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17 세미나 후기(서경 필명편) - 말랑말랑

누룽지
2021-06-24 05:50
303

서경 필명편 - 말랑말랑

 

세미나 후기를 쓴다는 건 그 날 배운 것들에 좀 더 머물러 볼 기회를 받은 것이겠지요?

이 선물은 한 달이 약간 지나면 이내 제 앞에 놓여 있곤 합니다.

선물을 어떻게 받을까?

큰 소리로 인사하며? 두손으로 냉큼? 쭈삣거리며 슬그머니?

일단 다른 분들의 후기에 꼬박꼬박 댓글을 달기로 맘 먹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쓸지 저도 모르는 이 몽롱함을 벗어날 때까지 그나마 이거라도 하려고요.

 

주나라 강왕 때의 이야기네요

성강지치라 불리던 주나라 초기의 태평성대한 40년 속의 이야기니까 일단 심장 쫄깃쫄깃한 문무왕 때의 이야기 들을 때와는 자세가 달라지더라고요.

畢命의 필은 필공을 가리키는데 東伯이며 삼공의 반열에 있는 중신인 필공에게 강왕이 은 유민의 다스림에 대해 내려준 誥命이 이 편의 편명입니다.

주공에서 그의 아들 군진에게로 이후 군진이 죽자 필공이 이일을 맡게 되네요. 주 왕실의 4대 군주를 보좌한 정치 내공 어마어마한 필공이니까 그 일을 맡길 수 있다고 강왕이 밑밥을 까는 걸 보면 어렵긴 어려운 일인가봐요. 罔曰民寡 惟愼厥事 라는 대목만 봐도 백성이 작은 읍이라고 일을 쉽게 여기지 말고 삼가라 한 것은 결코 중앙과 지방의 단순 통치(행정)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이 골치 아픈 얘기를 왕이 목에 힘주고 하고 있는데 왜 머리 속에선 말랑말랑만 떠오르는 건지...

소수집단(은나라 유민)을 더 큰 공동체(주나라)에 통합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겠지요.

강하지도 유하지도 않아야 그 덕이 진실로 닦여진다는데(不剛不柔 厥德 允修) 무엇을 선이라 강하게 관철하고 무엇을 관용하고 포용하여 부드럽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큰 공동체의 보편적인 정의나 규범은 강하게 해야겠지만 소수집단의 문화, 종교, 관습, 자율성 등은 존중해야 소수집단의 통합이 원만히 이루어지는 것일테니까요.

무엇이 사치이고 사치가 아닐까? 사람마다 집단마다 다를 수가 있을텐데 누굴 위해 누가 결정하는거지?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에서, 다양성과 통일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까.

갈등이 생길 때마다 비판적 성찰을 할 수는 있을까? 항상 옳은 것은 없을텐데.

관복이 주는 근엄함과 권력에서 나오는 말의 무게를 상상하며 필공과 강왕의 미팅(?)을 떠올려야 할 것 같은데 나라가 안 망하고 태평성대를 이뤘다는 것을 보면 사고가 무척 말랑말랑했을 이 분들의 표정이 궁금해지더라구요.

문제의 해결방식은 오늘날과 달랐겠죠. 통치집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과 민주적 다수결에 의한 사회적 합의는 다르니까요. 그러나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올바르다는 보장이 없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시네요.

 

 

댓글 2
  • 2021-06-24 12:39

    오! 서경의 군진편을 읽을 때는 아들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이 후기 덕분에 주공의 아들이 백금과 군진이라는 것을 알았네요.

     

  • 2021-06-24 17:06

    자칫 말랑말랑해질 수 있는 타이밍이라 강왕의 당부가 더 와닿는 것 같아요. 나라가 안정되었다고 생각하여 방심할 때 일은 생기잖아요. 나라든 개인이든요.

     

    후기에 꼬박꼬박 댓글을 다시겠다는 발심,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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