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학 신부님 강의 후기

오영
2016-11-06 01:13
325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라는 사막의 수행자를 소개해 주셨다. 그는 자신의 수행자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일종의 수행 안내서인 <프락티코스-수행생활에 관한 가르침>을 썼다. 이연학 신부님께서 이를 쉽게 소개해 주셨다.

 

1. 실천을 통한 관상과 관상을 통한 실천

 

수행과 실천은 동전의 양면처럼 영성생활의 두 측면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수행과 실천은 곧 우리의 공부와 삶이 갖는 관계 그대로인 셈이다. 그 둘은 서로 뒤섞여 있고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한데 우리는 논리의 전개 상, 이 둘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강의를 통해 이 둘은 늘 함께이고 함께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다만 우리의 삶과 활동에 있어서 드러나는 양상이 그때그때 다르게 보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결국은 흐름과 집중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수행과 실천, 공부와 일상의 삶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면, 때로는 그 어느 한쪽에 무게 중심이 쏠릴지라도 다시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이 우리의 경험과 인식 모두를 깊어지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배움을 몸으로 체화하는 과정이 곧 수행이고 실천이며 실천을 통해 관념적인 지식과 가치들이 현실에 적용되는 지혜로 탈바꿈하는 것이리라. 이런 과정 없이 이론이나 앎은 결코 실제가 되지 못할 것이다.

 

2. 일상의 수행이 경계해야 할 것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수행생활에 필요한 가르침을 정리했는데 이 핵심은 사람들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8가지 로기스모이 (logismoi)를 어떻게 통합하여 삶 안에서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에 있다. 로기스모이는 이른바 악덕이지만 이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내적 평정인 것이다. 이것을 아파테이아라고 부른다. 신부님은 로기스모이를 수행을 방해하는 생각들, 소음들이라고 표현하셨다. 이 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 안의 부정적인 것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느냐가 아파테이아에 이르는 과정이자 수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진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것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욕망들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필요조차 못 느끼는 무지의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8가지 경계해야 할 것들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슬픔과 분노, 아케디아(나태, 태만)에 대한 것이었다. 식욕, 성욕, 명예욕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소음들이라면 슬픔, 분노, 아케디아는 감성적인 영역으로, 우리가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와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밀접한 것들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과거를 털어내지 못하는 한 마음의 평정은 없다. 그리고 과거를 떨쳐내지 못해 고통스럽다는 것은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부님은 우리에게 현존하는 시간은 오직 현재 뿐임을 강조하셨다.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은 없다. 오직 우리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시간들이다. 과거는 기억 속에 있으며 기억은 기억할 때만 의미있는 것이므로 과거는 없는 것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기대나 염려일 뿐이다. 그러므로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도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실재하지 않는 시간에 얽매임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present)과도 같은 현재를, 유일하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된다. 시간을 되돌리지도 앞서 살지도 못하는데도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다. 신부님의 말씀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 주셨다. 온전히 내 것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현재 뿐이며 호흡 한 번으로 우린 언제나 다시 현재로 되돌아 올 수 있다. 수행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삶 그 자체이다

 

3.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 함께 부대끼며 사는 삶

 

거의 모든 수행은 훈련을 통해 익숙해지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공동체 안에서의 삶이라고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사는 삶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수행에 있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무척 공감되는 대목이었다. 그 안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내가 원치 않아도 의식하지 않아도 자기애를 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때로는 부대끼고 상처받아도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가 다시 분명해졌다. 반드시 사막으로 떠난 은수자만이 나를 버리고 떠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사람들 속에서 나를 잊는 수행이 더 어려운 수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께서도 은수자는 사막이라는 공간 속에서 오히려 자기애에 더 빠질 수 있다고, 그래서 아무나 은수자로서의 삶을 살 수는 없다고, 오히려 신비적 삶이 착각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신부님은 공동체의 삶은 타자의 타자성을, 나의 주체성만큼이나 그의 주체성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늘 인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므로 자기 자신과 더 치열하게 싸우는 현장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고슴도치의 가시에 서로 찔리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삶을 사는 것은 그 속에서 쌓이는 내공이, 나를 지탱하게 하고 변화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자체가 수행이라는 말씀을 곱씹는다. 나로 하여금 너가 바뀌고 너로 인하여 나와 우리가 변화하는 삶은 또한 자기 자신의 의지나 힘만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삶의 고비들을 넘어서게 한다. 신부님은 그것을 우주가 갖는 부력이라고 하셨는데 그만큼 나의 삶이 아주 크고 무한한 공간과 시간 속에 있다는 것, 나 역시 우주만물의 일부이며 그 흐름에 조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얻는 마음의 평정을 의미하는 것 같다.

 

4. 버리고 떠남으로써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삶- 친교, 공생의 삶

 

끝으로 공동체 생활은 훈련받은 만큼만 살 수 있다는 신부님의 말씀에 딱 꽂혔다. 영적 생활의 열매는 결국 인간관계라는 말씀에 마음 한 구석이 뜨끔하다. 영적 생활이 꼭 종교적 영성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보기에 우리의 삶 자체를 구도의 삶이라고 본다면 우리 각자 그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어느 분의 질문에 대해 신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가늠할 수 있다고 하셨다.

얼마나 덜 자기중심적이 되었는가, 얼마나 더 겸손해졌는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할 줄 알게 되었는가?’ 결국 관계가 관건이라는 말씀이시다. 물론 이 말씀을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인정받으려는 인정 욕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혹은 타자에게 무조건적으로 동화되는 예스맨이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공동체가 잘 돌아가도록 유지하는 것은 몇 몇 사람의 리더쉽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공동체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보살피는 사람들, 본인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활동하는 역량을 만들어내고 지지하는 활동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씀도 매우 울림이 컸다.


강의 내내 신부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계속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간 신부님께서 얼마만큼 치열하고도 깊이 있는 관상과 수행의 삶을 살아오셨는지 잘 모르지만 신부님의 삶 자체가 말씀 하나 하나에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불어넣는 것만 같았다.  신부님께서 말씀 중간 중간 호흡을 가다듬으시고 생각을 정리하시는 동안그 잠깐의 침묵과 여운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때문일까? 말씀하시는 사이 사이의 틈이 공백이 아니라 채움으로 느껴졌고 강의와 질의 응답이 이어지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참으로 고맙고 귀한 시간이었다.

 

 

 

댓글 4
  • 2016-11-06 20:04
    오영쌤의 후기로 그 시간의 감동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을 받네요
    내적 투쟁의 중요성,
    신체의 감각을 느껴보고 호흡을 느끼는 행위
    현재, 지금에 집중하는 삶,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공동체생활의 수행적 측면,
    8가지 로기스모이 즉 경계해야하고 부정적인 것 또한 정확한 인식이 중요하며 기도의 가장 높은 지향은 하느님으로부터 떠날수 있게 해달라는 것. 
    자기가 하는 것을 모르는 경지, 자기중심적인 것에서 탈피하고 관계에서 겸손해지는 것
    모두가 다 제가 궁금하고 직면한 고민들이기에 
    이연학신부님께서 해주신 말씀들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울릴듯 하네요. 
    귀한 시간 만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2016-11-07 12:25

    오영샘의 자발적인 후기..

    덕분에 축준위는 엄청난 힘을 얻었을듯..

    샘의 보시가 저의 마음의 평정에도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주신 문탁샘의 고수를 알아보는 눈에도 감사드립니다.

    수행이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눈 앞이 조금 더 환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능력은 부족하지만 계속 해보겠습니다. 수행의 일상, 일상의 수행

  • 2016-11-07 16:34

    왠지 오영샘의 후기가 있었으면 했는데 바램이 이루어졌네요~ 숙제하고 차근차근 읽어보겠습니다.

  • 2016-11-07 21:32

    개인적 사정으로 강연을 못들어 아쉬웠는데,  감사하네요.

    잘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금요일 강연은

    "놓치지...않을꼬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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