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과 사마귀

우현
2023-10-12 20:40
310

 

 저희 어무니와 저에겐 징크스가 하나 있는데요, 어무니가 해외여행만 가시면, 제가 갑자기 아프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제가 죽으나 사나 별 신경 안 쓰시는 것 같지만, 어릴적에는 걱정을 하느라 여행을 제대로 못 즐기는 경우가 많으셨대요. 중국을 갔더니 얘가 장염에 걸렸다더라... 어디에 갔더니 얘가 감기에 걸렸다더라...

 

 며칠 전에는 정말 오~랜만에 이태리로 여행을 가셨는데요, 그 사이에 제가 말벌에 쏘인 거지 뭡니까. 이미 한바탕 해서 소문을 주워들으셨겠지만, 저도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글쎄 베란다 창문 틈으로 기어 들어와서 제가 널어놓은 양말에 들어가있던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문탁에 나가려고 양말을 신던 저는 뭔가 이질감이 느꼈죠. 정확히는 "뭔가 이상.." 할 그 타이밍에 쏘였더랩니다. 처음엔 정체도 모르고 뭔가가 물었다는 것만 알았는데, 바닥을 구르면서 도대체 뭐가 물었길래 이렇게 아픈가 확인을 하려고 그녀석이 도망친 쪽을 살펴봤죠. 덩치나 생긴 게 명백한 말벌이었어요. 하필 발바닥을 쏘여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너무 놀래고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다가, 우리 약사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둥글레는 내과가서 주사를 맞고 오라고 하더래요. 마침 가까이 있는 내과에 가서 무사히 침을 뽑고 약도 받아왔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그리 아프지가 않아서 괜찮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그 날 또 워크샵 대비 회의가 있었는데.. 제가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 되니까 샘들이 선집에서 회의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정군샘은 "거짓말이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 라며 웃으셨지만, 회의하는 도중이 돼서야 독이 퍼졌는지 발이 부어오르고 마비가 되더라구요. 증말 너무 아팠습니다. 선집까지 행차해주신 샘들 덕에 무사히 회의도 마치고, 저녁쯤이 돼서는 독이 빠졌는지 통증이 금방 없어지더라구요. 무슨 치료가 딱 끝난 것 같이 갑자기 안아파서 신기할 정도였어요ㅎ

 뒤늦게 소식을 들은 어무니는 저에게 "가지가지 한다... 내 여행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너의 안녕을 빌어야겠다" 라며 한탄하셨습니다ㅎ

 

 

 

그렇게 말벌소동은 지나갔는데... 다음날 아침에 문탁을 나가는 길엔 사마귀를 보게 됩니다.

 

 

 이번엔 사마귀에 물린 걸까요? 그런 건 아니고... 선집 뒷길은 바로 광교산과 맞닿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길을 걷다 보면 산에서 내려온 다양한 생물을 볼 수 있는데요, 저번엔 지렁이들이 그렇게 내려오다가 마르거나 차에 밟혀 죽어있었는데, 이번엔 사마귀들이 단체로 죽어 있지 뭡니까. 걔네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만은, 제명에도 못죽고 이렇게 사고를 당한 흔적들을 보니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게다가 얼마 전에는 사마귀 관련 다큐 영상 같은 걸 보면서 사마귀의 눈이나(사마귀들은 눈이 3개의 층으로 나눠져 있대요. 겹눈이면서도 각도에 따라 층을 오르내리면서 움직이는 동공이 아주 멋지답니다.) 걸음걸이(다리가 두쌍이나 있는대도 제대로 못걷고 맨날 뒤뚱뒤뚱..)를 보며 감탄했었거든요. 그 와중에 차도 가운데에 멀쩡한 녀석을 보게 된 거지요. 

 암튼 느려 터진 이 녀석을 보니 딱봐도 사고를 당하겠다 싶은 거죠. 마침 차량 한대도 오고 있었고... 그래서 차를 잠시 막아 세우고 나뭇가지로 툭툭 쳐서 이 녀석을 반대편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차주 분은 쟤는 대체 뭘 하는 건가 싶었을 거예요) 아무리 툭툭 쳐도 이놈은 느릿...느릿.. 겨우겨우 모셨습니다. 

 

 

쓰고 나니 요 며칠을 곤충들과 보낸 느낌이네요ㅎ. 웃겼다~

 

댓글 5
  • 2023-10-13 08:59

    와....우현이는 사마귀 엘라이?
    잘했군, 잘했어!!!!!

    우현아, 내가 곤충책 정말 많거든? 어바웃 동물에서 곤충편 하려고 하나 둘씩 모아 놓은 책이! ㅎ 우리 같이 공부할래? ^^

  • 2023-10-16 08:40

    발에 쏘인 침에 뭔가 있던 걸까요?? 곤충과의 동기화/일체화??

  • 2023-10-16 08:59

    말벌은 나갔나?

  • 2023-10-16 09:52

    큰 고생 안 하고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 이럴 때 보면 현대 의료의 주사와 약이 좋군요~

  • 2023-10-16 18:31

    아 진짜 아팠겠다 ᆢ ㅜ
    앞으로 양말 신을때 나도 괜히 멈칫하게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