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9~12.1 밀양 후기

자혜
2014-12-0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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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9~12.1 밀양 후기

자혜




동천동

   참여가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2030 세미나를 하다가 한 번쯤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 없이 말을 했고, 그래서 가게 됐다. 생각해보면 76.5 시위 때도 그랬다. 점심을 먹다 같이 전단지를 돌리러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때가 미금역으로 출발하기 약 20분 전이었다. 무언가가 나를 이끄나보다.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무언가, 거절하기 애매한 그런 시선들이 있다. 마냥 편하지는 않아도, 거절하고 나면 더 찝찝해질 것임을 바로 알게 되는 그러한 것 말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농활을 갔다. 그래서인지 짐을 싸는 나는 완전히 감을 잃은 상태였다. 더 두꺼운 침낭을 찾아야겠다는 나의 말에 어머니께서는 너희 밖에서 텐트치고 자는 거 아니다라고 답하셨다. 나는 갸우뚱하며 얇은 침낭을 챙겼다. 수건도 여러 장 넣으라고 하셨다. 나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꽤나 자주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농활을 준비하는 나의 기술이 중학교 때보다 퇴보했다는 것만 다시 깨달았다.

 

 

2 밀양

   밀양에 처음으로 갔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랑은 약간 달랐다. 나는 조금 더 한적한 풍경을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숙박시설들이 많아서 좀 놀랐던 것 같다. 여기저기 박힌 송전탑이 주는 느낌도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그로테스크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보다 뭔가 더 작위적이고 먹먹한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일 역시 계획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맹세코 청바지를 입고 일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청바지를 입은 채 배추밭으로 보내지는 바람에, 3일 내내 일할 때 이미 더러워진 그 청바지만을 입었다. 청바지가 주는 편안함이라는 게 있으니까 뭐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우선 뽑아진 배추를 다듬어 싣는 일을 했다. 그러나 금방 배추를 다듬지 말라는 오더가 떨어져서 배추를 옮기는 일만 했다. 배추를 옮기고 나서는 뽑힌 무를 다듬었다. 앉아서 일을 계속 하니까 무릎과 허벅지가 당기기 시작했다. 첫 날은 다리가 당기는 느낌이 오히려 좋았다.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첫날 오후, 장터에서는 도울 일을 찾다가 토스트를 약간 굽기도 했다. 갑자기 토스트에 들어갈 계란을 몇 장만 구우라는 말에 당황해서 실수할까 겁을 냈다. 다행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느라 바빴고, 그 다음에는 막걸리를 몇 잔 받고, 약간 돌아다니다 공연을 보고 그러느라 몰랐는데, 장터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아 많은 분들이 속상해 하신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굉장히 괴로운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당장 현 상황에 대해 드는 안타까운 생각을 해서라기보다, 여태까지 느껴오셨을 수많은 안타까운 상황들을 떠올려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얘기를 하려고 후기를 쓰는 거겠지만, 내가 어떤 걸 느꼈고 어떤 걸 상상했는지 사실 설명하기가 힘들다.


   고백하건데, 나는 첫 날 배추를 다 뽑을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이틀째에 하는 일을 첫째 날에 하드코어하게 하고 둘째 날 쉰다는 것인 줄 알았다. 내가 일의 양을 정말 과소평가한 셈이다. 그래서 광합성님께 이틀째엔 뭐해요?’ 라고 물었고, 둘째 날 배추를 절인다는 말을 듣고는 우리 그러면 내일은 뭐해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둘째 날, 계속 배추를 다듬고 절이는 작업을 하고, 셋째 날도 배추 절이는 일을 했는데, 그것들을 다 못 끝내고 우리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버스에 오르기 전이 짠했다. 옷을 갈아입고 인사를 위해 도착한 곳에서, 다들 다시 일을 시작했다. 보내려는 말과, 약간만 더 돕고 가겠다는 말이 정을 가득 담은 채 오갔다.

  

3 동천동

   문탁에 도착해서 맛있는 닭볶음탕을 먹었다. 그리고 집으로 빠르게 돌아왔다. 씻고, 잠을 잤다. 그렇게 밀양에서 돌아오고 하루를 보냈다. 허벅지가 당길 때마다 나는 내가 어제까지 일을 했다는 걸 깨닫는다. 허벅지의 고통은 금방 사라질 것이다. 나는 결국 내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오늘도 이 후기를 쓰기 전에 미드를 약간 봤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밀양에서 내가 했던 일은 점점 더 멀어지고, 오히려 화면 안에서 걸어 다니는 좀비들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런 것들이 나를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나의 인생 전체가 이러한 투쟁일 수는 없다. 나는 계속해서 내가 지킬 수 있는 선을 가늠하는 중이다. <밀양을 살다>를 꺼내어 내가 이번에 밀양에 가서 만난 얼굴들을 찾아 이야기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분명히 이것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나는 내가 로 받아들이는 영역의 지평을 넓혀야 함을 안다. 이것이 그럴싸한 문장으로 후기가 끝나기를 바라는 나의 시도만으로 남지는 않길 바란다.



댓글 2
  • 2014-12-03 01:49

    멋져요.. 봄에도 같이 가자.(무언가거절하기 애매한 그런 시선)

  • 2014-12-03 10:57

    자혜언니글은 처음 읽어봐용 ㅎㅎ 글 멋져요 언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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