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5] 봄꽃과 돌아온 새털

향기
2020-03-31 13:12
371

큰아이 학교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온지 일년이 되었다. 내가 다시 빠글빠글한 서울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큰아이의 운명의 힘이 여기까지 밀어낸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문탁은 30km, 차로는 40분정도의 거리였지만 자주 발걸음을 할 수 없었다. 바뀐 환경에서 아이들 쫓아다니느라 더구나 생각지도 못했던 돈 버는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배치가 완전히 바뀌었다. 바뀐 배치 속에서 쩔쩔매기도 징징거리기도 했다. 바쁜 생활 속에서 문탁에 들락거릴 때는 머릿속에 넣기 바빴던 책의 내용들이 이상하게도 새로운 배치 속에 펼쳐졌다. 그리고 질문이 만들어졌다. 혼자 담금질을 하지는 못했지만 신기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책보다는 핸드폰과 티비를 가까이하며 멍때리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코로나로 새학기도 일도 미뤄지고 집콕 생활이 지쳐가고 있을 때 봄꽃처럼 새털샘의 책이 집에 도착했다. 책을 펼쳐 들면 글자들이 머리에서 모래처럼 버석거리기만 해서 새털샘의 책을 읽어 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반은 의무감을 가지고 끝까지 읽었다. 플라톤의 『국가』라는 어려운 책을 일상과 엮어 좋은 글솜씨로 쉬운 듯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플라톤과는 별개로 감동과 용기(?)를 얻게 되었다. 좋은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문탁을 5년간 들락거렸지만 내 안에서 되돌아오는 대답은 “넌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다른 삶을 살겠다고 꿈틀거렸지만 남들처럼 살지 못하냐, 네가 그렇게 산다고 뭐가 변하냐, 너 사이비 종교에 다니냐 등등의 쿠사리에 고민하곤 했었다. 또는 말이나 생각과는 다른 생활을 하는 내 자신에 좌절하곤 했었다. 배치가 달라지고 돈 열심히 벌고 자식교육 잘 시키자는 심정으로 살고 있었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에서 서성거리고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새털샘은 말을 걸어왔다. 너만 그런 고민을 하는게 아니다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산다고….새털샘의 일상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일상에서 철학을 통해 분투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용기를 얻었다. 문학평론가의 면모를 보이는 글들은 읽다가 얻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술주정뱅이 글에서는 큰웃음과 공감을 느낀다. 시에 대한 글에서는 평소에 접하지 않는 시들을 보면서 새로움에 눈을 뜬다. 멋드러진 리뷰를 새털샘에게 드리고 싶었지만 능력밖의 일이고 책 속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답답한 봄에 꽃 같은 선물 진하게 감사드린다. 다음 책이 벌써 기다려진다. 그리고 철학을 전공하는 친구딸과 책과는 거리가 먼 친구, 사는게 힘든 친구에게 책을 보내려한다.

 

철학이란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생활양식의 선택과 그것의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과 결정이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과의 우정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대화의 윤리학이고 플라톤이 체계화하고자 했던 철학의 정수이다. (p.192)

 

 

댓글 5
  • 2020-03-31 15:12

    향기님.... 눈물 날 뻔 했어요!
    감사합니다.

  • 2020-03-31 16:14

    새털-책-꽃-향기, 이렇게 선이 이어지는 건가요?^^

  • 2020-03-31 18:06

    아이고, 보고잡네^^

  • 2020-04-02 22:42

    응원 릴레이도 참!!! 향기롭게 하시는구먼~~
    보고잡소 놀러오시오!!

  • 2020-04-03 15:12

    진짜 보고싶다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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