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강 후기

우록
2010-07-13 04:19
2919

관저(關雎)에 대해

 

  시경 첫머리를 장식한 <관저>를 처음 봤을 때, 애절한 연인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하여 부부의 사랑까지 전개되는 과정을 그린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물마름을 따는 행위가 반복되고 그것에 빗대어 군자와 요조숙녀의 어울림 역시 반복되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을 때, 전형적인 노동요의 선창과 후창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시경의 <국풍>에 속하는 노래들을 노동요라고 보는 입장이 있다는 해석상의 정보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반복구조가 노동요로서의 특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기존의 해석 탓만은 아니다. 책을 찾아보고 연구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논하는 지를 확인해야 했으나 참고할 만한 책도 곁에 없고 하여 추측과 상상에 의존해 생각해 본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 모든 노래를 같이 부르는 것처럼 비효율적인 것은 없다. 선창과 후창의 구분은 반복되는 연결 동작의 구분을 가능하게 하고, 하나의 연결동작을 역할로 구분함으로써 앞의 동작을 하는 사람과 뒤의 동작을 하는 사람이 하나의 리듬 속에 전체동작을 만들어 힘의 분담을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전체동작을 분담하는 방식의 노동이 아니라 모내기와 같이 같은 동작을 일정하게 반복하는 경우라도 선창과 후창은 노동과 휴지의 리듬 속에서 동일동작의 반복을 만들어 낸다. 그런 경우 집단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먼저 쉬는 사람이 선창을 매기고, 이때 동작을 하던 사람이 다시 역할을 바꾸어 쉴 때 후창을 매김으로써 동작과 휴지를 반복하는 경우와 또는 전체가 단일한 동작을 하면서 휴지에 선창을 매기고 다음 유지에 후창을 매기는 방식으로 변용되기도 한다.

  <관저>의 각 절은 일정한 반복관계를 보이면서, 3절을 제외하고 각 절은 앞 두 행과 뒤 두 행으로 구분된다. 1절의 窈窕淑女 君子好逑, 2절의 窈窕淑女 寤寐求之, 4절의 窈窕淑女 琴瑟友之, 5절의 窈窕淑女 鍾鼓樂之가 군자와 요조숙녀가 만나서 닭살 짓을 하게 되기까지 둘 사이의 관계의 심화 내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욕망을 서술한다면, 2절의 參差荇菜 左右流之, 4절의 參差荇菜 左右采之, 5절의 參差荇菜 左右芼之는 물마름을 따는 전체 노동의 시말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구분이 가능하다고 여기자 이 노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모두 여자이거나(대개 채집하는 노동이 여성의 것으로 볼 때, 이 부분의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다른 해석으로 나가겠지만 이 후기에서는 괄호에 묶어둔다) 모두 남자가 아니라 남녀가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미쳤는데, 왜냐하면 여자들은 일에 집중하여 마름을 따고 고르느라 바쁜데, 그 옆에서 남자들은 ‘니들은 군자호구여’ 하면서 금슬로 놀까, 북치고 종치며 놀까 하며 온갖 희언을 늘어놓는 모양새가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농경사회에서 힘들게 가족을 먹여 살리는 노동의 주체는 여성이었다. 부뚜막에서 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여성이라면, 대장간에서 만든 칼로 살육에 나서는 것이 남성의 본분이었던 사회에서, 여성은 먹여 살리는 일에 목메고 있는데, 남자라는 작자들은 그런 여성을 희롱하면서 배 두드리며 노는 한량의 역할을 더 잘 소화했던 것이 남녀의 관계라고 했을 때, 아래 표처럼 남녀의 선후창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1절이나 3절도 다른 절처럼 전후로 구분할 수도 있지만, 1절 전체를 남자들의 노래로 본 것은 물수리가 강가 모래톱에서 짝을 찾아 우는 것처럼 군자가 요조숙녀를 찾는 것이 상관관계에 놓였다고 보고 오로지 여자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 남자들의 단순성을 표현했으니 남자의 노래로 본 것이다. 3절을 여자들의 노래로 본 것은 求之不得 때문이다. 이 절은 ‘그렇게 흰소리 하고 놀아봤자 니들 주제에 요조숙녀는 못 구할 걸?’이라고 퉁박을 놓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서로 킬킬대는 가운데 남녀 각자의 욕망을 은근히 드러내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젊은 것들 연애질 하는 걸 보면서 그 뻔한 수작에 킬킬대면서도 흐뭇한 그런 심정이다.

 

사족>

각 절을 전후로 나누어 선후창으로 보고 다시 선창은 여자, 후창은 남자의 노래로 보았지만, 이 노동에 참여하는 집단이 모두 여성이거나 모두 남성일지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자신들의 소망과 노동의 힘겨움을 남녀 간 상생의 기운으로 합치시키려는 욕망을 표현한 노래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 1절은 起句로서 시흥의 발생을, 3절은 轉句로서 시상의 전환을 뜻하고 있어 노동요의 특징이기보다는 한시의 구성상 특질을 보인다는 점에서 채집자가 개입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사실 그것 때문에 유쾌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노래가 조금은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다.

 

전문

關關雎鳩

在河之州

窈窕淑女

君子好逑

關關雎鳩

在河之州

窈窕淑女

君子好逑

 

 

窈窕淑女

寤寐求之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參差荇菜

左右流之

.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窈窕淑女

琴瑟友之

參差荇菜

左右采之

窈窕淑女

琴瑟友之

參差荇菜

左右采之

 

 

 

 

窈窕淑女

鍾鼓樂之

參差荇菜 

左右芼之

窈窕淑女

鍾鼓樂之

參差荇菜 

左右芼之

댓글 2
  • 2010-07-13 17:09

    오마나!emoticon

    가벼운 후기가 아니라 한 편의 논문을 쓰셨네요.

    아주 잘 읽어보았구요, 공부도 됩니다만

    다음 분들이 감히 후기를 올려놓을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되옵니다.

    그래도 아주 고마워용~~~emoticon

  • 2010-07-13 22:39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신 것 같은데 시경 강좌도 안 듣고 하다 보니 솔직히 먼 소린지...

    우록님 우리 언제 한번 강가에 놀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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