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실습생의 하루

동은
2023-10-2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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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합니다. 실습하는 곳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것이 실습 생활에서 제일 가장 최대로 좋은 점입니다.

9시에 유치원에 도착하면 눈치보기의 시작입니다. 전날 실습 일지를 제출합니다. 일지는 매일매일 쓰는데 이상하게도 일지를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질 않아서 초반에 많이 헤맸습니다. 일지에 대해서 할 말이 한바가지긴 하지만 어쨌든 매일 5장 정도의 일지를 써갑니다. 요즘에는 한시간 집중하면 써내지만 초반에는 새벽까지 붙잡고 써야 했습니다.

 

10시가 되면 아이들이 손을 씻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모입니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영어수업을 듣습니다. 영어수업때는 영어만 사용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동화책을 읽고 단어를 맞추고… 저는 아이들이 어떻게 수업을 듣는지 지켜봅니다. 처음에는 그냥 참관정도였는데 이제는 아이들 자세도 지도합니다.

30분간의 영어 수업시간이 지나가면 선생님과의 시간입니다. 유치원의 수업 주제는 한달마다 바뀌는데 제가 있는 반의 이번달 주제가 환경입니다. 환경과 관련된 동화책을 읽거나 동요를 부르거나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을 합니다. 주제를 두고 정말 다양한 활동들이 중첩되어 펼쳐집니다. 확실히 강의를 듣거나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오후

점심시간입니다. 유치원 점심시간은 11시 40분쯤 시작됩니다. 지하에 있는 조리실에서 밥을 가져옵니다. 제가 속해있는 반이 27명으로 가장 인원이 많아 밥도 가장 무겁습니다. 제가 밥을 챙겨오면 점심 배식 시작입니다.

처음에는 이 시간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아이들하고 밥먹는게 뭐 그리 어렵냐고 하지만 보통 노동자들에게 휴식시간인 점심시간은 유치원 선생님에게는 제외입니다. 아이들의 식사량 식습관을 모두 파악하고 그것마다 다르게 배식을 해야 하는 건 물론 먹으면서도 계속 아이들을 봐야 합니다. 누가 제 시간이 못먹는지, 아니면 안먹고 친구들이랑 딴짓을 하는지 다 지켜봅니다. 그러다 못먹는 아이가 있으면 도와줘야합니다. 도와주는건 먹여주는 걸 의미하는데 처음에는 먹여주는 행위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어떻게 먹는지를 모르면 정말 뉴스에서나 보는 학대행위가 되는건 한순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뭐 제가 있는 곳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어쨌든 유치원 선생님은 점심시간도 노동시간이라는 것이….

 

하루종일 눈치보며 이런걸 적습니다 ㅋㅋ

 

한시간 정도 되는 점심시간이 지나면 또 수업과 특별활동의 연속입니다. 외부 체육선생님이 와서 수업을 하기도 하고 클레이나 로봇프로그램같은 것이 있기도 합니다. 원어민이 와서 하는 수업도 있고 생각보다 굉장히 컨텐츠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그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다른 반에 얹혀서 30분정도 시간을 보냅니다.

처음 실습을 시작했을 때 저는 뭘 할지 몰랐는데요, 지도교사(이 사람에 대해서도 할 말이 한바가지)가 저에게 “실습하시는 분은 뭐 하시는 일 없고 아이들이랑 놀아주세요. 이름 많이 불러주시고 놀아주시고 훈육을 할 필요는 없고 사랑만주세요.” 진짜 이랬거든요. 그래서 저는 나와있는 아이들이랑 즐겁게 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즐겁게 놀았더니 … 혼났습니다. 아이들 훈육을 하지말라고 했지 지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뭐 이해가 아주 안가는 건 아닙니다. 자기 반 애들이 남의 반에 얹혀있는데 거기서 소란스럽게 굴었다고 한다면…  그런데… 지도를 하라고 한다면 뭘 어떻게 해야할지 제대로 지시를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실습이 절반이 넘어가서야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닥이 서서 이제는 괜찮아졌지만 초반에는 정말 하루 종일 눈치를 보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으려고 뒤에 앉아있었더니 실습일 10일이 지나서야 참관하러 온거 아니냐고 하질 않나.. (아마도 제가 안보이는데서 핸드폰만 한다고 생각한듯) 뭐 암튼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2시 30분이 되면 일단 유치원에서의 일과는 끝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의 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남아서 종일반을 보냅니다. 오후시간은 오후간식을 먹고 각자 담당하는 선생님의 스타일대로 보냅니다. 한 선생님은 식물 알아보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선생님은 그냥 아이들을 놀게 둡니다.

4시가 되면 종일반 아이들이 갈 시간이 되어서 저도 끝입니다. 하지만 남아서 청소를 해야 합니다. 청소를 하고 나면 4시 30분 정도가 되는데 제가 가야하는 시간은 다섯시이기 때문에 30분동안에는 할일을 하라고 합니다.

 

에에올이 떠오르는 구글아이 ….

 

저녁

다섯시가 되면 끝났다는 생각에 집에 가는 길에는 막 활기가 돕니다. 그러다가 밥을 먹으면 스위치가 내려가듯 기운이 빠집니다. 제가 추위를 잘 안타는데 기운이 빠지니까 한기가 너무 잘 느껴지더라고요. 일과는 끝이 났지만 어쨌든 제가 해야 할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일지를 쓰고, 가능하면 문탁 관련 할일을 하고, 가능하면 운동도 가고 싶고, 방정리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아이들과 지도교사 틈에서 돌아다니다보니 기운이 없습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된다는 생각으로 문탁에 갑니다. 문탁이라도 안가면 절대 뭐라도 못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갑니다.  (그러고는 라꾸라꾸에서 자긴 하지만 ..ㅋㅋ)

그렇게 밥을 먹고 나서 뭘 좀 하고나면 금방 자정입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하려고 했던 일을 거의 손도 못댔거든요. 할일이 가득 겹쳤을 때는 중간고사 레포트에 일지 5일치 수정, 인문약방 일들이 쌓여있었습니다. 하려고 해도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기한은 정해져있는데 원래면 안자고서라도 하는데 밤을 샐 채력도 여건도 안되다보니까 답답합니다. 그러다가 한 쌤이 하신 말에 그냥 눈물이 툭 납니다 …ㅋㅋ 뭐 들으실 분들이 들었던 제가 운 일은 그냥 이런 거였습니다. 저도 쪽팔리니까 그만 말하기 ~!~! ㅠㅠ

 

암튼 대충 한두시가 되면 쫓기듯이 잠을 잡니다. 다행히도 뒤척이는 시간 없이 잠은 빠르게 듭니다.

이렇게 어느 실습생의 하루 끝!!

 

 

힘들고 할일에 쫓기듯이 지내고 있지만, 지도교사도 친절하지 않아서 한참을 헤매다가 지금 좀 나아지고 있지만…ㅋㅋㅋ 실습하면서 생각하고 느낀 점을 글로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다행히 배우는건 정말 많습니다. 뭘 배우느냐? 한다면 음 …. 바로 떠오르진 않지만 어쨌든 보고 느끼는 것들이 많아요. 생각보다 아이들을 만나며 알아가는 부분은 적더라고요. 이제 딱 8일 남았습니다~ 매일매일 달력에다가 엑스표 치며 출근하고 있어요 ㅋ

실습때문에 문탁생활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1234 글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호들갑을 떨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 실습 잘하고 있어요~~

 

 

 

 

 

 

 

댓글 8
  • 2023-10-21 10:48

    아! 9 to 5, 풀타임 유치원 실습생의 애환을 이제 조금 알 것 같군요.
    동은에게 실습생이 된다는 것은 조직생활의 고단함을 체험하는 시간인 듯.
    그래도 배운게 많다니 뭔가 안심이 됩니다. 뭘 배웠을까, 앞으로 그 이야기를 차차 듣고 싶어요.
    마무리 잘하고, 실습생에서 공부방회원으로, 실습일지에서 1234로 무사히 건너오길!!ㅎㅎㅎ

    • 2023-10-21 16:44

      ㅋㅋㅋ 맞아요 ㅎㅎ… 실습생이란게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내부인도 아니고 외부인도 아니라 … 어떻게 부유하며 한달을 보내야 하는가 … 그래도 얼마 안남았어요~!~!

  • 2023-10-21 18:35

    정군샘 말처럼 문탁 밖, 어른 동은의 모습인 듯^^;;

  • 2023-10-22 21:33

    씩씩한 동은이니까 잘 버티고 있네.....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듯하넴.
    글의 속도 만큼이나.....ㅎㅎ

    일주일 남았겠네.]
    평생 다시 없을 실습생일테니, 즐겁게? 보내삼~~~

  • 2023-10-23 08:07

    동은아 고생이 많다... 문탁 공부방으로 돌아오면 조용하고 아늑할 거야~~^^

  • 2023-10-23 17:55

    실습생은 항상 고달프지 ㅎ
    그래도 잘 하고 있다니 다행이네
    배우는게 많으면 성공적인 실습 아닌가? 즐겁게 생각해~~^^

  • 2023-10-23 20:12

    동으나 힘내ᆢ!!
    (울집도 에에올의 구글아이가ᆢ)

    1000001005.jpg

  • 2023-10-24 22:30

    고생이 많다.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