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마을공동체 파괴실태 보고에 다녀왔습니다~

히말라야
2017-03-24 22:19
436

세월호가 인양되기 시작한 3월 23일 목요일.

아침 8시에 집을 나서니 9시 40분 쯤 국회 앞마당에 도착하더군요.

가서 보니... 제가 난생 처음 국회라는 곳에 가는 거더라고요~ 

마당도 넓찍하고 잔디밭도 좋고, 무엇보다 봄이 와서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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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도 아닌, 의원회관의 1소회의실을 방문할 뿐이지만

방문증을 쓰고, 신분증을 맡기고 검문검색대를 통과하는 소란을 겪은 후에...

증언대회가 열리는 회의장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빈자리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대부분은 전국각지에서 송전탑 갈등을 겪고 있는 당사자분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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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이번 대회의 공동주관자인 더불어민주당의 우원식, 권칠승, 진선미 국회의원의 인사말을 차례로 듣고 

바쁜 국회의원님들이 중간에 자리를 뜨실 것을 대비해 시작부터 사진촬영을 해서...저는 정말 너무 웃겼습니다.

사회를 보시면 김준완 신부님은 ... 그냥 그러려니... 하시는 듯...뭐...그렇죠, 사진을 먼저 찍을 수도 있는 거죠..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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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발제는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로 인한 마을 공동체 해체현황에 대한

연세대 국문과 김영희 교수의 발표였습니다. 

김영희 교수는 2017년 1~2월 간 밀양주민들을 한 분 한 분 찾아다니며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를 자신의 '인문학적 탐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가 밀양에 가서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는

"내 말을 들으러 와 줘서 고맙다"였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고통과 상처에 대해 다가가는 것이며

그러한 말 자체가 지닌 가치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작업이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농촌에서의 마을공동체의 파괴는 도시에서의 발생하는 이웃간의 불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삶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농촌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재산'상의 피해라는 것은 부의 증식수단으로서의 재산이 아니라

그들이 평생 일궈온 삶 그자체이며,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

김영희 교수의 발표를 통해 ...저는 다시 한번 환기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발제는 이러한 파괴 구조와 정책 대안에 대한 최재홍 변호사의 발표였습니다.

저는 발표내용보다...앞선 김영희 교수의 차분하고 논리적인 발표에 이어...

정동적이고 격렬한 어투로 말하는 변호사님의 모습이 너무 대비되어서...

중간에 담배갑을 꺼내들고... 송전탑이 줄 수 있는 피해에 대해서...

적어도 이렇게 폐암에 걸린 사진정도의 경고를 해야한다고..

그 외적인 모습을 보느라 실제 내용에 집중을 못했네요. ㅎㅎ

시간관계상 마지막 결론으로..법제정, 책임규명, 한전 재조사 등...으로 후다닥 갔습니다.

세번째 순서는 실제 송전탑 건설로 인해 마을 공동체 파괴를 겪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청도의 이은주님께서 증언하시는 동안 결국 목이 메어서 말을 제대로 잇질 못하셨습니다.

다섯분이 증언을 하셨고, 마지막 순서는 밀양의 김영자님이셨어요.

투쟁하면서 가장 힘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싸울 때는 몸은 힘들었지만 다같이 한 마음으로 그 힘듬을 겪어냈는데

지금은 같은 마을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스피노자를 읽고 있는 저에게는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아서

공동체로부터 '헤렘'당한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증언대회 중간에 열 몇분의 어르신이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멀리 전남 광주에서 154kV 송전탑 반대운동을 하기 시작하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군산 새만금에서는 송전탑 반대운동을 시작하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송전탑 피해자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 합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여기 모인 많은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니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보고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공동체 생성의 자리로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목적이기는 하지만

이 분들의 깨진 공동체가 다시 원래대로 회복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가장 많은 힘을 얻을 사람들은 결국 바로 여기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는 이 분들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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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이계삼 선생님께서 우리 한명 한명의 손에 꼭 쥐어주신...

국회의원회관 식권을 들고 ^^ 밥을 먹으로 갔지요~

뭐 맛은 별로였습니다... 

채식주의자를 배려하지 않은 고기가 들어간 볶은밥이 디폴트라...

소수자를 배려하지 않는 국회의원 식당에...기분도...별로...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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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여기까지가 원래 계획이었지만...같이 가자고 잡아끄는 광합성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밀양에서 올라 온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권기영 샘 옆자리에 앉으니...권기영샘은 또 제 손을 꼭 잡으며 연신 고맙다고 하십니다.

거참... 세상에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고맙다는 소리를 듣기 쉬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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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타고 밀양까지 간 것은 아니고요~ 남가좌동에 자리한 헌책방 겸 카페...Maju입니다.

김영희 교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운영하는 것 같은데...주택가 한 구석에 소박하게 자리한 곳입니다.

두달간 밀양어르신들을 구술조사한 김영희 교수님이 그것으로 그칠 수가 없어서

그동안의 밀양 사진들을 모아 이곳에서의 전시를 기획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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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작은 장소인데, 모든 공간을 활용하여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현관 문 바로 위부터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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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 벽면에도 알뜰하게 사진을 전시했고...

복층구조라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난간도...역시 전시 공간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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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서... 대자보 만들기 힌트도 얻어 왔습니다...퀼트 대자보~ 너무 이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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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본인들의 사진을 열심히 둘러보십니다...어이구, 나 네...누구네..너 여깃다...

주로 힘든 싸움의 시기에 찍힌 사진들을 보면서... 어르신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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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가장 반가웠던 분은...바로 박은숙샘이었어요. 몇번 밀양에 갈 때마다 매번...

단짝이셨던 권기영샘과 갈등하는 모습을 봤는데..이번에는 함께 올라오셨더라구요.

그리고 그 분도 거기 걸려있는 이 사진을 보고 가셨겠지요.

두분이 여전히 티격태격 하기는 하시지만... 왠지 느낌이 좋습니다.

밀양에 4월에 농활을 가게 되면...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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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시를 돌아본 후 어르신들이 모두 다 함께 둘러 앉으셨습니다.

내려가면 이제 다시 마을 별로 흩어질테니... 모인 김에 마을별로 소감을 한 말씀씩 듣습니다.

서러움에...감격스러워서...혹은 비장함으로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을 사라할머님이 명랑한 목소리로...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박근혜도 저리돼고..우린 여한이 없잖아요~"

라는 이 한 마디가 모두 가볍게 웃음으로 만들어주셨어요.

머리가 하얀 어르신들이... 편안한 여생이 아니라 고단한 여생을 선택하신 진짜 어르신들이...

제게 늘 배움을 주십니다...라고 감동하는 순간...제 전화벨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퍼집니다.

큰 딸래미 학교담임선생님이... 딸래미가 아파서 조퇴한다고 전화를 하셨네요.

일단 전화기너머에서 아프다고 울먹이는 지원이에게는 파지사유로 가라고...하고...

아..정말..땀납니다. 세상일은 늘 이런 식인거죠.... --;;

급하게 파지사유로... 전화를 돌립니다...전화를 받은 고은이의 말에 따르면...한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다행히 사서카페에서 공부하던 콩땅이 마음과 시간을 내어 지원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네요~

그때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전까지 마음이 복잡합니다.

아픈 딸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는 엄마이면서... 먼곳에 사시는 밀양어르신들에게 뭘 배우고 있는게 맞기는 한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뭐... 엄마가 없어도 도와줄 다른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배웠을 테니...딸한테도 좋고, 

나도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으니..또 앞으로 살면서 그 선물을 다시 더 크게 증폭시키면 되지뭐...

이렇게 마음 편하게 먹고 버스에서 봄볕을 받으며...깜빡 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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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은 친구를 "나의 슬픔을 대신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부른다지요...

밀양의 슬픔을 내 등에 지고 있나...생각해 보다가...거꾸로...오히려 밀양의 어르신들이

우리가 만들어 낸 슬픔을  자신들의 등에 짊어지고 살아가시는...우리의 친구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문탁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서로 서로에게...또 문탁이 밀양이나...

세상에서 우리와 연결된 다른 또 어떤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도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콩땅이나... 그 밖에 늘 부족한 나를 챙겨주는 친구들에게도 참 고맙구나...하고...그 순간만큼은..

정말 진실되게 고마움을 느꼈다는 것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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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2017-03-24 22:43

    아...가고 싶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전해 들으니 감사합니다

  • 2017-03-24 22:48

    히말라야 덕분에 전해 들은 소식에 코끝이 징~하네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박근혜도 저리돼고..우린 여한이 없잖아요~"

    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다시 코끝이 징~ 

    아프다는 지원이 전화 받고 진땀 나고 걱정했을 히말라야 모습에

    또 코끝이 징~ 

  • 2017-03-25 02:28

    덕분에....저도 잘 다녀온 듯한 느낌입니다...고맙습니다...^^

    ps. 이래서 웹진이 없어진게야.....여기가 웹진인줄....하지만 다방이라는....헐헐....^^;;;

    • 2017-03-25 10:0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17-03-25 10:01

    고생했네. 더 북팀하고 남가좌동이라도 가봐야 할 듯^^

  • 2017-03-25 22:18

    언제였더라...암튼 밀양 가는 첫해에 얼떨결에 따라갔었는데..

    그땐 솔직히 인연이 이렇게 오래 이어지리라 생각 못했었는데..

    한번 맺은 인연을 귀하게 여기고, 오랫동안 이어가는 선생님들께 많이 배웁니다.

    저도 농활에 따라 가고 싶습니다.

  • 2017-03-25 22:53

    친구는 서로 슬픔을 나누어 갖겠죠.

    만냐야 친구가 되겠죠.

    다녀온 히말라야는 진짜 친구를 만났네요. 

    여기서도 거기서도.

    박은숙샘 가족 사진이 찡합니다.

  • 2017-03-26 11:03

    저는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보고가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생성으로 변화했다는 

    말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우리가 무얼 생성해낼지 아무도 모른다는것

    그래서 앞으로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거..

    히말샘 긴 후기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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