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나는

수강생2
2010-11-04 17:10
1194

    이 가을에 나는

                 -김남주-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사슬에 손발이 묶여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어디로 끌려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광주옥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곳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도시 거리의 인파를 빠져나와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에서
  숫돌에 낫을 갈아 나락을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에서
  빙둘러 서서 염소에서 뿔싸움을 시키는 아이들이 제방에서
  내려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내려서 손발에서 허리에서 이 오라 풀고 이 사슬 풀고
  내달리고 싶다 아이와 같이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내달리고 싶다 발목이 시도록 논둑길을
  내달리고 싶다 가슴에 바람 받으며 숨이 차도록 


  가다가 목이 마르면
  손으로 표주박을 만들어 샘물로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땅으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그러나 나를 태운 차는 멈춰주지 않고
  들판을 가로질러 역사의 강을 건넌다
  갑오농민들이 관군과 크게 싸웠다는 황룡강을
  여기서 이기고 양반과 부호들을 이기고
  장성갈재를 넘어 전주성을 넘보았다는
  옛 쌈터의 고개를 나도 넘는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 되어.

댓글 1
  • 2010-11-05 10:14

    사십년 동안이나

                     -김남주- 

     

     

    나는 들어왔다 사십년 동안

    사십년 동안 귀가 따갑도록 고막이 터지도록 들어왔다

    이북에 대해서 이북 사람들에 대해서

    어둡게 말하는 소리를 나쁘게 노래하는 소리를

    욕하고 비꼬고 야유하고 경멸하고 비웃는 소리를

    죽일 놈 살릴 놈 비분강개하는 소리를

    때려죽일 놈 찔러죽일 놈 분노하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 동안 사십년 동안

     

    모든 사물에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것은

    어두운 측면이 있으면 밝은 측면이 있다는 것은

    나쁜 측면이 있으면 좋은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이 있으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귀가 따갑도록 말하면서도

    열 사람이면 열 사람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말하고 있으면서도

    상식 이하의 사람도 한 번 들으면 금방 알아차리고 인정하면서도

    그게 진리라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절대진리라고

    학교에서 가정에서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치면서도

    이북에만은 그 누구도 그 상식을 적용시키지 않았다

    이북 사람에게만은 그 누구도 그 진리를 적용시키지 않았다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만 사람이면 만 사람이

    이북에 대해서 어둡게 나쁘게 부정적으로 말하고 노래하기는 하지만

    이북 사람에 대해서 밝게 좋게 긍정적으로 말하고 노래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그 동안 사십년 동안

     

    나는 듣지 못했다 나는 보지 못했다

    사람을 통해서건 책을 통해서건

    이렇게 제 동포를 증오하는 민족은

    이렇게 제 겨레를 저주하는 국민은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다

    이렇게 집요하게 이렇게 끈덕지게 이렇게 사납게 이렇게 악랄하게 이렇게 모질게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제 민족과 제 겨레를 증오하고 저주하는 인간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적어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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