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 우리의 풍경에서 새들이 사라진다면?

요요
2023-08-2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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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풍경에서 새들이 사라진다면?

제니퍼 애커먼 『새들의 천재성』

 

 

까마귀와 물병

 

목마른 까마귀 두 마리가 물이 든 병을 발견했다. 부리가 물에 닿지 않았다. 한 마리는 포기하고 날아갔지만 다른 한 마리는 자갈을 물어오더니 병에 넣어서 물을 마셨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솝의 상상력만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2009년에 오클랜드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 물병에 물을 조금 넣고, 까마귀가 좋아하는 애벌레를 띄워 놓았다. 이솝우화에서처럼 부리가 닿지 않았다. 자갈 몇 개를 주자 까마귀는 그것을 넣고 물의 수위를 높여 벌레를 먹었다. 두 번째로는 톱밥이 든 병과 물이 든 병을 주었다. 까마귀는 톱밥이 든 물병이 아니라 물이 든 물병에 자갈을 넣어 벌레를 꺼내 먹었다. 세 번째로는 크기가 다른 자갈을 주었다. 까마귀는 큰 자갈만을 골라 물병에 집어넣었다. 이 실험은 까마귀가 톱밥과 물의 성질을 구별하고, 큰 돌을 넣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물리법칙을 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와우!!

 

이뿐만이 아니다. 뉴칼레도니아까마귀는 도구를 만들어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갈고리를 만들어 나무 구멍 속에 들어있는 애벌레를 꺼내 먹는다. 재미있는 것은 뉴칼레도니아의 지역에 따라 갈고리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인간에게 지역마다 다른 문화가 있는 것과 같다. 갈고리 모양은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 아니라 세대 간 전승과 학습의 결과다.

 

캘리포니아 덤불어치는 견과류, 씨앗, 과일, 곤충, 애벌레 등 다양한 먹이를 숨긴다. 덤불어치는 언제 어디에 무엇을 숨겼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부패 속도가 다른 먹이들을 순서에 맞게 찾아 먹는다. 다른 덤불어치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 먹이를 숨기는 척하면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이전에 남의 먹이를 훔쳐본 적이 있는 덤불어치만 하는 행동이다. 덤불어치는 과거의 일화를 기억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다른 덤불어치의 마음을 읽는다.

 

 

도구를 사용하는 뉴칼레도니아 까마귀(한겨레 신문에서 퍼옴)

 

 

사람의 뇌가 IBM이라면 새의 뇌는 애플

 

우리가 새대가리니 닭대가리니 하는 말을 쓰는 것처럼 영어권에서도 머리가 나쁜 사람에 대해 새대가리(bird brain)니 멍청이(pigeon head, turkey)라는 표현을 쓴다. 새들이 이렇게 똑똑한데 사람들은 왜 새들이 멍청하다는 통념을 가진 것일까? 새가 작은 머리를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새의 뇌는 정말 작을까?

 

그렇다. 새의 뇌는 겨우 몇 그램에 불과하다. 어쩌다 새는 그렇게 작은 뇌를 갖게 된 걸까? 새의 조상은 공룡이다. 새는 1억 5천만년전쯤 공룡으로부터 진화했다. 새의 조상은 공룡으로부터 몸을 계속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며 비행 능력을 갖게 되었다. 새는 비행을 방해하는 제약을 없애려고 뼈도 줄여왔다. 새의 날개뼈는 거의 비어있는 것처럼 구멍이 나 있다. 그러나 가슴뼈와 같은 중요한 뼈들은 골밀도가 아주 높고 단단하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방광도 없앴다. 생식기관은 번식기에만 활성화되고, 그 외의 시기에는 정소도 난소도 줄어든다.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게놈수도 줄여왔다.

 

그러나 몸무게는 줄었지만 몸전체에서 차지하는 뇌의 비중은 줄이지 않았다. 몸무게가 64킬로그램쯤 나가는 사람의 평균 뇌무게는 1,360그램이다. 몸무게가 같은 늑대나 양의 뇌 무게는 사람 뇌 무게의 7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사람의 뇌는 확실히 크다. 새의 경우는 몸무게가 비슷하더라도 종에 따라 뇌의 무게에 차이가 크다. 까마귀는 7~10그램이지만 자고새는 1.9그램이다. 4~5배의 차이가 난다. 도구를 제작하는 뉴칼레도니아까마귀의 경우, 몸무게를 64킬로그램으로 환산하여 계산해 보면 뇌무게는 사람과 비슷하다. 새 한 마리의 뇌무게는 몇 그램에 불과하지만 다른 포유류의 뇌와 비교해 볼 때 몸무게 대비 큰 편에 속한다. 뇌가 크면 똑똑하다는 가정에 따르더라도 새는 결코 뇌가 작지 않다. 그렇다면 새의 똑똑함은 큰 뇌에서만 오는 것일까?

 

비록 몸무게 대비 뇌가 크다 하더라도 해부학적인 이유로 새가 멍청하다는 생각이 100년 넘게 과학계에 자리 잡았다. 새에게는 회백질의 대뇌피질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뇌에 대한 생물학계의 오래된 가설 중 하나가 구뇌·신뇌 패러다임이다. 어류와 양서류는 진화가 덜 된 구뇌를 가지고 있고, 포유류는 구뇌 위에 복잡한 사고기능을 담당하는 신뇌가 얹혀 있다는 이론이다. 대뇌피질이 없는 새의 뇌는 파충류에 가까운 구뇌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새의 뇌에도 대뇌피질과 같은 복잡한 영역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뇌의 구조와 형태는 다르지만 복잡한 행동을 할 때 새의 피질에서 신경회로가 연결되는 방식과 분비되는 화학물질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모습은 다르지만 새도 포유류와 같은 뇌의 진화과정을 거쳤다. 바로 이런 점을 배경으로 인간의 뇌가 IBM이라면 새의 뇌는 애플이라고 비유되기도 한다. 두 컴퓨터는 연산처리과정은 다르지만 출력 결과는 비슷하다. 인간의 뇌와 새의 뇌도 그렇다.

 

 

 

 

자기장을 보며 길을 찾는 철새

 

뇌와 지능이 새의 천재성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일 수 없다. 평생 먼 거리를 이동하며 사는 철새는 텃새에 비해 뇌가 작다. 뇌가 자라려면 시간과 영양공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만성조가 조성조에 비해 뇌가 크다. 철새는 계절이 바뀌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큰 뇌를 갖기 어렵다. 그러나 뇌의 크기와 상관없이 철새는 인간의 신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뉴질랜드에서 날아온 도요새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서해 개펄에 도착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다시 시베리아로 날아간다. 이들은 1만키로가 넘는 거리를 2,000미터 상공에서 평균 시속 60키로 정도로 쉬지 않고 날아와서 그 사이에 절반으로 줄어든 몸집을 불린 뒤 다시 목적지를 향해 날아간다. 도요새와 같은 철새들은 어떻게 그 먼 거리를 길을 잃지 않고 이동할 수 있을까?

 

이동 중인 철새를 납치하여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데려다 놓아도 올바른 방향을 잡고 목적지를 찾아 날아간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새의 길 찾기 능력은 유전자에 내장된 본능이라고 가정해 왔다. 그런데 유전만이 아니라 경험과 학습이 중요하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철새를 새장에 가두면 이동 시기에는 특정 방향으로의 이동의 충동이 나타난다. 새장에 코일을 감으면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혼란에 빠진다. 자기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동 중인 새들을 포획하여 전자기 펄스에 노출시키니 두 가지 결과가 나왔다. 이동 경험이 없는 어린 새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여러 번 이동 경험이 있는 어른 새는 경험과 자기장 사이의 불일치로 길을 잃었다. 이 실험은 본능에 더하여 경험과 학습, 기억이 철새의 지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새의 몸에서 자기장을 파악하는 기관이 어디인가에 대한 여러 이론이 있다. 최근에는 망막의 특정 분자가 별에서 오는 빛(광자)과 만나서 쪼개지고, 그 전자들의 양자얽힘 현상을 이용하여 새가 자기장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스콧 와이덴솔, 『날개위의 세계』). 그러나 자기장 나침반이 전부는 아니다. 후각신경 일부를 절단하거나, 눈에 뿌연 렌즈를 끼워서 시각을 방해하는 실험들의 결과, 길찾기 능력이 단 하나의 감각기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철새들이 가지고 있는 지도는 태어날 때부터 내장된 것이기도 하지만, 이동의 경험이 더하여 지면서 지도가 새롭게 구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연구는 철새가 자기장 나침반 외에도 여러개의 나침반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철새는 길을 찾기 위해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능력, 태양의 위치와 별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 지형을 파악하는 시각적 인지 능력, 후각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이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또 새가 가진 신체능력 중 인간과 비교하여 놀라운 것은 수천미터 상공을 나는 데도 산소부족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이라면 고산병에 걸릴 상황에서도 철새들은 먼 거리를 날아간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포유류의 경우 호흡기관이 신체의 20분의 1인 것에 비해 새의 호흡기관은 신체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허파는 온몸에 퍼져있는 기낭에 연결되어 있다. 기낭에 공기를 저장하는 신체구조로 진화되어 왔기에 높은 곳에서도 호흡을 할 수 있다. 자기장을 파악하며 전지구적 규모의 지도를 그려가는 능력이나 호흡과 같은 새의 탁월한 신체능력은 지능을 넘어서는 새의 천재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류세의 위기 앞에 취약한 새의 운명

 

‘현재 새들은 인류세 때문에 유례없는 규모로 커다란 변화에 직면해 있다. 새들이 살아왔던 서식지는 농경지로, 도시로, 도시근교로 계속 바뀌고 있다. 많은 새들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327쪽) 철새들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철새들이 이동하며 중간에 머무르는 기착지들이 새만금 개펄처럼 사라지고, 번식을 위해 도착한 숲도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도 철새들을 위협한다. 붉은가슴도요는 아르헨티나의 푸에라 델 푸에고에서 15만 킬로미터 떨어진 북극으로 이동한다. 이들은 델라웨어만에 투구게의 산란시기에 도착하여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1980년대 이후 인간들의 투구게 남획으로 투구게의 개체수가 85% 이상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투구게의 산란 시기도 앞당겨지고 있다. 도요새는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그런데 철새들만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니다.

 

쇠백로, 왜가리, 민물가마우지, 참새, 청둥오리, 비둘기, 까치, 까마귀는 우리 동네 탄천을 산책할 때 만날 수 있는 새다. 이 중에서 참새와 비둘기, 까치, 까마귀는 성공적으로 도시화에 적응한 새다. 도시에 적응한 새들은 모두 뇌가 크고 적응력이 뛰어나다. 명금류의 경우는 자신의 음조를 기꺼이 바꾼다. 도시는 낮은 주파수의 소리들이 많이 발생한다. 검은머리박새는 낮은 주파수로 발산되는 도시의 불협화음을 이기는 높은 주파수로 노래한다. 이 박새들은 소음이 줄어들면 원래의 낮은 음조로 돌아가 낮고 느린 노래를 부른다. 도시에 사는 꼬까울새는 소음이 잦아드는 밤에 노래를 부른다. 그렇다고 해서 도시에 잘 적응한 새들의 생존의 안정성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 새들의 개체수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겁이 많고, 사는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 융통성이 없는 새는 안정된 환경을 선호하기 때문에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다. 습관과 서식처가 분명히 정해져 있는 새들은 인류세에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높은 산악지대에 사는 새들은 기후 온난화로 살 곳을 잃어간다. 지난 반세기 동안 뉴기니 산악지대에 사는 새들은 70%가 활동 범위를 15미터 이상 높은 곳으로 옮겼다. 온난화로 인해 계속 거주지를 위로 옮기고 있다. 50년 전에는 꼭대기에서 300미터 낮은 높이에 살던 흰날개울새는 지금은 꼭대기에서 120미터 내려오는 곳에 살고 있다. 이제 온도가 0.5도에서 1도만 올라가도 이 새들은 갈 곳이 없다. 그들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름다움을 본 죄

 

『새들의 천재성』의 저자 제니퍼 애커먼은 천재성이란 단지 지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새들을 알면 알수록 지능 외에도 이들이 얼마나 환경에 잘 적응하며 진화해왔는지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물에 대한 연구는 분명 지능에 가중치를 두는 편향이 있다. 우리가 다른 동물의 삶을 연구할 때 빠지기 쉬운 이런 오류를 생태학자 칼 사피나(1955~)는 예리하게 지적한다.

 

다른 종에서 지능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믿는 프로타고라스의 오류를 흔히 범한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 아닌 것들의 인간 같은 지능을 연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들이 우리와 같은 식의 지능을 가졌는가?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긴다!(칼 사피나, 『소리와 몸짓』 509)

 

다윈은 동물과 인간의 정신 능력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라고 말했다(『인간의 유래』). 과학자들은 데카르트적 세계관에 입각해 동물을 영혼 없는 기계처럼 취급해 왔지만 다윈이 맞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새에게도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 새들도 다른 존재의 마음을 읽고 사회적 교류를 하고 도구를 만들고 언어적 소통을 하며 부모 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지식과 경험을 전수한다. 어려서부터 새와 가까이 해온 제니퍼 애커먼은 새의 천재성은 인간적 관점의 지능 이상이며 모든 새는 각자의 천재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새들의 천재성』에서 소개된 과학적 실험과 연구 중에는 매우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도 있다. 이동 중인 새를 납치하여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데려다 놓는 것 정도는 약과다. 자기장에 노출시키거나 후각신경을 절단하여 돌려보낸 새는 다시는 동료들을 만나지 못했다. 과학자들의 연구 덕에 우리는 새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야생동물 연구의 윤리에 대한 질문도 던져져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오래전 제인 구달도 야생동물의 지능을 관찰하려면 연구소 장비가 아니라 생태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새의 뇌를 해부하고 신경을 절단하기 전에 그들의 야생의 삶에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먼저다.

 

황윤감독의 영화 <수라>에서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을 꾸려나가는 오동필님은 도요새 수만 마리가 날아오르는 '아름다움을 본 죄'로 자신은 새만금을 기록하고 새들을 관찰하는 탐조활동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을 본 죄', 그 말은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새들의 천재성』을 읽으면서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마음 깊이 새들이 진화되어 온 경로에, 그들의 삶에 깊은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 새들의 운명에 무심할 수 없을 것 같다. 일찍이 생태 중심적 윤리를 선구적으로 제시한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 1887~1948)가 한 말도 다르지 않다.

 

북부 숲의 가을 풍광에는 땅이 있고, 붉은 단풍이 있고, 목도리 뇌조가 있다. 전통적인 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뇌조가 그 지역의 전체 질량이나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풍광에서 뇌조를 빼버리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죽고 만다.(『새들의 천재성』 357)

댓글 3
  • 2023-08-31 10:29

    새를 너무 몰랐네요.
    인류세에 가장 가장 취약한 이들이 새라니 너무 미안하구요. 우선 이번 머내 영화제 때 수라 상영한다니 영화속 새들부터 만나보겠습니다.

  • 2023-08-31 15:29

    지난 번 물고기에 이어서
    요요샘의 관심이 새에게로 날아갔네요.
    너무 멋집니다.
    아침마다 듣게 되는 새소리가 어느 날 사라진다면,
    상상만해도 절망적입니다.
    새와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은 분명 새 세상일 겁니다.

  • 2023-08-31 19:42

    잘 읽었습니다.
    어쩐지 동네에서 까치, 까마귀, 참새, 비둘기만 보인다 싶었는데....이것도 다 이유가 있었군요.

    새의 지적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 내용이 나오는 대목에서 "헉!! 이래도 되는거야?" 싶었는데, 그것에 관한 윤리적 지적까지 콕 찝어 주셔서 좋네요.

    그리고 저도 언제가는 '아름다움을 본 죄'를 경험하고 싶은데...힘들겠죠.

논어 카메오 열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문중(노나라 대부)이 큰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집에 기둥머리에는 산을 조각하고 동자기둥에는 마름풀을 그렸으니,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子曰  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 『논어』「공야장,17」     『논어(論語)』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들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다. 더불어 당대 혹은 선대의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언급 되는데 생각보다 노(魯)나라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 공자 당대에 권력자였던 삼환(三桓)을 제외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나라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논어』에 두 번 언급되는 장문중은 노나라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인 듯하다. 하지만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읽기 전까지 장문중이 노나라의 대부였다는 것 이외에 거의 아는 것도 없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었다. 게다가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집’에 장식을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썩지 않는 세 가지, 삼불후(三不朽)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가수들이 다양한 장르의 명곡을 재해석하여 부르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불후(不朽)는 ‘썩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불후라는 말은 『춘추좌전』에서 유래했는데 노나라 양공(襄公) 24년, 숙손표가 진(晉)나라의 범선자와 나눈 대화에 등장한다. 범선자가 사람이 죽어도 썩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숙손표가 덕을 세우는 것(立德)과 공을 세우는 것(立功), 말을 세우는 것(立言) 세 가지가 오래 되어도 폐해지지 않으니 불후라고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후대에는 이 세 가지를 ‘삼불후(三不朽)’라고 칭하였다. 이 때 숙손표는 불후의 예로 장문중을 들었다.   “우리 노나라 선대부 중에 장문중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가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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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1 | 조회 535
요요와 불교산책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요요
2023.09.20 | 조회 443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치매 이후에도 삶이 있다 『내가 알던 그 사람』(2018), 웬디 미첼       지난번 1234에서 ‘유쾌한 치매관계를 위한 상상력 한 자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상상력 한 자밤을 얻어 볼까 하고 『내가 알던 그 사람』을 골랐다. 저자 웬디 미첼은 영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년간 근무하던 중이었다. 이혼 후 청소부를 하며 싱글맘으로 두 딸을 키우다가 이직을 하고, 뛰어난 기억력과 일처리 능력 덕분에 간호사의 근무일정을 작성하는 복잡한 업무처리 팀의 노련한 팀장이 되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58세에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 웬디.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치매 이전의 자신을 말한다. 85세가 아니고 58세라니! 엄마의 상상의 세계만이 문제가 아닐 듯하다.                                                         감정의 책꽂이를 채우다   웬디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의사가 ‘알츠하이머’와 ‘치매’라는 두 단어를 말하는 순간은 그냥 멍하다. 치매진단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아는 인생을 훔쳐갈 단어. 치매는 이렇게 ‘들이닥치고’ 그 이유조차 모른다. ‘거대한 시꺼먼 블랙 홀’, 완전히 백지상태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 자신이 없었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머릿속이 목화솜이 반쯤 차 있는 것처럼 뿌예지고, 조깅을 하다가 이유 없이 넘어지고, 포크를 떨어뜨리고, 생각한 것만큼 말할 수 없고, 밑도 끝도 없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치매 이후에도 삶이 있다 『내가 알던 그 사람』(2018), 웬디 미첼       지난번 1234에서 ‘유쾌한 치매관계를 위한 상상력 한 자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상상력 한 자밤을 얻어 볼까 하고 『내가 알던 그 사람』을 골랐다. 저자 웬디 미첼은 영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년간 근무하던 중이었다. 이혼 후 청소부를 하며 싱글맘으로 두 딸을 키우다가 이직을 하고, 뛰어난 기억력과 일처리 능력 덕분에 간호사의 근무일정을 작성하는 복잡한 업무처리 팀의 노련한 팀장이 되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58세에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 웬디.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치매 이전의 자신을 말한다. 85세가 아니고 58세라니! 엄마의 상상의 세계만이 문제가 아닐 듯하다.                                                         감정의 책꽂이를 채우다   웬디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의사가 ‘알츠하이머’와 ‘치매’라는 두 단어를 말하는 순간은 그냥 멍하다. 치매진단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아는 인생을 훔쳐갈 단어. 치매는 이렇게 ‘들이닥치고’ 그 이유조차 모른다. ‘거대한 시꺼먼 블랙 홀’, 완전히 백지상태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 자신이 없었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머릿속이 목화솜이 반쯤 차 있는 것처럼 뿌예지고, 조깅을 하다가 이유 없이 넘어지고, 포크를 떨어뜨리고, 생각한 것만큼 말할 수 없고, 밑도 끝도 없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인디언
2023.09.18 | 조회 439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차별은 없다, 정말입니까?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2023), 이주희     감정사회학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왔던 현타는 ‘지금 내 감정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감정은 자발적이고 은밀한 나만의 본질같은 것이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연출된다는 것.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바로 그런 ‘감정’과 ‘구조’의 은밀한 콜라보에 ‘차별’이라는 다소 버거운 주제를 함께 이야기 한다.         처음엔 ‘차별’이라는 주제에 오히려 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차별받으며 혹은 차별하며 살아온 사람일까?’라는 물음에 이내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며, 차별이 식상한 주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이미 ‘차별’에 너무 익숙해져서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받지 않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혹은 식상하다는 이 느낌은 아마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더뎌지고 희미해지고 무산되는 과정에서 번번이 느꼈던 익숙한 실망감이거나, 그도 아니면 너무 어마한 주제에 대한 무기력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마디로 언급하기엔 좀 불가능하지만 ‘감정’, ‘구조’, ‘차별’ 이라는 어마무시한 삼총사를 1234를 통해 ‘아무튼’ 만나 보았다.     차별은 ‘구조’와 맞물려 있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차별에 둔감한 이유는 우리 각자가 서로 다른 성향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조 속에 숨어 들어간 차별을 식별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차별은 차별하는 이나 차별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과 국가, 그리고 여러 신념체계가 복합적으로...
차별은 없다, 정말입니까?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2023), 이주희     감정사회학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왔던 현타는 ‘지금 내 감정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감정은 자발적이고 은밀한 나만의 본질같은 것이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연출된다는 것.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바로 그런 ‘감정’과 ‘구조’의 은밀한 콜라보에 ‘차별’이라는 다소 버거운 주제를 함께 이야기 한다.         처음엔 ‘차별’이라는 주제에 오히려 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차별받으며 혹은 차별하며 살아온 사람일까?’라는 물음에 이내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며, 차별이 식상한 주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이미 ‘차별’에 너무 익숙해져서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받지 않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혹은 식상하다는 이 느낌은 아마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더뎌지고 희미해지고 무산되는 과정에서 번번이 느꼈던 익숙한 실망감이거나, 그도 아니면 너무 어마한 주제에 대한 무기력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마디로 언급하기엔 좀 불가능하지만 ‘감정’, ‘구조’, ‘차별’ 이라는 어마무시한 삼총사를 1234를 통해 ‘아무튼’ 만나 보았다.     차별은 ‘구조’와 맞물려 있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차별에 둔감한 이유는 우리 각자가 서로 다른 성향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조 속에 숨어 들어간 차별을 식별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차별은 차별하는 이나 차별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과 국가, 그리고 여러 신념체계가 복합적으로...
스르륵
2023.09.17 | 조회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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