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가왈부논어> 자로가 필요해!

인디언
2018-07-23 02:56
378

  <曰可曰否논어>는 '미친 암송단'이 필진으로 연재하는 글쓰기입니다.



   子曰 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 無宿諾  (안연 12)

  공자가 말했다.  한쪽 말만 듣고도(혹은 한마디 말로) 송사를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자로 밖에 없을 것이다.

  자로는 판단을 질질 끌며 묵히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이 싸울 때에도 한쪽 말만 듣고는 누가 잘못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송사가 벌어져 서로 자기가 옳다고, 억울하다고 하는데, 한쪽 말만 듣고 판결을 한다면 이건 잘못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 이 글을 보았을 때는 성질 급한 자로가 한쪽 말만 듣고 성급하게 판결을 내린다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이 말이 공자가 자로를 칭찬하는 말이었다. 이는 자로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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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로는 원래 野人, 즉 성밖에 살던 깡패였다. 성질이 거칠고 용맹을 좋아하며 심지가 강직했다고 한다. 수탉의 꼬리를 머리에 꽂고 수퇘지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공자를 때리려고 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공자가 예로 대하자 그에게 감화되어 제자가 되었고, 평생 공자 곁을 지키며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깡패였던 사람이 공자의 제자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동안 자기가 살던 방식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자로는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로는 ‘해진 솜옷을 입고 여우나 담비 가죽 옷을 입은 사람과 함께 서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에게 겉치레는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내면의 자존심과 긍지로 가득찬 사람이었다. 또한 자신이 가진 좋은 것들(수레, 말, 고급 가죽옷 등)을 친구와 함께 나눠 쓰고 싶어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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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로는 특히 약속을 잘 지키는 믿을만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던 것 같다. 노나라 옆 작은 나라인 소주의 대부가 자신의 영지를 바치고 노나라에 망명하고자 하면서 ‘자로를 보내 구두로 약정하면 따로 맹약을 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천승의 제후국인 노나라와 맹약을 맺는 것보다 자로의 말을 더 믿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로는 이를 거절하면서 ‘만일 노나라가 소주와 싸운다면 나는 이유 불문하고 그 도성 아래에서 죽어도 좋다. 그러나 그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소주의 반역자인데 내가 그의 말을 들어준다면 그의 불충을 의롭게 만드는 셈이 되니, 나는 그리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춘추좌전』 애공14년)



  그는 위출공과 장공(괴외)의 왕위쟁탈전이 일어났을 때 ‘출공의 녹을 먹었다면 그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회피해서는 안된다’며 굳이 현장으로 들어갔다. 괴외가 보낸 무사의 칼에 갓끈이 끊어지자, 칼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군자는 죽더라도 관은 벗을 수 없다’며 갓끈을 다시 매고서 죽었다. 자로로서는 공자의 가르침을 끝까지 실천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좋은 말을 듣고 충실히 실천하지 못하면 이것도 아직 행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좋은 말을 듣게 될까봐 염려할 정도로 철저하게 배우고 익히는 사람이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로, 사심없는 그의 관점과 그가 보여준 신뢰는 한쪽 말만 듣고 송사를 판결해도 될 만큼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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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로는 판단을 질질끌며 묵히는 법이 없었다(無宿諾)고 하니, 지금 우리에게 자로같은 재판관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싶다. 요즘은 너무나 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질질 끌면서 시간을 보낸다. 변죽만 울리면서 핵심은 건드리지도 않고 여론을 살펴가며 재판을 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개인적인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좇느라 제대로 된 판결은 애초부터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이것저것 살필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자로라면, 삼성 반도체 백혈병 송사를 몇 년씩 끌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기 전에 한마디 말로 이 무더위를 멀리 날려줄 멋진 판결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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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2018-07-24 09:54

    훌륭한 재판은 훌륭한 판관에 좌우되는건가요? 

    오늘날 재판, 객관적 사실판단과는 다른 관념인듯하네요.

    아, 어렵네요

  • 2018-07-24 22:24

    요즘은 온통 송사에 얽혀 어지러운 세상이네요.

    자로와 같은 명쾌한 재판이 가능할지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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