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철학입문] 5회차 후기

토용
2023-04-04 22:02
247

『서양철학사』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 부분을 마치고, 『개념-뿌리들』로 책을 바꾸어 철학을 공부할 때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개념들을 공부했다. 튜터님이 이 책을 커리에 넣으신 것은 입문세미나에 딱 맞는 정말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서양철학사』를 읽다보면 툭툭 튀어나오는 철학적 개념들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이 책이 그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또 철학 개념어 사전 같아서 앞으로 다른 철학책을 읽을 때도 유용하게 자주 들여다볼 것 같다.

 

개념을 끊임없이 재사유하는 이유는 우리의 경험이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념은 끝없이 재규정될 수밖에 없다. 개념 중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개념들이 있는데 이것을 개념-뿌리들이라고 한다. 이 뿌리가 되는 개념들이 어떻게 변화해갔는지 그 개념의 역사를 아는 것이 서양철학사를 공부하는 기초가 된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기초가 아니라 공부 다 하게 되는 것 아닐까?^^ 특히 저자는 서구 철학의 대부분의 개념이 그리스 철학에서 나온다고 하면서 근현대 철학에서 시작하기 보다는 고대 철학부터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작년에 『차이와 반복』을 읽은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번에 공부한 개념은 원리, 원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원리를 찾게 된다. 우리의 경험은, 사물은, 세계는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원리를 찾는 이유이다.

원리를 규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철학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리를 3가지로 규정한다. 첫째, 출발점으로서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이것으로부터 출발해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둘째, 근원으로서의 원리이다. 한 사물의 존재에 있어 가장 일차적이고 내재적이다. 셋째, 인식의 토대로서의 원리이다. 어떤 전제가 있고 그 전제로부터 증명이 이루어졌을 때, 그 전제가 원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기본적인 원인론이다. 질료인, 형상인, 운동인, 목적인은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 사물에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이론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계속 개념이 수정되면서 지금까지 중요한 이론이 되고 있다. 특히 형상인 같은 경우는 형상의 의미에 가시적인 형상(形狀), 종(種), 파라데이그마(오늘날의 패러다임, 플라톤은 객관적 실재라고 보았다) 등의 의미가 있었다. 점차 이 고대의 형상은 근대 이후의 법칙, 구조주의에서 말하는 구조, 오늘날의 본질, 패러다임과 같은 의미로 변화해왔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이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원리는 무엇일까.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철학사를 이루어왔다. 그런데 현대철학은 이 원리 찾기에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거대 이론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성, 우연, 개별성 등을 어떤 거대한 틀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또 중심을 거부하는 탈-중심의 사유를 가지고 전통철학의 원리에 대한 탐구에 의구심을 보인다. 현대철학은 이 거대 이론을 해체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지만 난 그럼에도 여전히 질문이 생긴다. 보편적인 원리 탐구에 회의적이라면 윤리적인 행동의 근거는 어디에 두어야할까? 보편성을 찾기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 속에서 가장 최선의 것을 찾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둘 사이의 긴장을 인정하면서 끝없이 그 둘 사이를 오고감으로써 진실에 가까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과 공리주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윤리-도덕에 공리주의적 해법이 가능할까?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이 되는 것 같다. 답을 못 찾더라도, 사실 2000년 이상 못 찾은 답을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사유하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 그 자체가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살피다보니 본의 아니게 근현대 철학까지 마구 소환되어 얘기를 하게 된다. 앞으로 공부하게 될 부분이지만 어차피 입문이고 철학사 세미나니까 미리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댓글 6
  • 2023-04-05 11:52

    저도 근현대의 흐름과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게 좋더라구요ㅎㅎ 옛날얘기들 듣다가 환기가 팍 되는 느낌?ㅎ 토용샘의 보편적 윤리에 대한 고민이 어떻게 풀려갈지 기대됩니다~

  • 2023-04-05 13:41

    저는 보편적 윤리보다 개별적 윤리가 더 좋다는생각에 한표네요 보편적 윤리는 다수의 윤리지 소수의 윤리가 아니라는생각이 더 들어요 장애인ㆍ성소수자 등의 문제를 보면요~ 다수를 위해 소수가 무시된듯~

  • 2023-04-05 13:53

    이정우 샘 책에 이런 글이 있어요. 철학이라는 행위 그 자체가 수 천년의 세월동안 문제의식, 방법, 개념들, 스타일 등을 바꾸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철학사 전체를 두고서만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나의 개념을 사용해도 그 내용에는 복잡한 역사적 맥락이 접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렇듯 모든 개념들이 긴 세월동안 변해왔는데 자신이 접한 어느 하나를 염두에 두고 전체로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을 <개념-뿌리들>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슴다~~~^^

  • 2023-04-05 15:41

    '원리, 규정성, 질서‘ 같은 개념을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왠지 세상을 위계적으로 줄 세우는 듯하여 거부감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현대 철학에 더 마음이 끌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거대하고 폭력적인 '원리/원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근대 과학의 '법칙‘, '구조주의’, '패러다임'등도 '원리(형상)'의 개념에서 변형된 모습이라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렇게 고대 철학과 현대 철학이 만나는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네요~^^

  • 2023-04-07 20:18

    '개념'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층적인 지층들을 갖는 다는 점에서 '개념' 자체를 해설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아마 제목이 '개념들'이 아니라 '개념-뿌리들'이겠죠? ㅎㅎ 뭔전을 확인하면서 각각의 개념들이 어떻게 의미들을 쌓아왔는지를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 풍경을 한번 슬쩍 보는 것도 앞으로 공부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ㅎㅎ

  • 2023-04-08 00:58

    요즘 얼키고 설킨 '뿌리들'을 캔다고 다들 바빠요ㅎㅎ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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