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토용
2021-06-15 20:47
327

<강왕지고康王之誥>를 읽었다.

강왕은 무왕의 손자이자 성왕의 아들이다.

앞서 <고명顧命>에서 성왕은 강왕을 후계자로 세우는 명을 내린다.

이번 편은 강왕이 고명을 받고 신하들이 그를 천자로 인정하는 의식을 치룬 후 서로 당부하는 내용이다.

태보 소공이 강왕에게 문왕과 무왕이 어렵게 창건한 주나라를 잘 다스리라는 경계의 말을 올리고,

강왕은 제후들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당부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후들이 물러난 후 강왕이 면복冕服을 벗고 다시 상복喪服을 입은 것에 대한 주석의 내용이다.

강왕이 상중에 입었던 상복을 면복으로 갈아입고 제후들을 접견한 후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예에 어긋난 점이 있었기에 그렇게 긴 주석을 달았으리라.

채침은 이 문제에 대해 소동파의 자문자답을 주석에 쓴다.

 

“성왕의 장례를 아직 치루지 않은 상태에서 군주와 신하가 모두 면복을 입는 것이 예인가?”

“예가 아니다.”

“변례變禮라고 할 수 있는가?”

“변례라고 할 수 없다. 예는 부득이한 경우에 변하는 것이니, 예를 들면 형수가 물에 빠진 경우에만 손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다. 3년상에 이미 상복을 입었는데 상복을 벗고 다른 예복으로 갈아입은 경우는 없다.”

“성왕의 고명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상복을 입고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째서 안 되겠는가?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자식의 관례冠禮 때에 상이 있으면 상복을 입고 그대로 관례한다’고 하셨다.

관례는 길례吉禮인데도 오히려 상복을 입고 하는데, 고명을 받고 제후를 만나는데 상복을 입을 수 없다는 말인가?

강왕이 면복을 입고 제후를 만나고 폐백을 받았는데 만약 주공이 살아계셨더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주석의 내용이 특히 압권이다.

공자가 『서경』을 편찬하면서 예에 어긋나는 이 내용을 어째서 빼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지극하다(至矣)”고 대답한다. 부자간, 군신간에 가르침과 경계가 깊고 간절하고 밝게 드러나 후세의 법이 될 만하기 때문에 공자가 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에 어긋난 것은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 소동파의 마지막 말이었다.

 

유가에서는 상례와 제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만큼 상복을 언제 어떻게 입느냐 하는 문제도 간단치가 않았을 것이다.

상중이면 상복을 계속 입고 모든 행사에 참여하면 간단할 것 같은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무수히 많은 격식과 절차가 있는 것이 예법이니까. 하긴 조선시대 예송논쟁으로 권력다툼을 치열하게 했을 정도이니.

처음에 읽었을 때는 강왕이 신하들을 접견할 때 상복을 면복으로 갈아입은 것이 예법에 어긋난 것이라고 한다면 그걸로 잘못됐다고 하면 되는데, ‘지극하다’라고 주석을 단 것은 솔직히 좀 오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공자는 상복을 입는 예가 맞지 않더라도 강왕과 신하들이 서로 주고받은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유가는 덕이 있는 군주, 그런 군주를 보필하는 어진 신하, 그 둘의 훌륭한 케미로 잘 다스려지는 나라를 지향하니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예는 정말 때에 따라 적절하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지 절대 변하지 않는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다. 

댓글 3
  • 2021-06-17 06:27

    마음이라는 걸 담는 건 어떤 형식이든 온전하기 어려운가 봐요 

    게다가 권력이라는 힘이 개입하는  곳에서는 더욱더요

    문득 상복과 면복은 대체 뭘 다르게 만들었나 궁금해지네요

     


     

  • 2021-06-17 09:36

    노자도 공자를 보고 쌀알을 세어서 밥을 하는 자라고 했다고 하는데

    공자를 마다한 안영이 여러가지로 이해가 되네요

  • 2021-06-18 11:36

    채침이 자신의 해석의 근거로 구법당인 소동파를 인용한 것을 읽다 보니 그럼..

    왕안석의 신법당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봤나 하는 궁금증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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