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 오늘의 맹자-팽팽한 활시위의 아우라

자누리
2017-09-10 22:59
303

0910 내 맘대로 읽는 오늘의 맹샘.jpg 맹샘^^
 

 

公孫丑曰 道則高矣美矣 宜若似登天然 似不可及也 何不使彼 爲可幾及而日孶孶也
孟子曰 大匠 不爲拙工 改廢繩墨 羿不爲拙射 變其彀率
君子引而不發 躍如也 中道而立 能者從之

공손추가 말하였다. “도가 높고 아름답지만 마치 하늘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도달할 수 없을 듯합니다. 어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거의 도달할 수 있다고 여기게 해서 부지런히 힘쓰게 하지 않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장인 목수는 서툰 목수를 위해 승묵을 고치거나 없애지 않으며, 명사수 예는 서툰 궁수를 위하여 활시위 구율을 고치지 않는다. 군자는 활시위를 당기고 쏘지 않아도 활쏘는 도가 생생하게 나타나니, 중도에 서있으면 능력있는 사람이 따르는 것이다.“

공손추의 질문은 흔히 할 수 있는 질문이어서 낯설지 않다. 道가 좋은 것은 알겠는데 그 수준이 너무 높으니 사람들이 따라할 엄두를 못낸다는 것이다. 차라리 수준을 좀 낮추면 오히려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대답은 역시 맹자답다. 장인이나 달인들은 함부로 기준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승묵(繩墨)은 나무에 직선을 긋는 먹통과 먹줄이다. 먹줄은 팽팽하게 하여야 직선이 제대로 그어진다.

궁수 예는 활쏘는 솜씨가 탁월한 당대의 명사수였다고 한다. 구율(彀率)은 활시위를 당겼을 때 그 팽팽한 정도를 말한다.

초보자는 승묵으로 직선을 똑바로 긋는 것이나, 활을 팽팽하게 당기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느슨하게 하면 당장은 조금 솜씨가 늘겠지만 그래봤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맹자는 근본과 원칙을 지키라는 발언을 자주 한다. 얼핏 들으면 근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맹자의 어법은 그렇게 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의미에 가깝다. 어렵다고 기준을 바꾸어버리면 솜씨를 늘릴 수 있겠냐는 것이다.

수준을 운운해서는 졸공은 계속 졸공이고, 졸수는 계속 졸수일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引而不發이다. ‘활시위를 당기지만 쏘지는 않는다.’

달인은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르칠 수 있다. 아니, 활을 쏘지 않아야 한다. 팽팽한 긴장 속에 나타나는 달인의 아우라만으로도 가르침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말로해도 다 나타낼 수 없고,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으로 제자에게 감응을 일으킬 것이다.

쏘는 것은 제자의 몫이다. 제자는 무수히 쏴보고, 또 쏴서 도를 깨우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도 아무나 될 수 없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부정할 줄 알아야 배울 수 있다.  

引而不發은 많이 쓰이는 고사성어인데 김명민의 <공부론>에서도 이 말을 풀어간다.

공부의 요체는 타자성의 체험인데, 그것이 어느 순간 불쑥 찾아왔을 때 그것을 넉넉히 받아들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

그것이 인이불발이라고 한다. 그것은 생각을 고정시키지 않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고,

 타자성과 조우할 수 있는 감응의 몸을 만드는 일이다.

“도가 통하는 세상이면 도가 내몸을 따르도록 몸으로 적극 실천하고, 도가 사라진 세상이면 내 몸이 도를 따르도록 한다. 도로서 남을 따른 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孟子曰 天下有道 以道殉身 天下無道 以身殉道 未聞以道 殉乎人者也)”

引而不發  다음 장이다. 도가 통하는 시대라면 내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들과 도를 확충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도록 애쓰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확실히 유가적 사유에서는 감응하되, 자기 몸을 통해 도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것은 도가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노자>에서는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貴身)’을 매우 중시한다.

貴身의 뉘앙스가 유가와 도가 사이에 차이는 있지만 넓게 보면 ‘양생’ 개념으로 포괄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자와 접신하도록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되 자기를 부정할 수 있도록 유연한 몸이 되는 일, 그것이 인이불발이고 양생이 아닐까?

공부론을 보다가 갑자기 양생쪽으로 관심이 틀어진 것은 요즘 몸이 생각을 지탱할 수 있는 정도가 낮아서 그럴 것이다.

생각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 2시간을 넘지 못하니 인이불발의 아우라를 보아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양생'을 더 탐구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기특한 일이다.  칭찬해~

댓글 1
  • 2017-09-11 08:15

    타자와 접신하도록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되 자기를 부정할 수 있도록 유연한 몸이 되는 일, 그것이 인이불발이고 양생이 아닐까?

    저는 이 부분에서 "자기를 부정할 수 있도록 유연한 몸이 되는 일" 을

    자기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도록 유연한 몸이 되는 일로 읽고 싶습니다~~~~~

    부정보다는 인정이.....다음 걸음을 내딛는데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자주.... 함께 가는 친구에게서 비롯됨을 깨닫습니다^^

    자기의 한계 앞에 주눅든 나에게 혹은 친구에게 '위로'^^가 되는 순간!

    인이불발의 아우라에서 전이되는 감응 아닐까요? ㅋ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이문서당 2분기 2회차 수업 공지합니다 (6)
봄날 | 2021.05.11 | 3864
봄날 2021.05.11 3864
2021년 이문서당 1회차 수업 공지합니다!!!!
봄날 | 2021.02.15 | 3011
봄날 2021.02.15 3011
[모집]
2021 강학원④ <이문서당> : 논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시모집) (2.16 개강 /27주 과정) (43)
관리자 | 2021.01.09 | 조회 6455
관리자 2021.01.09 6455
[모집]
2020 以文서당 - 논어, 깊고 넓게 읽기 (55)
관리자 | 2019.12.16 | 조회 5919
관리자 2019.12.16 5919
914
춘추좌전 마지막 시간 공지합니다~~~
봄날 | 2021.12.06 | 조회 613
봄날 2021.12.06 613
913
춘추좌전 7회차 후기 (2)
산새 | 2021.12.05 | 조회 720
산새 2021.12.05 720
912
이문서당 6회차 후기: 대국에 예로 맞서는 노나라 (2)
고은 | 2021.11.29 | 조회 590
고은 2021.11.29 590
911
춘추좌전 5회차후기: 노애공 초기의 사건과 오자서, 초소왕 (1)
바람~ | 2021.11.22 | 조회 777
바람~ 2021.11.22 777
910
춘추좌전6회차 공지
봄날 | 2021.11.22 | 조회 626
봄날 2021.11.22 626
909
춘추좌전 5회차 공지 (3)
봄날 | 2021.11.15 | 조회 640
봄날 2021.11.15 640
908
양화 - 춘추좌전 3회 후기 (2)
영감 | 2021.11.09 | 조회 659
영감 2021.11.09 659
907
춘추좌전4회차 공지합니다
봄날 | 2021.11.08 | 조회 603
봄날 2021.11.08 603
906
백거전투, 그리고 천하무도의 시대가 열리다 (좌전2회차 후기) (7)
문탁 | 2021.11.01 | 조회 789
문탁 2021.11.01 789
905
[유례없는] 논어 수강 후기 (4)
영감 | 2021.10.30 | 조회 694
영감 2021.10.30 694
904
춘추좌전1회차 후기 (2)
뚜띠 | 2021.10.23 | 조회 575
뚜띠 2021.10.23 575
903
<춘추좌전> 1강 공지
봄날 | 2021.10.18 | 조회 709
봄날 2021.10.18 709
902
이문서당 논어 마지막 시간 공지합니다!!! (1)
봄날 | 2021.10.06 | 조회 609
봄날 2021.10.06 609
901
이문서당 3분기 마지막 수업 후기-자공의 공자 사랑 그리고 쇄소응대 (1)
인디언 | 2021.09.16 | 조회 644
인디언 2021.09.16 644
900
이문서당 3분기 마지막수업 공지 (2)
봄날 | 2021.09.13 | 조회 800
봄날 2021.09.13 800
899
3분기 8회차 후기 (2)
고로께 | 2021.09.13 | 조회 625
고로께 2021.09.13 625
898
이문서당 3분기 8회차 수업 알립니다~
봄날 | 2021.09.06 | 조회 690
봄날 2021.09.06 690
897
[이문서당] 논어 3분기 7회차 후기 (1)
산새 | 2021.09.03 | 조회 730
산새 2021.09.03 730
896
이문서당 3분기 7회차 수업 공지
봄날 | 2021.08.31 | 조회 689
봄날 2021.08.31 689
895
<6회차 후기> 은둔 지식인들에게 공자가 하고 싶었던 말 (3)
바당 | 2021.08.30 | 조회 729
바당 2021.08.30 729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