 진실 접근에서 주체 존재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
    3) 칸트: 영성의 구조들이 철학적 성찰/지식으로부터 사라진 게 아님을 보여줌
    4) 헤겔, 셸링, 쇼펜하우어, 니체, 후설, 하이데거: 영성이 신뢰성 잃고 비판적으로 고찰
    5) 헤겔의 <정신현상학>: 영성의 구조가 인식, 주체 존재 변형과 연관
    * 고전 철학 vs. 19세기 철학(영성 문제 제기, 자기 배려를 무언중에 발견) 간 '적대성' 존재

    84쪽 "상징적 작용으로 환원 불가능한 주체화 절차로서 '자기 테크놀로지'(자기 테크닉)의 정의:
    "인간이 자신의 행동 규칙들을 스스로 정하고 자신의 고유한 존재 내에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변모시키며 자신의 생(生)을 작품으로 만들려고 하는 숙고된 자발적 실천"...나에겐 자기 테크닉이 있는가?

    115쪽 '플라톤주의의 역설': "플라톤주의는 진실 접근을 위해 필요한 영성 조건들을 부단히 다시 제기함과 동시에 인식, 자기 인식, 신성 인식, 본질 인식 속에서 영성이 요청하는 바를 제거시킵니다."
    ☞ 플라톤주의가 영성 운동의 토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영성을 요구하지 않는 순수 인식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환경을 제공함.

  • 2026-01-14 16:40

    2회차 휘폼네마타

  • 2026-01-14 17:37

    ∎ 이번 회차에서 이야기하는 자기배려를 '행위주체인 영혼(자기)을 배려함으로써 주체를 변형시켜 진리(지혜)에 접근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영혼을 배려한다는 것이 곧 신성을 인식하는 것이고요. 우선 이렇게 이해하는게 맞는가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 p104, "자기자신을 인식하기 위해 우리를 기만하는 감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 부동의 견고성 내에 영혼을 설정해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돌본다는 자기배려란 결국 감각으로 구성된 나를 자아로 착각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과 동시에
    영성을 회복한 자기가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주체로 서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 p115, "자기 인식과 진실의 인식은 영성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자기 안에 흡수하여 제거해 버립니다."
    "플라톤주의는 진실 접근을 위해 필요한 영성 조건들을 부단히 다시 제기함과 동시에 인식, 자 기인식, 신성 인식, 본질 인식 속에서 영성이 요구하는 바를 제거시킵니다."라고 나와있는데요,
    제거한다는 부분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p114 하단의 합리성 부분과 관계있는 것 같은데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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