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可曰否논어>22회-현재를 살자

여울아
2018-08-04 12:11
355

  <曰可曰否논어>는 '미친 암송단'이 필진으로 연재하는 글쓰기 입니다.

 

子曰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태백편 1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년을 배우고도 녹봉에 뜻을 두지 않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내가 문탁에 다닌 지도 햇수로 8년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는 문탁에 다니는 것이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였다. 무슨 공부를 하러 다니는지, 도대체 그 공부는 언제 끝나는지, 나중에 돈벌이가 될 만한지. 사실 친정엄마를 제외하면 남편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내게 대놓고 이렇게 따져 물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딴지를 걸지 못하게 미리미리 그럴싸한 성과물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마치 졸업장을 받아들고서 당장 취직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문탁에는 올패스권 같은 졸업장도 없는데 여기서 공부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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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학당의 제자들도 오늘날처럼 얼마간의 공부를 하고나면 취직 걱정을 했던 것 같다. 공자 밑에서 꼬박 3년을 공부한 제자들에게 자신의 미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은 당면 과제였을 것이다. 당시 위정자들이나 세도가들이 공자를 찾아와 인재를 스카우트하는데 정성을 들였던 것을 보면, 공자학당의 위상은 높았다. 하지만 삼년을 배우고도 녹봉에 뜻을 두지 않는 자를 찾기 어렵다.”는 공자의 탄식 속에서 우리는 졸업증서 한 장 달랑 들고 노량진 고시촌으로 떠나는 제자들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공자를 상상할 수 있다. 여기서 녹봉은 벼슬자리를 의미하며, 월급을 곡식으로 준대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녹봉을 단순히 생계차원으로 보기 보다는 제자들이 자신의 가치를 외부적인 성과물로 평가받으려 했던 불안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제자들의 출세지향적인 공부를 걱정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행교도.jpg

(공자행교도;공바 바로 뒤에는 항상 안회가 따른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는 출세한 고위공직자들이 많다. 공자학당은 자신의 고향 노나라의 최고 권세가 계씨 집안의 가신을 자로, 중궁, 염유 등 네 명이나 배출했다. 가신은 요즘말로 치면 청와대 비서관쯤 되겠다. 이외에도 이름을 남긴 70여명의 제자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게 쓰임을 받는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자는 공부의 성과를 높은 지위와 연봉으로 가늠했을까? 공자 제자 중에서 호학자(好學者)로 인정받은 사람은 안회이다. 그는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 한 모금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극기복례(克己復禮) 같은 자신의 내면을 키우는 공부에 집중했다. (스피노자식으로 마음의 역량이다. ㅋㄷㅋㄷ^^)


L.jpg 

(이 책의 저자 김진선은 우리의 친구이다)

공부의 성과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사는 내 모습으로 드러난다. 안회는 미래에 자신을 저당잡히지 않고 현재를 살았다. 내가 처음 문탁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막연하나마 지난 시절처럼 돈을 좇는 직장생활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의 삶을 바랐던 것 같다. 이른바 적당히 벌고 잘 살기같은 삶 말이다. 돈은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모든 것을 세게 끌어당긴다. 그래서 돈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사는 것은 쉽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적당히라는 기술은 정해진 답이 없다. 사람마다 다르고 매번 바뀐다. 남의 눈치 보느라 미래의 성과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자. 그것이 공부의 성과일 것이다. 


댓글 1
  • 2018-08-13 08:18

    우리는 어쩌면 모르고 하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을  쫓고  있지 않다고 포장하고 포장하기에 능숙해져서

    솔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속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가 요즘 알아차림을 해보고 있는지라 이것도 참 어렵구나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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