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강 서정적 주체의 발견 ; 소박한 후기 2

강물
2010-11-16 15:10
2305

그녀는 우록샘이 읽어 준 '서정적 주체'란 말에 작은 떨림을 느꼈다.

'음... 그것이 그렇단 말이지.' 이번에야 제맘대로 후기나마 쓸거리가 있겠군 하며 내심 흐뭇해 했었다.

그-런- 데.. 노라의 재기 발랄, 현묘한 후기에 그만 급 좌절하여, 그녀 속에 자리잡은 참을 수 없는 무거움에 다시 한번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허벅지를 찔러가며 무력감에서 벗어나보려 했지만, 몇자 쓰던 글 마저 냅다 내려 버리고 '다음에'라며 눈을 감았다.

 

강좌 시간에 소개를 했으니 마땅히 후기를 써야한다며, 그것도 빨리 쓰라는 요요님의 말씀에 그녀는 잠시 움찔했다. '어이쿠.. 기어이 또 한 소리

듣고야 움직이는군.', 늘 꾸물럭 대는 자신의 속내를 들킨 듯 약간 붉어지는 낯빛을 감추고 "네, 그러겠습니다" 했다.

 

급하게 해야 할 일들을 부리나케 해치우고, 마침 잠시 시간이 빈 틈을 타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음.. 그녀는 무엇에 꽂힌 걸까? 왜 그 때 잠시 공명되는 느낌을 가졌을까?

 

이즈음 그녀는 자신의 모습 중에 한 가지를 분명히 읽어 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참 순응적인 인간이란 말이지..'   한 때 그녀는 스스로를 은근히 저항적이고 저돌적이며 하물며 가끔은 매우 공격적인 인간이라고 칭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늘 걸끄럽게 느끼는 내면의 갈등이 그 '순응'이라는 것과 그것에 대한 '저항, 혹은 벗어남'간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분명해'.  그녀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무수한 외부의 시선들, 그녀를 포장하고 있는 다양한 페르소나들.. 일상에서 '나'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들을 용을 쓰며 유지하려 살았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인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요즘 그 '순응하는 인간'이라는 딱지를 벗어버리고 싶어졌다. 디제 디오씨가 흔들거리며 부르는 노랫 가사 마냥 '나 그런 사람이야~', '어쩔래'라며 눈을 부라리고 싶어졌다. 박하사탕 주인공이 '나,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듯 '나 이제 그만할래' 그렇게 소리지르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와의 거리를 좀 더 벌리려고 작정했다. 그리고 한 껏 늘린 고무 밴드가 제 자리를 금새 찾아가듯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혹은 그것이 옳은 것이라서'라는 식으로 또 머리를 조아리며 쫓아가려는 자신을 정신 차리고 붙들어 보기로 했다. 그녀 안에 들어와 있는 것들, 흔쾌하지 않으나 그녀를 좌지우지하는 것들을 하나씩 들어내 버리는 작업.. 그녀는 그것을 해체라고 불렀다.

 

그렇다보니 그녀가 꽂힌 것은 '그저 내키는 대로 살기'다. 그래서 그녀는 설령 어떤 것이 옳다 해도 흔쾌하지 않으면서 그냥 따라가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안에 쌓인 독을 풀어내자면 그럴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럴 때도 됐다 싶다. 그러자면 제대로 눈을 뜨고 있어야 할 것이라 불끈 마음도 먹는다. 그녀 안에 들어와 박혀 있는 것들과 그것들에 무감하게 자동반응하는 자신을 먼저 보아야 한다. 최소한 이것 정도는 해야 한다. 더 잘하자면 그렇게 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그녀는 잠시 피식 웃는다. '이건 뭐 거의 도 닦는 수준이네. 이 생에서 가능이나 할까'

 

어찌 되었든 우록샘의 서정적 주체는 그녀가 이즈음에 머릿속에 담고 있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해 주는 좋은 단초가 되었다. 우록샘의 멋진 말로는 '자신안에 들어와 있는(내면화되어 있는) 외부의 시선'과 '스스로 그 안에 포섭되어 있음'을 바라보고 성찰해내기(메타적 성찰)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구성해 내는 시인이라 표현하셨던가.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 자신의 내면과 직접 대면하는 것..그런 고독한 과정을 겪는 우리네들은 모두가 잠재적으로 서정적 주체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에 대해, 늘 유지되는 일상의 친숙한 것들에 대해 의심의 눈을 갖기 시작하는 그 때부터 뱃 속에서 스멀 스멀 구토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면.. 그 지점이 바로 시가 만들어지는 지점이 되지 않을까.. ' 언젠가 윤정희마냥 시 한편 쓰고 끝낼 수 있을래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이제 그만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더 쓰다간 머리에 쥐 나고 바닥이 드러날 게 분명하니까.. 그녀는 그녀를 보호하고 싶어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 뭔가를 강렬하게 의심했다는 시인, 이상과 보들레르를 만날 다음 시간이 기다려 진다.

 

(글 맺음을 하려다 잠시 멈칫하는 그녀.. 우록샘이 시 강좌에서 소개해 준 근대적 주체, 서정적 주체...에 대해 너무 그녀식의 막나간 독법이 된 건 아닌지 내심 걱정스러워졌다. 에구, 아님 말구.. 나 그런 사람이야. 칫.)

 

 

 

 

댓글 2
  • 2010-11-16 17:17

     '나 그런 사람이야~', '어쩔래'라며 눈을 부라리며 사신다면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겠습니다 그려^^

     

  • 2010-11-17 13:33

    아! 웬지 강물님과 데이트 한 번 하고 싶어집니다.

    저는 늘 그 놈의 '나'라는 그물에서 벗어나서 날개짓 한 번 시원하게 해 보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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