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법술세 탐구(2) 술이란 무엇인가

두루미
2024-06-11 06:34
1448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2)

술이란 무엇인가

 

『한비자』의 술(術)은 일반적으로 ‘권모술수’라고 알려져 있다. 누군가의 전략전술이 정당하지 못할 때 주로 권모술수라고 하지 않는가. 가령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동료를 향해 우영우는 “권모술수 권민우”라고 별칭을 붙인다. 이처럼 우리에게 권모술수는 부정적이다. 정말 한비의 술은 권모술수일까? 왜 권모술수라고 불리는 걸까? 한비의 술을 탐구해보자.

 

 

『순자』의 욕망론으로 인간관계를 파악하다

한비는 순자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 제나라 직하학궁에 모인 학자들(제자)은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 다양했다. 이 당시 유세가였던 그 역시 이런 제자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의 저서 『한비자』에서 순자에 대한 언급이 소략한 점, 마찬가지로 순자의 저서에서 그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 등을 따져볼 때 이들은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한비가 당시 유행하던 『순자』를 읽고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한비자 교양강의』, 가이즈카 시게키, 돌베게)

 

나는 이전 『순자』에 대한 글에서 그의 성악설을 욕망론으로 재해석한 바 있다. 순자에게 욕망이란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될 만한 일은 싫어한다. 그에게 욕망을 좇는 일 그 자체는 악이 아니다. 다만 자기 욕심만 채우다 분별심을 잃게 되는 것이 악이다. 한비는 순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인간 관계론을 펼친다.

 

어린아이일 때 부모가 양육을 등한히 하면 자식이 자라서 원망한다. 자식이 장성하고 어른이 되어 부모 봉양을 소홀히 하면 부모가 노여워하고 꾸짖는다. 어른이 되어 부모 봉양을 소홀히 하면 부모가 노여워하고 꾸짖는다. 자식과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이다. 그러나 혹 원망하고 혹 꾸짖는 것은 모두 서로 위한다는 마음만을 가지고 자신을 위한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저설 좌상」)

 

한비에게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이해득실의 유무이다. 전국시대 말 전쟁에 내몰린 백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 처자식을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어린 자식을 돌보기 어려웠고, 또 이렇게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 자식은 자기 부모를 섬기는 데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자식에게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챙겨주지 않는 부모는 그 자식에게 원망의 대상일 뿐이다. 그는 가장 가까운 부모 자식 간일지라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사랑)만으로 관계가 유지될 수 없음을 간파한다. 가령 군주가 봉록과 관직을 내리는 것은 신하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신하 역시 군주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들이 서로 이득을 주고받기 때문에 군신관계가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술은 이러한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정치방법론이다.

 

신불해의 술은 무위다

한비는 신불해의 술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사기』에 따르면 신불해는 정나라 출신으로 한비가 태어나기 100여 년 전 한비의 조국 한나라에서 재상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재상으로 지낸 15년 동안 나라는 잘 다스려졌고 군대가 강성하여 어느 나라도 침범하지 못했다고 사마천은 전한다. 그의 저서 『신자』(申子)는 일찍이 소실되었고, 「대체」편을 비롯한 일부 자료만 남았기 때문에 그의 술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먼저 『한비자』에서 언급된 신불해의 술 개념을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법은 백성들에게 성문법을 제정, 공포하는 것인 반면, 술은 군주가 가슴에 숨겨두었다가 필요시 신하들에게 비밀리에 사용하는 것이다. 술이란 측근조차 왕의 의중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법과 반대로 은밀한 성격을 지닌다. 이때 술은 군주가 백성이 아니라 신하를 부리기 위한 술책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군주는 자신의 욕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까운 신하에게 숨기면서 이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왜냐하면 군주가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낯빛에 드러내면 군주의 낯빛을 신하가 자신의 일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군주는 어떻게 자신의 낯빛을 감출 수 있을까?

 

뛰어난 군주는 일견 어리석은 체하면서 천하에 무위무능(無爲無能)을 가장하여, 자신의 의지를 신하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힘써야 하며 무위함을 천하에 보여야 한다.(『신자』 「대체」편)

 

 

신불해의 술은 “무위”가 전제조건이다. 그에게 무위란 군주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대신 신하가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군주는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재능을 뽐내지도 말아야 한다. 그리할 때 신하는 가감 없이 자신의 욕망을 왕 앞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왕은 신하들의 입과 눈, 귀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왕은 무위할 뿐만 아니라 무능해야 한다. 여기서 무능은 능력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왕이 신하의 업무를 직접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로써 군주는 신하를 능력과 실적에 따라 평가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평가를 통해 신하가 일을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조정에는 일 잘하는 능력자들만 남게 된다는 논리이다. 이로써 왕은 일하지 않고(무위) 반대로 신하는 열일하게(유위) 된다는 것이 신불해의 술치이다.

 

그러나 한비는 신불해의 술치 역시 상앙의 법치와 마찬가지로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한비자』 「외저설 좌상」에는 한나라 소후가 신불해에게 법도를 실행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신불해는 그 이유가 왕이 법률을 제정하고도 측근들의 청탁을 들어주기 때문이라고 충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불해는 왕에게 자신의 사촌을 벼슬시켜달라는 청탁을 넣게 된다. 이처럼 한비의 입장에서 신불해는 자신이 만든 법을 스스로 어김으로써, 법을 엄밀하게 실행하는 데는 실패한 정치가이다. 오늘날 신불해는 넓은 의미에서 법가로 분류되지만, 그는 법치보다는 술치의 사상가라고 볼 수 있다.

 

한비의 술은 법술 정치이다

한비의 술은 법술 정치이다. 1편에서는 한비의 법이 특권세력(권신)을 타파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밝히는데 주목했다. 술 또한 마찬가지이다. 술의 목적은 왕이 누구에게도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권신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는 법만으로도 안 되고 술만으로도 안 되는 뼈아픈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며 법과 술의 종합을 강조했다. 상앙은 자신의 변법을 성공적으로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간악한 신하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술을 사용할 줄 몰랐기 때문에 왕이 죽자 태자를 비롯한 권신들에게 찢겨 죽임을 당했다. 이와 반대로 신불해는 술에는 능했지만 한나라의 구법과 신법을 하나로 통일하지 못했기 때문에 권신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법을 오락가락 임의대로 사용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때문에 소후가 술을 씀에도 권신들의 속임수를 막을 수 없었다. 상앙과 신불해 둘 다 재상까지 오른 성공한 정치가임에도 불구하고, 한비는 이들이 한 사람은 법에 미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술에 미진하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법 따로 술 따로 혹은 법 없는 술이나 술 없는 법은 정치적인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렇게 그는 자신처럼 법술 정치를 유세하는 자들을 법술지사(法術之士)라고 칭한다.

 

 

하지만 법술지사의 길은 멀고 험하다는 것을 한비는 예견한다. 「화씨」편에서 그는 군주의 법술을 보옥(寶玉)으로 비유한다. 어느 날 화씨가 옥덩어리를 발견하고 군주에게 바친다. 그러나 옥 감정사가 두 차례에 걸쳐 이것을 보옥이 아니라고 감정하는 바람에 화씨는 두 발이 잘려나간다. 마지막 세 번째에서야 화씨의 옥덩어리는 보옥으로 감정을 받는다. 그는 이 고사를 인용하여 법술 정치가 군주에게 보옥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토록 법술 정치가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는 그의 정치가 당장은 모든 이들에게 손해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법술에 따르면 신하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관직과 임무를 맡게 되므로 군주와의 친분을 내세워 월권할 수 없다. 떠돌던 백성은 때에 맞춰 농사일을 하느라 이전 보다 힘을 더 쓸 수밖에 없다. 이제 선비에게조차 글을 읽는 대신 군사로 전쟁터에 나아갈 것이 요구된다. 그에게 법술은 부국강병이라는 이득을 가져다주는 보옥이었다.

 

현명한 군주는 임무를 각기 서로 충돌하지 않게 시키므로 분규가 없고 사(士)로 하여금 여러 개 벼슬을 겸직시키지 않으므로 “개인 기능이 발달”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공을 노리도록 시키지 않으므로 다투는 일이 없다. (「용인」 419~420p)

 

한비의 술에는 대표적으로 용인술(用人術)이 있다. 신불해의 술이 군주가 신하를 부리는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면 한비는 보다 체계적인 용인술을 제시한다. 특히 진제국이 통일이후 군현제를 중국 전역에서 최초로 실시하게 되면서 한비의 용인술은 급격히 늘어난 관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정책으로 사용된다. 군현제란 중앙관료를 지방으로 파견하여 직접 통치하는 것으로, 상앙 때도 일부 실시된 제도이다. 하지만 넓어진 땅덩어리만큼 관료들의 숫자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가 필요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군신관계에 입각한 관료제도가 요구되었다. 군주는 신하의 직책과 권한을 분명히 하고 겸직을 금한다. 이렇게 확보된 시간을 이용해서 각자 “개인 기능을 발달”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신하는 자신의 직책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전문성이 높아지면 신속 정확한 행정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되고 상호간의 대립과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용인술은 관료의 전문화, 분업화와 관련이 있다.

 

권모술수를 넘어서기 위하여

요즘 우리에게는 ‘대통령의 격노’가 핫이슈다. 윤석렬 대통령이 참모들의 보고를 듣고 화를 냈다는 기사가 아무렇지 않게 메인 뉴스를 장식한다. 대통령도 사람인데 울고 웃고 화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한비는 감정표현 자체가 안팎으로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참모들은 거짓 보고를 하거나 보고 내용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29표 대 119표라는 “부산 엑스포 참사” 같은 스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 아닐까. "대통령이 화내는 게 죄냐?"는 대통령실의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도리어 참모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꼴이 됐다는 걸 이들은 아직 모르는 걸까. 이제 국민에게 대통령의 격노는 메시지가 아니라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한비의 술은 군주가 신하를 속이기 위한 권모술수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신하의 속임수를 대비하는 군주의 방책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왜 한비의 술은 권모술수로 치부되었을까? 진시황의 정책은 거의 전부 한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시황제의 온갖 기행 중 누구에게도 자신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 신비주의 컨셉은 특히 한비의 술에서 단초를 얻은 것으로 추측된다. 한비의 입장에서 군주가 신하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신하들을 괴롭히지 않기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마음과 판단력을 흐리지 않기 위함이다. 군주가 신하 앞에서 자기 욕망을 드러내면 이는 도리어 왕이 자신의 눈을 가리게 되는 셈이 된다. 여기에는 군주의 신비화나 신격화와 같은 어떤 거짓술수도 엿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군주 또한 사람이기에 일이 잘되거나 잘못될 때마다 감정이 변화무쌍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차라리 그 자신의 감정을 숨길 때 신하들은 맡은 바 자신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비의 술은 ‘자명한 정치학적 개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다음은 한비의 법술세 중에서 군주의 권세, 권위 등으로 알려진 세(勢)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댓글 4
  • 2024-06-12 14:38

    한비자의 술을 보니 인사가만사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요즘, 정치에 대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 2024-06-17 09:53

    좋은 비책을 가진 신하의 몫이 크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 2024-06-19 23:44

    윤석렬이 알고 있는 '술'은 그 술(術)이 아니고 오직 이 술(酒)입니다.

  • 2024-06-22 11:52

    술이 권모술수가 안되려면 참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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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5.12.11 | 조회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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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은
2025.12.01 | 조회 204
기학잡담
보편학문으로서의 ‘기학’   혜강 최한기(1803~1877)는 19세기 조선에 살았다.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로 인한 폐해가 극심했다. 소수의 권력독점에 정치가 문란해지고 가혹한 수탈로 농민은 몰락해갔다. 가난한 나라, 비참한 백성, 거기에 외세의 압력까지 최한기가 목도한 조선의 현실은 암울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양반이었지만 벼슬살이를 하지 않은 그는 읽고, 쓰고, 공부하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독립연구자였다. 그는 가진 재산을 책을 사는데 다 써버렸다. 오죽하면 책 사다 망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었을까. 사대문 안에 살았지만 결국 도성 밖으로 셋집을 얻어 이사 갔을 정도였다. 그가 산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서양학문과 관련된 책이었다. 특히 천문학과 서양의 자연과학 및 기술에 관련된 책은 그의 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방대한 저술들을 읽고 공부한 최한기는 무려 1000여권의 책을 썼다. 대부분 철학과 과학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데, 없어지고 이름만 남아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최한기가 55세 때 쓴 『기학』은 그의 기철학에 대한 사유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최한기는 자신의 학문을 ‘기학’이라 명명했다. 그가 말하는 기는 운화유형(運化有形)의 기이다. 그것은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본성을 가진 것으로서 우주 안에 가득차서 조금의 빈틈도 없다. 이 기는 우주의 궁극적 본원으로서 스스로 그러한 원리에 의해 만물을 창조하고 순환하고 변화시킨다. 기화(氣化)에 의해 생성된 만물에는 각각의 고유한 작동원리가 있다. 이것이 리다. 리는 기의 내재적 조리, 속성, 법칙일 뿐이다. ‘기학’에서의 리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물리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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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2025.11.24 | 조회 249
방과 후 고전 중
주자가 『본의(本義)』를 지은 까닭은     주역 공부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주역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주자가 쓴 『근사록(近思錄)』을 잘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2017년 처음 근사록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근사록』의 1편 「도체(道體)」를 보면 괘에 대한 문장이 많은데, 거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었다. 『주역』을 읽어본 적도 없었고, 다음 편인 「위학(爲學)」편의 글들과 많이 다르게 느껴져 생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도체」에 나온 글들이 주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훨씬 후에 알았고, 그 글들이 왜 『근사록』의 첫머리가 되어야 했는지는 그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역, 주역, 주역전의, 주역본의 …   고전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이름이다. 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본명도 있고, 호(號)도 있고, 자(字)도 있고, 관직명을 같이 부르기도 하고, 죽고 난 뒤에 시호(諡號)도 있고. 이걸 다 섞어서 쓰니까, 읽으면서 같은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떨 때는 따로 적어 두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책 이름도 비슷한 예가 있다. 인명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책을 다르게 부르면 처음 공부하는 입장에선 매번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자면 서경(書經)을 서(書), 상서(尙書) 등으로 부르는데 경전의 의미를 밝히면 서경으로, 존귀한 책의 의미로는 상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주역(周易)도 역(易), 역경(易經),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이문서당’에서 공부한 주역 책에는 단순히 ‘주역’, 혹은 ‘역’이라고 되어...
주자가 『본의(本義)』를 지은 까닭은     주역 공부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주역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주자가 쓴 『근사록(近思錄)』을 잘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2017년 처음 근사록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근사록』의 1편 「도체(道體)」를 보면 괘에 대한 문장이 많은데, 거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었다. 『주역』을 읽어본 적도 없었고, 다음 편인 「위학(爲學)」편의 글들과 많이 다르게 느껴져 생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도체」에 나온 글들이 주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훨씬 후에 알았고, 그 글들이 왜 『근사록』의 첫머리가 되어야 했는지는 그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역, 주역, 주역전의, 주역본의 …   고전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이름이다. 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본명도 있고, 호(號)도 있고, 자(字)도 있고, 관직명을 같이 부르기도 하고, 죽고 난 뒤에 시호(諡號)도 있고. 이걸 다 섞어서 쓰니까, 읽으면서 같은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떨 때는 따로 적어 두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책 이름도 비슷한 예가 있다. 인명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책을 다르게 부르면 처음 공부하는 입장에선 매번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자면 서경(書經)을 서(書), 상서(尙書) 등으로 부르는데 경전의 의미를 밝히면 서경으로, 존귀한 책의 의미로는 상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주역(周易)도 역(易), 역경(易經),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이문서당’에서 공부한 주역 책에는 단순히 ‘주역’, 혹은 ‘역’이라고 되어...
진달래
2025.11.19 | 조회 263
Socio-sociolgy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리뷰          “요즘은 무슨 공부해?”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 지 2년 정도 되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첫인사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다. 사실 그보다 만나는 친구들이 거의 인문학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되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중심으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어.” 라고 답했다. 이 말을 할 때 내가 어색해서 참기 힘든 지점은, 마르크스도, 공부도, 자본도 아닌 ‘경제학’이라는 표현이 내 입에 오를 때다. ‘인문학’을 제외하면 ‘학’자 들어간 단어들 하고는 정말 안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중에서도 꽤 ‘학술적’으로 느껴지는 ‘경제학’이라는 말을 내 입으로 쓰다니. 낯 간지럽다. 사실 지금의 ‘경제학’은 좀 더 ‘수학적’이고, ‘경영’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알라딘의 카테고리만 봐도 경제는 경영과 함께 묶여있고, 주로 기업 경영이나 세일즈, 재테크와 투자에 관련된 책들을 다룬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친구들에게 “자본주의의 발생과 원리, 또 그 한계점을 공부하며 대안적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답해야 맞다. 말하자면 내가 집중하는 지점은 ‘국부와 자본 운영의 관점으로 보는 경제’가 아니라 ‘사회학적 관점으로서의 경제’에 가까운 셈이다.  한편, 자산 증식의 관점으로 보는 경제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보니, 현대의 경제 관련 기사를 볼 때는 여전히 힘든 지점이 있다. 마르크스가 바라고, 분석한 대로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지 않았고, 국가는 여전히 마르크스가 비판하던 고전 경제학자들과 그 후예들의 이론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리뷰          “요즘은 무슨 공부해?”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 지 2년 정도 되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첫인사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다. 사실 그보다 만나는 친구들이 거의 인문학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되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중심으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어.” 라고 답했다. 이 말을 할 때 내가 어색해서 참기 힘든 지점은, 마르크스도, 공부도, 자본도 아닌 ‘경제학’이라는 표현이 내 입에 오를 때다. ‘인문학’을 제외하면 ‘학’자 들어간 단어들 하고는 정말 안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중에서도 꽤 ‘학술적’으로 느껴지는 ‘경제학’이라는 말을 내 입으로 쓰다니. 낯 간지럽다. 사실 지금의 ‘경제학’은 좀 더 ‘수학적’이고, ‘경영’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알라딘의 카테고리만 봐도 경제는 경영과 함께 묶여있고, 주로 기업 경영이나 세일즈, 재테크와 투자에 관련된 책들을 다룬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친구들에게 “자본주의의 발생과 원리, 또 그 한계점을 공부하며 대안적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답해야 맞다. 말하자면 내가 집중하는 지점은 ‘국부와 자본 운영의 관점으로 보는 경제’가 아니라 ‘사회학적 관점으로서의 경제’에 가까운 셈이다.  한편, 자산 증식의 관점으로 보는 경제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보니, 현대의 경제 관련 기사를 볼 때는 여전히 힘든 지점이 있다. 마르크스가 바라고, 분석한 대로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지 않았고, 국가는 여전히 마르크스가 비판하던 고전 경제학자들과 그 후예들의 이론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이다....
우현
2025.11.10 | 조회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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