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 강독 서문 나머지(+ 초월적 감성학 '공간에 대하여')

호수
2020-11-04 23:21
450

 

애초 8주에 걸쳐 읽기로 한 <순수이성비판> 서문 읽기를 6주째였던 지난 시간 일찍 마쳤다. (예습을 제일 덜 해가는 참가자로서 여울아샘을 안심시키는) 나로서는 선생님들의 읽기 속도가 경이롭다. 서문을 다 읽은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본문의 I. 초월적 요소론 제1편 초월적 감성학에서 1절 공간에 대하여(~250쪽)까지 이어 읽었다.

 

지난 시간 요요샘께서 ‘선험적 종합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부분에서 칸트가 경험주의자와 합리주의자의 논점에서 각기 중요한 부분을 가져와 자신의 논리를 완성했고, 이것이 칸트의 비판철학의 핵심을 이룬다는 점을 친절하게 짚어주셨다. 경험주의자들은 선천적 본유관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모든 관념이나 지식은 전적으로 후천적으로 온다고 봤다. 특히 칸트가 B20에서 직접 언급하는 데이비드 흄은 인과성과 필연성 자체를 부정했다. 칸트는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읽은 ‘순수 수학과 순수 기하학이 선험적 종합 명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결론(이 결론에 완전히 수긍하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물음표를 갖고 간다)에 기대 ‘보편성’을 간과한 경험주의자들을 비판한다. 그렇다고 칸트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본유 ‘관념’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칸트가 보기에 우리가 경험 이전에 즉 선험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관념’이 아닌 ‘형식’이다. 이 형식은 그 자체로는 우리에게 아무런 지식이나 인식을 주지 않는다. 이 형식에 경험이라는 질료가 더해져야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유명한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칸트가 우리 모두가 어떤 공통된 형식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할 때 우리의 신체를 떠올렸다. 특히 우리의 뇌는 우리의 경험에 따라 새로 길이 난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길이 나지만 길이 나는 방식(또는 형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 직관 형식으로서 시간과 공간도 우리의 신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지만 선험적 직관 형식이 주어지는 조건으로 신체를 떠올린다면 칸트가 굳건하게 믿는 ‘보편성’이 담보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각자의 경험의 차이마저도 이 보편성을 완전히 채워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인간 이성의 체계는 칸트가 정립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의 내용이 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칸트가 말하는 보편성은 오늘날 우리에게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 같다. 칸트 이론의 핵심 개념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서는 단 하나의 지구가 단 하나의 태양을 돈다. 단 하나의 지구의 입장에서 바라본 단 하나의 태양. 대상이 아닌 주체에 의해 인식이 결정된다면, 그 주체의 개수만큼 다른 인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박쥐와 인간이 대상을 다르게 인식한다면 그것은 다른 신체를 가졌기 때문인데, 인간 개별자들의 신체도 각각이 다르기에 그 차이가 미묘하다 할지라도 인식 역시 미묘하게나마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를 칸트는 오류라고 볼 것이다. 그래야만 형이상학을 정초하는 것이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신체의 개수만큼 인식의 개수가, 세계의 개수가 달라지는 것뿐 아닐까.

 

막상 본문에 들어가니 서문보다 문장이 시원스럽고 경쾌하게 느껴졌다. 248쪽 하단부터 그 다음 페이지 둘째 줄에서 ‘공간의 관념성’을 어떻게 이해할지가 다들 어려워 했는데 다음 시간에 그 부분부터 먼저 얘기하게 될 것 같다. 선생님들의 의견을 듣고 생각을 모을 다음 시간이 매우매우 기대된다.

댓글 2
  • 2020-11-05 18:06

    호수님. 신체성의 갯수만큼 n개의 세상을 말씀하시는 인상적이네요.
    지난 시간 경험적 실재성과 초월적 관념성은 이번 시간에 읽을 페이지에서 여러 번 나오더라구요.
    둘은 반대의 개념인가 옥신각신 했는데, (동시에) 라는 표현이 꼭 필요한 다른 방식의 같은 표현이었더군요.
    다만 시간과 공간이 실제로 경험된다는 측면에서 경험적 실재성으로 말해지고,
    그럼에도 주관적 표상일 뿐이라는 점에서 관념성으로 말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2020-11-07 14:04

      저도 집에서 좀 더 고민해봤는데.. 시간과 공간이 주관적 표상일 뿐이라는 것은 경험적 실재성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다만 "외적으로 대상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것"을 감성으로 포착해 공간이라는 형식을 통해 주관적 표상을 만든 것을 보고 우리는 경험적 실재성을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외적인 대상이 전혀 없는데 단지 이성의 작용만으로 생각되는 것이 있다 또는 가능하다는 것(예: 유령)에서 우리가 초월적 관념성을 말할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이 초월적 관념성에서는 공간이나 시간이라는 형식이 전혀 필요하지 않아요. 유령은 시간이나 공간의 법칙과 무관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요. 정리하면 공간과 시간은 경험과 관련해서만 실재하고 경험에 앞서서 즉 선험적으로는 실재하지 않는다. 감성적 재료를 인식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형식일 뿐이므로 초월적으로 (외적 대상이 없는 어떤 것을 떠올릴 때는 이 시공간 형식이) 필요하지 않다, 아무것도 아니다, 가상이다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관념성이라는 용어가 혼란을 초래했다고 생각되는데 가령 스피노자 철학에서 관념은 실재성이 있지만 칸트는 관념성이라는 말을 실재하지 않는다, 가상이다라는 의미로 쓰고 있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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