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데이- 2030과 4050의 대화 후기

지원
2015-11-03 02:26
914

0.

개인적으로 문탁에서 함께 맞는 네 번째 축제는 미안함이 가득합니다. 길벗 여행을 다녀온 후 바쁜 날들 속에서 축제준비는 고사하고 세미나도 몽땅 빠졌습니다. 외부에서 하는 일들이 주로 많았던 터라 목공소에 들어올 때마다 마주치는 문탁 식구들은 늘 "오랜만이다!", "많이 바쁘다며!" 하고 인사 주고받기도 바빴습니다. 몇 가지 일들이 정리되며 다시 파지사유에 앉아 커피도 기다리고,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되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다들 축제를 앞두고 바쁜 때에야 돌아왔으니까요. 그래서 자누리 님을 찾아가 진행이라도 시켜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미 지원에게 진행을 시키자는 논의와 생각이 있더군요! 잊지 않고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이 참 감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집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한권의 책(부엔비비르)>과 고은, 명식, 합성의 글, ‘복작 복작에서 정리한 <석기시대의 경제학>을 읽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바쁜 날들 중에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많았고, '왜 이렇게 바쁘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반성장이라는 주제, 여유로운 석기시대의 삶, 혹은 2030들의 고민과 어우러지면서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1.

고은은 대학을 자퇴했습니다. 명식은 졸업을 앞두고 있고, 합성은 책을 다 쓰고 돌아와 생각이 많습니다. 저도 일에 치여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죠. 이 넷의 공통점은 문탁에서 좋은 삶을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좋은 삶이라는 것은 뭘까요? 좋은 삶이라는 주제에 대해선 우리가 문탁에서 늘 이야기를 나누던 것입니다. 해봄에서, 공공공에서, 푸코 세미나, 2030 세미나에서 우리가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모두 좋은 삶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는 아마 문탁 식구들과도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 내용일 겁니다.

그런데 좋은 삶 앞에 붙은 문탁에서는 뭘까요? 저는 길벗 여행과 이번 축제의 토론회를 통해서 이에 대한 우리 각자의 생각이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문탁 식구들도 저마다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

고은과 명식은 질문지를 받아들었을 때부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은은 문탁에 더 깊이 빠져 들어야해! 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외쳤고, 명식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뭐가 나빠. 스타일도 다르고,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어!” 하며 되받았습니다.

진행을 맡은 저는 종이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친족과 같은 일반적 호혜성의 관계 속에 더 깊이 빠져야한다고 생각하는 고은, 이웃부족과 같은 균형적 호혜성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는 명식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무엇이라고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3.

히말라야님과 작은 물방울님의 질문지 질문을 제 마음대로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문탁은 공부와 일, 공부와 놀이, 공부와 활동이 하나로 이어지는 곳이야. 그런데 너희는 왜 너희만의 욕망을 가지고 문탁과 만나려고 해?’, 다시 정리하자면 너희의 구체적인 욕망은 뭐고, 너희에게 문탁은 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합성에겐 아무래도 두 가지 욕망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고픈 욕망과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픈 욕망. 현재로서는 우동사에서도, 문탁에서도 완전히 채워지긴 힘든 욕망들이죠. 문탁에서의 활동에 큰 흥미가 없는 합성에게 문탁은 공부를 하는 곳같았습니다.

고은 역시 공부에 대한 욕망에 비해 활동에 대한 욕망이 적기는 했지만 문탁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문탁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호혜성의 순환에 몸을 맡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고은은 특별히 활동에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되갚는 행위로서 활동을 충분히 받아들일 용의가 있고, 이를 넘어 마땅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명식은 우리(2030)가 가진 특이성이 있고, 우리가 하는 활동에 흥미를 느끼며, 그것들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것 같았습니다. 균형적 호혜성 속에서 서로에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공부를 이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은 이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4.

새털님은 합성, 명식, 고은의 글을 읽고 2030은 문탁에 바로 접속하지 않고 다른 통로를 통해서 문탁과 만나게 되었을까. 앞으로는 문탁과 바로 만나야하지 않을까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요요님은 문탁이 가진 역사성 속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2030은 축복과 같은 존재다라고 했습니다. 히말라야님과 물방울님은 새털님과 비슷한 입장에서 다시 ‘2030이건 4050이건 같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게으르니님은 강력하게 문탁에서 세미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제시간에 세미나에 참석하고 후기와 발제를 꼬박꼬박 올리는 모습을 보여라하셨습니다. 생각보다 2030의 발언이 적은 것을 보신 문탁샘은 왜 토론이 이렇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은 또 이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5.

영상에세이와 2030의 발제를 읽은 후 8시 반에 시작한 토론은 10시 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꺼내진 이야기들이 어느 것 하나 정리되지 않은 채 밤이 늦어졌고, 자리를 정리 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 전날 감명 깊게 읽은 <석기시대의 경제학>호혜성의 세심한 교환율로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살린스가 호혜성을 일반적 호혜성’, ‘균형적 호혜성’, ‘부정적 호혜성으로 나누긴 했지만 그 역시 이를 정의를 위한 단어나 구분으로 사용치 않았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무수한 형태의 호혜성과 전략이 있으며, 이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죠. 이튿날 토론의 마무리에 딱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심한 교환율을 만들어내야 할 시점!’


6.

오늘 문탁은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그 틈을 타 파지사유에 설치했던 조명을 내리고, 전기선을 정리하고, 월든과 파지사유 앞 쪽에 걸린 축제 현수막을 걷었습니다. 현수막을 걷을 때 공연이 끝나고 축준위가 들고 올라와 뒤집은 종이에 쓰인 멘트가 생각났습니다. ‘축제는 끝났지만 좋은 삶은 계속 된다하는. 바쁜 날들 속에서, 2030의 글을 읽으며,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또 다음날의 공연을 보며 계속해서 뭔가 찝찝함이 남아있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것에 대한 찝찝함이었겠죠. 사람들의 말 속 어딘가에 내 생각이 있는 것 같은, 그런데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는. ‘그렇지만 좋은 삶이 계속될 것 같다, 오랜만에 아주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꺼내진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나다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관계와 활동들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2030 뿐 아니라 반성장도, 밀양도... 문탁 모두

 

(후기를 오랜만에 써서 그런가, 축제 후유증인가 글이 왜 이렇게 오그라들죠.. 어찌됐건)

 

부엔비비르~ 부엔비비르~

댓글 1
  • 2015-11-03 11:59

    오, 지원이가 이렇게 멜랑꼬리하고 말랑말랑한 글을 쓰기도 하는구나. ^^

    이번 축제는 축준위가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어. 그래서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문탁 인문학 축제'라고 하는 커다란 행사에 완전히 빠질수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지. 비록 내가 간여했던 영상이 엉망이 됐고 토론회에서는 엉뚱한 말만 했고 아카펠라는 절반의 만족을 얻었지만(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성취의 문제) <석기시대 경제학>을 정리하면서 '책이란 이렇게 읽는 거 아닐까'하는 뿌듯함이 있었고, 저마다 소리없이 축제를 위해 애쓰는 친구들을 보며 맞아, 네 말마따나 감동을 받았지. 이렇게 함께 축제를 즐기는 현장이 바로 '부엔 비비르' 였다는 걸 알았어. 특히 2030이 이번에 축제에 깊이 들어와줘서 정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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