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을 다 읽었습니다!!
토용
2021-07-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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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주서周書>의 마지막 두 편은 <비서費誓>와 <진서秦誓>이다.
주의 다섯 번째 왕인 목왕에 대한 내용이었던 <여형呂刑> 뒤에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평왕이 등장하는 <문후지명文侯之命>이 나온다. 평왕은 BC771년 낙양으로 도읍을 옮겨 동주의 시대를 연 왕이다. 그러니까 <여형>에서 <문후지명>은 거의 200여년의 간극이 있다.
그 <문후지명> 뒤에 <비서>와 <진서> 두 편이 이어지고 『서경』은 끝난다.
비는 노나라 제후 백금이 회이와 서융을 물리치고 얻은 땅이고, <비서>는 회이와 서융을 정벌할 당시 군사들에게 맹세한 말이다. 백금은 주공의 아들이니까 비땅이 노나라 땅이 된 것은 노나라 초기였음을 알 수 있다. 비땅은 계손씨의 영지로 『논어』에 자주 등장하는데 『서경』의 한 편명으로 등장하다니 좀 신기하다.
<진서>는 진나라 목공이 신하 건숙의 말을 듣지 않고 정나라를 쳤다가 후회하고 신하들에게 맹세한 말이다. 노회한 대신의 말을 무시하지 말고 잘 듣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비서>와 <진서>는 주나라의 일이 아니라 그 제후국의 일이다. 『서경』은 하은주 제왕들의 일을 기록한 책인데 맨 뒤에 노나라와 진나라에 대한 글이 들어가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설명에는 『시경』에 <상송商頌>과 <노송魯頌>을 기록한 것과 같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것으로 장장 2년 반에 걸친 『서경』 읽기가 끝났다.
2019년 2월 14일에 시작해서 중간에 여름 방학 한 달 정도 하고, 두 번의 겨울 방학 동안에는 <리펑의 중국 고대사>와 <상서 깊이 읽기>를 읽었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2~5월 세 달 가까이 방학을 했었다. 그 후 방역상황에 맞추어 대면과 비대면을 하면서 오늘까지 왔다. 강독의 특성상 줌으로 하는 비대면이 일반 세미나보다는 좀 수월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얼굴 맞대고 하는 것보다는 못하다.
특히 이번에 『서경』을 읽을 때는 시작할 때부터 누룽지님이 함께 했고, 중간에 울타리님이 오셨다. 매번 책을 한 권씩 끝낼 때마다 남는 사람이 꼭 있더니 어느덧 우리 세미나는 7명의 회원이 있다.
아쉬웠던 것은 『서경』을 처음부터 같이 읽기 시작했던 기린님과 인디언님이 사정상 중도하차하신 점이다. 다음 번 책은 합류를 하신다니 기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서경』읽기가 퍼즐조각을 맞추는 느낌이었다. 다른 고전들을 읽을 때면 『서경』에 관한 글이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그저 전거로만 듣고 넘기니 답답한 맘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공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수확이 있었다.
늘 그렇듯이 첫 페이지를 시작해서 읽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마지막 페이지가 온다. 긴 시간 꾸준히 읽는 그 맛에 강독을 하는 것 같다. 다시 긴긴 책 읽으러 출발~~
모두들 코로나 시국에 공부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꿀맛 같은 방학 잘 보내시고 9월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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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알고보니 진목공은 제환공, 진문공과 같은 시대 사람이군요.
진목공은 춘추시대의 오패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진목공으로부터 진나라가 융성하기 시작하여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기 시작했답니다.
진목공을 도와 나라의 기틀을 잡은 사람이 바로 백리해와 건숙.
진목공이 건숙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글이 <서경>의 마지막 편 <진서>였지요.
저는 이렇게 항상 뒷북을 칩니다.ㅎㅎ
<주서>를 읽으며 <서경>이 어떤 책인지 겨우 감을 잡았는데, 책을 덮게 되었네요.
그래도 아쉬움보다 시원함이 더 큽니다.ㅋㅋㅋ
순임금이 봉해준 진나라에서의 일화와 송나라에 남아 있던 상송은 그래서 말미에 넣은 것이고
비땅과 노송은 공자님의 홈그라운드 어드밴티지가 아니었을까?
시경을 펴보니 그런애기 같아요^^
다시 찾아보니 그리고 생각해 보니 진나라는 기산,기수에 있던 주나라의 옛땅이서 그런 것 같아요.
송나라에 상송이 남아 있었던 것은 무광이 난을 일으킨 후 은나라 유민들과 함께 미자에게 송을 봉해줘서
송나라에 상송이 남아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세미나 첫날 맨붕왔던 제 모습이 생생히 기억됩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네요.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올 수 있게 도와주신 세미나팀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