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강연] 어떤 독서 예찬

문탁
2016-10-25 21:40
426

11월5일 인문학축제 첫번째 공개강연(11월 5일, 토, 오후 2시)의 강사이신 이연학 신부님이 

작년 10월 <성서와 함께>라는 잡지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독서가 뭔지, 독서는 어떻게 수행이 되는지에 대해 쓰셨네요.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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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독서예찬

 

 

 

 

 

 이연학 23161708-02.jpg

 

 

 

글읽기의 즐거움

 

"솔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산새 소리, 풀벌레 소리, 울음소리, 거문고 소리, 바둑 두는 소리, 섬돌에 떨어지는 소리, 창으로 눈이 흩날리는 소리, () 달이는 소리 등은 모두 소리 중에서도 지극한 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읽는 소리가 가장 좋다."

 

송나라 문절공 예사 어른이 쓰셨다는 문장을 두런두런 소리내어 읽노라니, 문득 행간에서 솔바람과 시냇물의 서늘한 기운이 새나오는 듯하다. 산새와 풀벌레 소리, 울음과 거문고와 바둑돌 소리, 빗소리와 찻물 끓는 소리가 생생히 들리다 못해 보이는 듯하다. 마침내 누군가 낭랑하게 책읽는 소리까지 보이는 하다. 아하, 이것이 바로, 낭송 때에 생긴다는, "죽은 글자들의 부활" 사건이로구나!

 

걷는 일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안다. 걷기가 그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만은 아니란 사실을. 그것은 자체로 충만한 의미요 목적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어떤 현자께서 말씀하셨다. '' '도로' 같은 말이 아니라고(신영복). 글읽기는 실용적 지식이나 정보 습득을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취미' 영역으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인생의 가장 즐거움과 고마움 하나는, 지금도 끊임없이 읽을 만한 글을 만난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배움의 기쁨, 호학(好學) 열락이 안에서 샘솟는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맙다. 오래된 말씀(고전) 배우는 기쁨이 새삼스럽고, 새로운 관점을 밝혀주는 말씀 듣는 일이 더없이 반갑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그렇다, 호학 자체가 정녕 창조주의 은사다.

 

1.jpg 

 

 

 

 

글읽기의 괴로움

 

그러나 글읽기가 마냥 즐거움이기만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워야 하는 수행이기도 하다. 흔히 '공부' 번역하는 영어 study 라틴어 studium에서 유래한다. studium 사람들에게 애정어린 관심을 뜻하기도 했고, 그렇게 관심을 갖게 것에 대한 충직한 헌신, 노고(勞苦) 과정을 뜻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것은 수도승들의 '수행(askesis)' 거의 동의어이기도 했다. 중세의 스승 빅토르의 후고(+1141) <읽기 수행에 관한 교육(Didascalicon de studio legendi)>이라는 보석같은 작품을 남겼는데, 제목에 '읽다(legere)' 붙어서 나오는 '수행(studium)'이란 단어에는 애정이란 뉘앙스도 노고란 뜻도 들어있다. 

 

글읽기가 노고인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애초에 '머리' 쓰는 '정신노동' 아니었기 때문이다. 묵독(默讀) 아직 모르던 구송문화(口誦文化) 시절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몸을 쓰는 '육체노동'이었다. 이반 일리치 선생에 따르면 텍스트가 기록된 두루마리나 꼬덱스(codex, 오늘의 '') 통해 그들은 '추상화된 생각(abstraction)' 아니라 '물질로 구체화된 생각(incarnation)' 만났다. 그래서 두루마리나 책을 읽는 일은 하나의 , 혹은 인격(저자

댓글 1
  • 2016-10-26 19:24

    지성을 넘어 영성으로 진입하는 글읽기의 수행.. 

    제게도 책읽기가 그런 수행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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