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 농활을 다녀오다

김고은
2014-07-01 22:38
883

6/21~6/28까지 7박8일로 밀양농활을 다녀왔습니다. '초록농활'에서 주최하였고 저희 과 학생회가 참여하여 과 단위로 다녀왔습니다. 가서 그 동안 멀리서 지켜봐왔던 운동하는 친구들의 여러 모습들을 봤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문탁에서는 밀양의 이야기를 궁금해할 것 같아서 밀양의 이야기로만 글을 써보았어요. 

 내가 78일 동안 머물렀던 곳은 소 우리가 마당 안에 있는 용회마을 위원장님 댁이었다. 우리가 머물던 별채는 찜질방 마냥 굉장히 더웠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일어나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처음엔 우리를 굉장히 신경써주시나 보다 싶어 덥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방이 아궁이 방이라 사골을 끓이고 계셔서 방이 식을 세도 없이 내내 더웠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다. 우리가 마당에서 사용하던 물에 기름이 떠 있기에 시골이여서 그런가보다 싶어 군말 없이 그 물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 물이 소 여물을 씻는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방에 파리가 너무 많아서 시골이라 그런가 싶어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본채는 파리 한 마리 얼씬도 않는 아주 깨끗한 공간이었고 나중에서야 너희들 왜 에프킬라 안 뿌리냐는 이야기를 소리를 들었다. 일주일 동안 내내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상황이 참 우스웠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구수했다.

 

 구수하신 위원장님 부부는 행정대집행 때 처음 뵜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나는 위원장님의 굉장히 흥분하셔서 강력하게 저항하셨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때의 위원장님과 농활에서 만났던 위원장님은 매우 달랐다. 흥분하셔서 말의 앞뒤가 없으셨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으시고, 장화를 신고 트렉터를 타고 다니시며 허허 웃으시는 군대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크신 동네 할아버지 같았다. 위원장님의 부인은 밀양을 산다의 마지막에 나오시는 김옥희어머님이시다. 김옥희 어머님은 평소엔 꽤나 지쳐 보이는 얼굴빛으로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으셨다. 하지만 알고 보니 마을축제 때엔 노래만 나왔다하면 앞장서서 몸을 흔드시는 흥겨운 예능인이셨다.

 

 

 

 용회마을은 엄마와 함께 행정대집행 날 내려갔던 곳이었다. 경찰과 용역이 못 나간다며 막아놓았던 철사를 무참히 끊어내며 마을 어르신들의 마지막 존엄성마저도 짓밟고 지나갔던 농성장에서 우린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날도 쌍욕과 웃음 사이를 경계 없이 넘나 드셨었는데, 여전히 어르신들은 몇 천의 경찰이 지나간 길 위에서 웃으시며 식사를 하시고 연대자들을 맞이하셨다.

 

 용회마을의 초입이자 다리를 건너기 전인 민박촌은 합의한 상태, 더 들어와 농성장이 위치했던 곳부터는 합의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다리를 경계로 거의 단절되어있다 싶이 하기 때문에 다른 마을에 비해 합의하지 않은 마을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마을들은 합의한 사람들과의 갈등이 깊기 때문에, 이번 농화에서 쫒겨 날 각오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처음엔 밭에서 만난 다른 마을 연대자들의 조용함이 그들의 특성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해보니 그들의 묵묵함은 마을 분위기였던 것이었다. 마을에서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눈초리를 받아가며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낸다고 했다.

 

 

 

 마을은 다른 시골 마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타지인에 대한 약간은 어정쩡한 경계, 대학생에 대한 마을 꼬마들의 호기심, 가부장적인 마을 분위기, 산과 논밭의 풍경. 시골마을의 일상은 큰 잡음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일상은 좀 남다르다. 어르신들의 일상은 농사가 아니다. 이어지는 연대자들을 맞이하는 일과 법원에 출두하는 일, 송전탑반대 운동을 하는 일등이 어르신들의 일상이다. 심지어 우리에게 맡기셨던 일도 어르신들의 논밭의 일이 아니었다. 감자와 멕문동과 같이 송전탑반대 운동을 위한 작물들에 우리를 보내셨다. 이렇듯 이곳이 밀양이다, 얼마 전 행정대집행이 쓸고 지나간 곳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본 다면 몇몇의 특이사항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마을에 들어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는 농성장 앞에서 일을 받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달려온 경차 한 대에서 어머니 한 분이 내리시더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검정 옷을 입고 있어서 경찰이 해코지하러 온 줄 알으셨다는 것이다.

 

 농활기간 중 나는 어르신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다. 일단 하는 일부터 어르신들 논밭일이 아니기 때문에 마주칠 일이 없었다. 또 마을분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선 어쩌다보니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내 역할이 되어 따로 들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듣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어르신들의 너무 굳센 의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굳센 의지 뒤에 숨어있을 공포나 두려움이 오히려 선명하게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어르신들의 아픔이나 슬픔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으로 정리해야 할 아픔이었다면 듣고 나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럴 다짐으로 내려갔었다. 하지만 농활중에 어르신들의 아픔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내내 지고 가셔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차마 그 것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행정대집행날 나는 진심으로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마음으로 내려갔었다. 마지막을 그분들끼리 쓸쓸하게 맞이하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농활을 가겠다고 결심한 것도,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밀양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가 궁금해서였다. 깊은 절망에 빠져 있다면 잠시나마라도 그 것을 생생히 함께 나누고 오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내 생각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르신들은 농성장이 철거되는 것은 어차피 시간문제였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송전탑이 다 지어지지도 않았고, 전선이 걸리지도 않았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지난 몇 년간 해 오셨던 것만큼이나 끝은 저 멀리에 두고 바라보고 계시는 것 같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돌아섰던 것처럼 이분들에게도 언제 돌아서게 만들지 모르는 절망감이나 공포 같은 것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이런 마음을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동시에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공식적으로라도 그만두기를 표명하지 않으셨다면 그러시기 전까지 최대한 함께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르신들은 묵묵히 농성장을 다시 세우셨다. 그분들의 마음과 이야기는 그분들만이 알 수 있는 분위기 속에 무언의 것이 깔려있었다. 나는 쉽게 알아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착잡함과 분노, 서글픔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오묘한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뚝딱! 그렇게 로 옮겨질 농성장 옆엔 눈 깜짝할 사이에 없었던 주방 건물이 생겼고 금세 천막이 옮겨갔다.

 

댓글 3
  • 2014-07-02 09:16

    기특한 고은이^^

    이제는 푸코로 고고씽!! (명식이가 너한테 "유 다이"래...ㅋㅋ....)

  • 2014-07-02 10:34

    "하지만 곧 내 생각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르신들은 농성장이 철거되는 것은 어차피 시간문제였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송전탑이 다 지어지지도 않았고, 전선이 걸리지도 않았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지난 몇 년간 해 오셨던 것만큼이나 끝은 저 멀리에 두고 바라보고 계시는 것 같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돌아섰던 것처럼 이분들에게도 언제 돌아서게 만들지 모르는 절망감이나 공포 같은 것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이런 마음을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동시에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공식적으로라도 그만두기를 표명하지 않으셨다면 그러시기 전까지 최대한 함께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 부분 읽으며 어떤 사진이나 기사보다 진지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밀양 소식 전해주어서 감사해요.

  • 2014-07-03 17:37

    고은아! 밀양 소식 전해줘서 고마워~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 않아] 제작 일정 지연 공지드립니다! (2)
우현 | 2024.05.07 | 284
우현 2024.05.07 284
621
밀양에 농활을 다녀오다 (3)
김고은 | 2014.07.01 | 조회 883
김고은 2014.07.01 883
620
책상 필요하신 분 계신가요? (3)
문탁 | 2014.07.01 | 조회 592
문탁 2014.07.01 592
619
6.29서명운동과 7월 2일(수) 저녁 7시 '세월호 집담회'소식 (5)
콩세월 | 2014.06.30 | 조회 680
콩세월 2014.06.30 680
618
<밀양8신> 밀양에서 올라온 연대서신입니다. (14)
| 2014.06.30 | 조회 1006
2014.06.30 1006
617
세월호 천만명 서명운동-6월 29일(일) 용인지역 전체에서 합니다!!! (1)
| 2014.06.25 | 조회 875
2014.06.25 875
616
<밀양7신> 이계삼선생님의 편지 (7)
콩세알 | 2014.06.23 | 조회 884
콩세알 2014.06.23 884
615
세월호 천만명 서명운동!!! - 함께 할 지원자 필요합니다! (6)
| 2014.06.18 | 조회 824
2014.06.18 824
614
<밀양6신> 다시 싸움은 시작인기라!! (2)
| 2014.06.17 | 조회 526
2014.06.17 526
613
매실 딸 인사드려요 ^^ (15)
매실 | 2014.06.15 | 조회 563
매실 2014.06.15 563
612
마을교사 블로그 공식 오픈!! (5)
문탁 | 2014.06.14 | 조회 5893
문탁 2014.06.14 5893
611
<밀양5신> 밀양에서 온 편지 - 손놓지 말아요!!! (4)
| 2014.06.14 | 조회 1129
2014.06.14 1129
610
<세월호를 기억하는 용인시민들의 모임> - 6.11(수) 2차 회의 보고 (3)
| 2014.06.13 | 조회 531
2014.06.13 53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