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학 강좌] 2강 후기

히말라야
2014-07-31 09:19
591

 문탁에 처음 문을 두드렸을 때가 작년 여름의 들뢰즈 강좌였으니, 이번 독일문학 강좌는 내게 문탁 1주년 기념 강좌다. 1년 새 들뢰즈를 통해 니체를, 니체를 통해 독일문학까지 오게 되었다. 1년 전 굉장히 얼떨떨하고 설레고 혼돈스럽던 나는 지금 다소 편안하고 즐기는 듯 같은 자리에 않아있다.

 

  지난 시간에 이어, 괴테의 파우스트 비극 제 2부에서 시작된 강의는 실러의 발렌슈타인 개요로 끝을 맺었다. 괴테의 파우스트 2부는 고전적 요소와 낭만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으며 독립적인 작은 이야기 세계가 서로 간에 연관성이나 통일성 없이 나열되는 느슨한 구조로 전개되고 있다. 1막에서는 베일앞까지는 가되 베일을 들추지는 말라는 인간조건을 제시하며, 2막에서는 호몬쿨루스라는 인조인간을 통해 자아를 강조하는 주관적 관념론의 위험을 경고한다. 3막에서는 미의 화신 헬레네가 등장하여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보여 준다. 현실에서의 행복과 가상의 아름다움이 공존할 수 없지만 고난스러운 현실을 한 단계 더 나아가도록 이끌어 줄 수도 있기에 아름다운 가상은 필요할 수도 있겠다. 4막에서 파우스트는 행위가 전부이며 명성이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지배권을 얻고 소유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인간의 과욕과 오만의 극치에 선다. 마지막 5막에 지배자가 된 후 근심에 의해 장님이 된 파우스트가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만한 자유가 있는 것이다라고 외치며 죽음에 이른다.

 

  죽음에 이른 파우스트는 천사들에 의해 구원 받지만, 과연 그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가? 괴테는 행동하는 자는 언제나 양심이 없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처음으로 행동하는 자는 그것이 무엇이든 이전에는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오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행동하지 않고 오직 관조하는 자만이 최선의 행동을 알 수 있다. 먼저 행동하는 자는 저지르고 그래서 뒤에 오는 자는 잘못을 수정할 수 있다. 극 중의 파우스트도 더 큰 행복을 찾아내고 맛보기 위해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천사들은 항상 추구하면서 노력하는 자라면 구원의 자격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누군가의 초인적인 추구와 노력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은 정당화 되어도 좋은 것인가 혹은 목적이 옳다면 방법상의 오류는 용서해도 되는 것인가.

 

  비극 같지 않은 위대한 비극은 그렇게 끝났지만, 신을 믿지 않는 나는 - 괴테도 그랬을 테지만 - 구원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극 속에서 천사들은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을 구원했다. 그러나 나라면 그 둘을 구원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레트헨은 나약하고 순응하며 자존감 없는 인물의 전형이다. 그는 높은 신분의 파우스트 앞에서 너무 쉽게 자신의 고귀함을 던져 버리고, ‘나의 것이 아닌 것을 넘본 자기 자신에 대한 가책에 시달린다. 그는 너무 빨리 자기 몫을 단념한다. 나라면 그런 모습의 그레트헨 대신 자기임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것을 끝까지 지키다가 불에 타 죽은 필레몬과 바우키스를 구원했을 것이다. 또한 앎의 끝자락에서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파우스트 대신, 그런 파우스트에게 삶을 다시 의욕하게 만들고 세상의 온갖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노력한 메피스토텔레스를 구원했을 것이다. (사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텔레스 덕에 모든 것을 날로 먹었다.)

 

  괴테는 절제란 나의 것이 아닌 것을 단념할 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거기까지만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레트헨과 파우스트가 구원의 대상이다. 그러나 나의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알기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군분투했는지, 끝까지 스스로에게 단념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 진정한 절제라고 한다면, 진정한 구원의 대상은 지금도 이 땅 여기저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그리고 메피스토텔레스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구원은 오래 기다릴 것도 없고 신비로운 천사의 도움도 필요 없는 스스로 만들어 내는 매 순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강정이나 쌍용해고자 그리고 세월호나 밀양까지 모든 연대의 현장을 들여다 볼 때마다 그들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이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를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까지도 구원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의 값으로 우리가 살고 있다.

 

  문탁에서 공부하는 1년 새 나에게 변용이 하나 생겼다. 그 전에는 하나도 읽을 수 없었던 어려운 철학책이 조금 읽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 전에 잘 읽던 감상적이고 비유적이며 묘사적인 문학책들은 잘 안 읽혀진다. 큰일이다. 혼자 잘 살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서 남 주려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문학공부는 철학공부만큼이나 꼭 필요하다. 철학은 고양시키지만, 문학은 깊이 파고들어 내내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하기만도 쉽지 않은데 문학까지 하려면 좀 더 오래 살아야할 것 같다. ^^

댓글 3
  • 2014-07-31 09:49

    파우스트를 얼른 읽어야겠군요 ㅜㅜ

  • 2014-07-31 09:56

    2강 못들으신분들을 위해 녹음했습니다.

    녹음파일 필요하신 분은 아래 댓글로 메일주소 알려주세요.

    음성파일은 여기 첨부가 안되네요 ㅜㅜ

  • 2014-07-31 23:49

    광합성님~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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