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9신> 이계삼 선생님의 편지 2

2014-07-14 09:42
1510

안녕하세요,
이계삼입니다.

 

다시 또 인사를
드립니다
.
사람을 놀래키는
기습적인 무더위네요
.
먼저 안부를
여쭙습니다
.

 

6.11 행정대집행이 벌써 오늘로 한 달이
되었습니다
.
혼자 있는
시간에는 울적한 기분으로 잦아들기도 했고
,
대책위 사무국장이라는
책임만 없었더라면 잠시라도 훌쩍 떠나고도 싶었습니다
.
그렇지만,
시간의 힘이란 실로
놀라운 지라
,
이제는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떠 있는 것은 떠 있는 그런 자리까지는 저를 옮겨 주었습니다
.

 

어르신들은 잘 지내고
계십니다
.
그러나 속내는 여전히
복잡하고
,
또 한분 한분에게는
내면적인 괴로움이 가지시를 않는 것 같습니다
.
마을
안팎으로도
,
후유증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
정부와
한국전력
,
경찰,
큰 적들에 대한
분노는 매우 손쉽게 가까운 이웃에 대한 원망과 분노
,
혹은 폭력으로
투사되기도 합니다
.

 

마을 공동체는
찬성과반대로 쫙 갈라져서
,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싶은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 주민들은 여러 종류의 
압박을 여전히 받고
있습니다
.

 

요 며칠은 아래
소개하는 시가 계속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
군국주의 시기
일본에서 불우한 짧은 한 생애를 살았지만
,
별처럼 영롱한
정신으로 지금도 반짝이고 있는 미야자와 겐지의 시입니다
.

 

<비에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1896~1933)

비에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않고

눈보라와 여름더위에도
지지않고

튼튼한 몸으로 절대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는
얼굴로

 

하루 현미 너 홉과

된장과 나물을 조금
먹고

모든 것을 자기계산에
넣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조그만 초가 오두막에
살아

 

동쪽에 병든 어린이가
있으면

가서 간호해주고

 

서쪽에 고달픈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의 볏단을
져다드리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무서워 말라고
위로하고

 

북쪽에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 데 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운
여름*
에 허둥허둥 걸으며

모두한테서 멍텅구리라
들으며

칭찬도 듣지 않고

괴로움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추운 여름이라 표현한 것은 미야자와 겐지가 살던
지역에 여름 냉해가 심하여 농작물을 다 망쳐버리는 일이 잦아서
추운 여름에 허둥지둥
걷는다
는 표현이 나왔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시가 요
사이 제게 떠오른 것은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데 없는 일이니
그만두라
는 이 표현이 꽂혀서일
것입니다
.
실제로 여러
마을들에는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이어지고 있고
,
그래서 보기 괴로운
일들을 계속 지켜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

 

그리고,
저 자신의 지나온
시절에 대한 회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제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이 싸움에 불려들어와 그동안 휴식 없이 이어지는 험한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칭찬도 괴로움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제 소망과 전혀 무관하게 한편의 분들께는 위로와 칭찬을 받고
,
다른 한편
(찬성 측 주민과 한전,
경찰 등
공권력
)으로는 어처구니 없는 비난과 견강부회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
사실 말하자면, 저는
칭찬은 부담스럽기만 하고
,
저치들의
비난에는 손쉽게 마음 헝크러져 버리곤 합니다
.

 

이런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저는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
세상이 정글 같다는
실감을 얻었습니다
.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왜
이렇게
,
이런 모양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
그런 인생과 세상의
얼개를 조금은 들여다본 것도 같습니다
.

 

좋은 인생의 가치를
실제로 몸으로 구현하는 일은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
아니 좋은 가치는
고사하고 그저 죄짓지 않고
,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고 사는 일만 해도
,
천개의 강을 건너야
하는 듯 고단한 길임을 배우고 있습니다
.

 

그동안 저는 얼마나
쉽게 말하고
,
단정하고,
선포했는지,
인생의
엄중함에
,
그리고 이 엄중함
속에서도 끝내 바른 길을 걸어간 분들
,
이를테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 같은
,
이름없는 의로운
이들에 대한 존경으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

 

사설이
길었습니다
.

 

밀양 어르신들과
도시의 연대자들을 이어주는
협동조합이 창립되었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고심했던 것이었지만
,
한 번 시작하면
호랑이 등에 올라타야 하는 일이 되다보니 늘 주저주저 했던 것을 몇몇 열성적인 활동가들의 헌신으로 첫걸음을 떼게 되었습니다
.

 

77,
60
여명의 주민분들과
함께 창립총회를 했습니다
.
함께 모여 있으니
다들 좋았나 봅니다
.
후텁한
날씨였는데
,
참 많이
웃고
,
즐겁게 먹고 마시며
떠들썩하게 창립총회를 치렀습니다
.

 

현재 주민 및 밀양
대책위 식구들 중심으로
78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고
,
그밖에도 소식을 듣고
20여분의 조합원들이 먼저 가입을
했습니다
.

 

미니팜 협동조합 -
밀양의
친구들
매주 촛불집회를 대신하는 나눔장터
밀양장날
(
마을로 가서
어르신들 농산물 펼쳐놓은 것을 사고
,
함께
문화공연
,
먹거리 나눔 등의
행사
)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생산하는 다양한 농산물 직거래
일손돕기
귀농 강좌 및 인문학
강좌 등의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가입절차는 아주
단순합니다
.
1
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납입하시고
,
대책위 전화로
집주소와 이메일주소를 가르쳐주시면 정기적으로 밀양 소식과 농산물 정보 등을 알려드립니다
.

 

 

문의
:
010 9203 0765

 

출자금 납입계좌 신한
110-415-687752
장수민
/
농협
352
0785 8154 43
장수민

 

 

 

이렇게든,
저렇게든 저도 우리
어르신들도 새로운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

두렵지만,
설레기도
합니다
.
내내 건승하시길
빕니다
.

 

밀양에서 이계삼
올림

웹_협동조합_밀양의친구들02.jpg

창립총회.jpg


댓글 7
  • 2014-07-14 10:09

    가입했어요. ^^

  • 2014-07-14 11:11

    헐...신기해.

    오늘 아침 내내 미야자와 겐지..를 생각하고, 읽고, 보고 ...그랬는데...

    그리고 또 신기해.

    아침 내내 속으로 중얼거리던 생각이, 맞아, ...."한번 시작하면 호랑이 들에 올라타야 하는 일"이라는 표현이었어.

     

    하하...이계삼 샘! 건강하시죠? 샘도 건승하시길!!

  • 2014-07-15 20:09

    그래서.. 7월 26일 토요일 밀양가는 팀이 만들어졌습니다!!

    여덟분이 같이 갈 수 있다고 해서 일단 기차표부터 끊었습니다.

    7월 26일 광명에서 2시 30분경 출발하고..

    7월 27일 오후 1시경 밀양에서 출발하는 기차입니다.

    숙박 등은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매주 토요일 있는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오전에 농활하고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 되시면 같이 가요..

  • 2014-07-16 16:29

    저도 가입했지요~

  • 2014-07-20 18:39

    민들레팀 집단적으로 가입했습니다. ㅋㅋ

    꿈틀이

    여유

    블랙커피

    넝쿨

    토토로

    낭만 고양이

    노라

     

    저희는 배운 걸 즉시 실천하는 행동파!!!!!

     

  • 2014-07-21 12:34

    와우! 민들레팀 대박이네요!

    문탁네트워크 전체 이름으로 가입했지만

    세미나회원들 개별적으로도 가입하고 있습니다.

    문탁회원으로, '미니팜'의 조합원으로 우리는 새로운 신체가 되는 건가요?

    우리의 공간이 점점 더 커지네요. ㅎㅎㅎ

  • 2014-07-21 20:28

    민들레팀 새회원 작은 물방울님도 가입하셨어요

    9구좌 신청했어요

    문탁세미나 회원임을 밝히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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