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약방 에세이
혼자 걷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다. 나란히 걷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혼자서 저 멀리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르다 싶다. 왼쪽이나 오른쪽, 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이는 갈지자로 왔다 갔다 걷는다. 갑자기 달려나갈 때도 있고, 갑자기 멈추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바짝 붙어서 걸어갈 때도 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더 어릴 때는 그 모습을 보면 꼭 차에 치일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러다 대충 서겠지 싶어서 놔둔다. 저만큼 앞서서 달려가다가도 건널목이나 갈림길 사이에서는 멈춰서 기다리니까. 옆을 보면서 걷고, 심지어 하늘을 보면서 걸어도 아직은 누군가와 크게 부딪히거나 어디에 빠진 적은 없다. 이쯤 하면 눈이 뒤통수에도, 옆통수에도 달린 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후로 나는 줄곧 되묻는다. 장애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과 뭔가가 다르단 의미일까. 그렇다면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과 만났다. 이 책은 강렬하게 나의 의식을 때렸다. “저기요. 장애는 예술이거든요? 삶을 사는 독창적인 방식이라고요!” 장애는 손상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하는 방식 장애인은 많다. 세계인구의 무려 15~20%나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장애인들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고립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장애인들은 사회로 나가는 대신 고립되는 편을 택한다. 하지만 장애를 보이는 부분 만이 아니라 만성적인 질병, 장거리 보행이...
혼자 걷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다. 나란히 걷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혼자서 저 멀리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르다 싶다. 왼쪽이나 오른쪽, 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이는 갈지자로 왔다 갔다 걷는다. 갑자기 달려나갈 때도 있고, 갑자기 멈추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바짝 붙어서 걸어갈 때도 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더 어릴 때는 그 모습을 보면 꼭 차에 치일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러다 대충 서겠지 싶어서 놔둔다. 저만큼 앞서서 달려가다가도 건널목이나 갈림길 사이에서는 멈춰서 기다리니까. 옆을 보면서 걷고, 심지어 하늘을 보면서 걸어도 아직은 누군가와 크게 부딪히거나 어디에 빠진 적은 없다. 이쯤 하면 눈이 뒤통수에도, 옆통수에도 달린 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후로 나는 줄곧 되묻는다. 장애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과 뭔가가 다르단 의미일까. 그렇다면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과 만났다. 이 책은 강렬하게 나의 의식을 때렸다. “저기요. 장애는 예술이거든요? 삶을 사는 독창적인 방식이라고요!” 장애는 손상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하는 방식 장애인은 많다. 세계인구의 무려 15~20%나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장애인들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고립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장애인들은 사회로 나가는 대신 고립되는 편을 택한다. 하지만 장애를 보이는 부분 만이 아니라 만성적인 질병, 장거리 보행이...
인문약방 에세이
1.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는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예술가 수나우라 테일러이다. 수나우라와 형제들은 어린 시절 닭들을 층층이 쌓아 싣고 빠르게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을 바라보며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독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숨을 참으며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 후 이 문제가 그를 사로잡은 것은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은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들이 불구가 되고, 그 산업에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동물들과 같이 갇혀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축산과 도축 노동자들은 과로, 스트레스, 트라우마로 심신의 장애를 입거나 장애를 입은 채 해고된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저임금노동자들에 의해 쉽게 대체된다. 수나우라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전자레인지, 패스트푸드점, 조리 식품의 효율성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감한다. 동시에 산업화된 음식 시스템이 남용되는 현실과 그 부적절성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의식하고 있다. 식사때마다 반복되는 수나우라의 딜레마는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된다. 공장식 축산과 불안정한 노동과 건강불평등과 신자유주의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수나우라는 이 책에서 장애와 동물을 교차시킨다. 종종 장애와 동물은 서로의 알리바이로 악용되어 왔다. 장애에 대한 폄하의 표현으로 ‘동물 같다’, ‘동물만 못하다’는 수사가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일부 동물권 활동가들은 ‘언어/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보다 ‘쾌고감수능력’을 갖는 동물을 돌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위계를 세우기도 한다. 수나우라는 우선, 우리가 장애와 동물에 대해...
1.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는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예술가 수나우라 테일러이다. 수나우라와 형제들은 어린 시절 닭들을 층층이 쌓아 싣고 빠르게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을 바라보며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독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숨을 참으며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 후 이 문제가 그를 사로잡은 것은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은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들이 불구가 되고, 그 산업에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동물들과 같이 갇혀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축산과 도축 노동자들은 과로, 스트레스, 트라우마로 심신의 장애를 입거나 장애를 입은 채 해고된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저임금노동자들에 의해 쉽게 대체된다. 수나우라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전자레인지, 패스트푸드점, 조리 식품의 효율성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감한다. 동시에 산업화된 음식 시스템이 남용되는 현실과 그 부적절성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의식하고 있다. 식사때마다 반복되는 수나우라의 딜레마는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된다. 공장식 축산과 불안정한 노동과 건강불평등과 신자유주의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수나우라는 이 책에서 장애와 동물을 교차시킨다. 종종 장애와 동물은 서로의 알리바이로 악용되어 왔다. 장애에 대한 폄하의 표현으로 ‘동물 같다’, ‘동물만 못하다’는 수사가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일부 동물권 활동가들은 ‘언어/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보다 ‘쾌고감수능력’을 갖는 동물을 돌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위계를 세우기도 한다. 수나우라는 우선, 우리가 장애와 동물에 대해...
인문약방 에세이
그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가장 담담할 죽음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그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냥 스르르 가는 것이겠다.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노병이 겹쳤다면 딸,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가 그렇게 가면 좋겠다. 마치 잠을 자듯, 꿈을 꾸듯.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큰 소란 없이 가는 길.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폴: 용기 있는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암인 걸 알고도 삶의 방향을 급선회하거나 멈추지 않고, 암이 아니었으면 계속했을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145쪽) 않고 신경 외과의로서,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었다. 폴이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아내 루시와 함께 울었다.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고, 담보대출을 이자가 적은 곳으로 바꾸라고 하고, 레지던트 근무 복귀 계획을 언급하는 동료의 말을 막았다. 의사로 일하는 동안 그에게 익숙했던 죽음은 막상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정해져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주변 사람의 죽음조차 받아들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비극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폴은 남은 시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지...
그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가장 담담할 죽음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그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냥 스르르 가는 것이겠다.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노병이 겹쳤다면 딸,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가 그렇게 가면 좋겠다. 마치 잠을 자듯, 꿈을 꾸듯.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큰 소란 없이 가는 길.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폴: 용기 있는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암인 걸 알고도 삶의 방향을 급선회하거나 멈추지 않고, 암이 아니었으면 계속했을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145쪽) 않고 신경 외과의로서,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었다. 폴이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아내 루시와 함께 울었다.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고, 담보대출을 이자가 적은 곳으로 바꾸라고 하고, 레지던트 근무 복귀 계획을 언급하는 동료의 말을 막았다. 의사로 일하는 동안 그에게 익숙했던 죽음은 막상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정해져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주변 사람의 죽음조차 받아들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비극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폴은 남은 시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