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 주역> 13회 천화동인 - 모이기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진달래
2018-08-1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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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모이기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동인괘 50.png

 

주역의 포인트는 변화(). 세상의 어느 것이던지 결국 바뀌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본 비()괘는 하늘과 땅이 고정되어 흐름이 없이 꽉 막힌 시대를 의미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것도 끝까지 막혀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비괘의 다음에 나오는 것이 동인(同人)괘이다. 동인괘는 천화동인(天火同人)으로 하늘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는 모양이다. 이는 불기운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으로 두 괘의 성질이 서로 비슷하다고 본다. 비슷한 것이 서로 모이는 것, 이것이 바로 동인이다.

 

야외에서 사람들이 모이니 형통하다




동인괘에 들어오니 이제 형통()하다는 글자가 나온다. 비괘 다음에 동인괘가 나온다는 것은 흔히 어려운 시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하나씩 모이기 시작하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의 힘으로 함께 어려움을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면 형통하다고 한 것이다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단서가 붙어 있다. 집이 아니라 야외()에서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야외에서 모이니 형통하고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며 군자의 바르게 함이 이롭다. (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利君子 貞)”


 

왜 하필 야외에서 모이라고 했을까? 어떻게 보면 좁은 집보다 넓은 들판에서 사람들이 모여야 더 많이 모일 수 있으니까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 주석은 단 이천은 집이 아니라 야외를 강조해서 동인괘를 풀었다. , 사람들이 모이는데 집과 같은 사적(私的) 장소가 아니라 넓은 들판()과 같이 탁 트인 공적(公的)인 장소에서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초구의 효사도 문밖에서 모이니 허물이 없다(同人于門 无咎)”고 했다. 이는 사람들의 모임(同人)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친한 사람들끼리 사사로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공정하게 대동(至公大同之道)’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정이천.jpg



이천(1033~1107)이 살았던 북송(北宋)시대는 유학의 부흥기였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왕안석으로 대표되는 신법당과 사마광으로 대변되는 구법당 간의 파벌 싸움이 치열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파벌싸움에서 이천은 유배당하고 1103년에 그의 가르침은 금지 당하기에 이른다. 그래서인지 이천보다 먼저 주역에 주석을 단 왕필(226~249)의 경우 야외에서 모인다(同人于野)”, “문밖에서 모인다.(同人于門)”와 같은 말에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 반면에 이천은 사람들이 모임에 있어서 사사로운 모임이 아니라 공적인 모임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파벌과 당파로 얼룩진 송대의 정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울부짖고 나중에 웃는다




동인괘는 5개의 양효와 1개의 음효로 되어 있다. 육이(六二)효는 원래 음()의 자리에 음이 왔고 중()의 자리이며, 구오(九五)효와 정응(正應)이 되기 때문에 굉장히 좋을 것 같은데 효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 주역의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괘사만 보면 당연히 좋은 것만 있을 것 같은 것도 효사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에 따라, 혹은 아래 혹은 윗자리의 효와의 관계 등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이다. 동인괘의 육이효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집안에서 사람들이 모이니 부끄럽다,(同人于宗 吝)”

 

여기서 종()이라는 것은 집안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같은 종족, 고향 친족 등을 말한다. 이천이 말한 사사로이 만나는 사람들이다. 특이 이 경우 육이효가 정응이 되는 구오효를 말한다. 동인괘에 음효는 육이효 하나인데 하필 구오효와 정응이 되어서 둘만 서로 만나려고 하는게 문제가 된다. 이천의 주석에 특징 중 하나는 오()의 자리를 대부분 군주의 자리로 해석하는 것이다. 구오효는 육이효와 마찬가지로 양()의 자리에 양이 오고 중의 자리에 있다. 중하고 바른 자리에 있음에도  이천은 구오의 군주가 잘못하는 것이 있다고 봤다.

 

사람들이 모이니 먼저 울부짖고 나중에 웃으니 큰 군대로써 이겨서 서로 만난다.(同人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하나 밖에 없는 음효인 육이효는 동인괘의 모든 양효들이 사귀고 싶어 하는 효이다. 그러나 정응이 되는 구오효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다른 괘들은 쉽게 육이효에 다가갈 수 없다. 덤불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높은 언덕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구삼효), 담벼락까지 올라가 보기도 하지만 막강한 구오효에게 쉽사리 덤빌 수 없(구사효). 이렇게 서로 눈치를 보고 있으니 구오효 역시 그가 막강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만만치 않은 구삼효와 구사효 때문에 쉽게 육이효와 만날 수 없다. 이천은 이러한 구오효의 처지를 의리가 올바르고 이치가 우세하기 때문에 분함과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서 울부짖는다.”하였다. 물론 둘은 만나게 되지만 그가 큰 군사를 써서 육이효를 만날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해 이천은 군주가 홀로 편애하는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다른 양효들과 함께 하지 않고, 오직 육이효만을 만나고자 하는 것은 군주의 도리가 아니며 대동(大同)이 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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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무리로 사물을 변별한다


마지막 상구(上九)효에 이르면 사람들이 모이는데 교외에서 하니 후회가 없다.(同人于郊 无悔)”라고 했다. 구오효를 대체로 군주의 자리로 보는 것과 같이 상구의 자리는 대개 힘이 없는 은퇴자의 자리로 본다. 사람들을 모았지만 먼 곳에서 모으니 호응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후회는 없지만 이천은 좋은 것도 아니라고 했다.


동인괘는 불통의 시대를 상징하는 비괘의 다음이다. 꽉 막히고 답답한 시대를 지내다보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그러다보면 답답한 시대를 지나 대유(大有)괘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그냥 모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큰 뜻은 같지만 서로 생각하는 결들은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상전에서 말하기를 하늘과 불이 함께 있는 것이 동인이니 군자가 보기에 같은 무리로 사물을 변별한다.(象曰 天與火 同人 君子 以 類族辨物)”


 

하늘과 불이 함께 한다는 것은 하늘은 원래 위에 있고 불의 성질은 올라가는 것이어서 그 둘이 함께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보고 군자는 이를 보고 같은 무리를 분류해서 사물을 분별한다고 한다. 이천은 같은 무리로 사물을 변별하는 것에 대해 군자 소인의 당, 선악과 시비의 이치, 세상에 이치에 합치되는지 떨어지는지, 상황이 돌아가는 이치의 다른 점과 같은 점 등을 분명하게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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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때마다 모두 이야기한다. “모여야 합니다. 힘을 모아야 합니다.” 주역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어려운 시대를 건너기 위해서는, 혹은 어려운 시대를 지내다보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고. 하지만 모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는데 친함을 따지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비슷하다고 다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상황을 잘 판단하는 지혜가 함께 필요하다.

 

 

 

 

댓글 1
  • 2018-08-24 10:38

    각각 중정의 자리에 있는 육이와 구오가 서로 정응임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것이 안좋은건 동인의 시대이기 때문이겠지요.

    괘에 따라 좋은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세심히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주역을 공부하는 재미중에 하나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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