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의 윤리> 첫 시간 후기

새털
2020-07-12 11:44
376

서생원의 새로운 프로그램 '치즈인더트랩'의 첫 번째 책 <듣기의 윤리>(김애령, 봄날의 박씨, 2020년) 첫 세미나가 7월 10일 금요일 저녁 파지사유에서 열렸다. 이날 문탁세미나에 처음 오시는 분도 계셨고(야생님과 고은비님), 오랜만에 찾아주신 분도 계셨고(수아와 이유진님), 집회에서만 만나다가 같이 책을 읽게 된 분도 계셨고(박정애님), 그리고 모처럼 같이 공부하게 된 문탁친구들(느티나무, 고은, 메리포핀스, 잎사귀)도 있고 토요일마다 꼬박꼬박 만나 양생세미나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스르륵, 기린) 그리고 서생원의 요요와 새털. 나는  이렇게 다양한 구성의 세미나를 해본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JTBC의 새로운 프로그램 <장르만 코미디>에서 김준호가 이렇게 말했다. "긴장하면 지는 거고, 설레면 이기는 거다." 무대 위에서 떨지 말고 즐기자는 의미일 테지만, 우리 세미나로 옮겨오면, 우린 이날 '긴장하고 설렜다.' 새로운 구성원과 새로운 커리로 공부를 시작할 때, '찌르르~' 전기가 흐리는 듯한 긴장감과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공부에 대한 호기심으로 '붕~ ' 뜨는 듯한 셀렘을 우리는 동시에 경험한다. 이 긴장과 설렘을 계속 유지한다면, 우리의 공부는 밀도가 높아질 테지만, 우리는 사람인지라 언젠가 익숙해지고 느슨해지고 이완되겠지^^ 이런 긴장과 이완에 대해서도 우리는 세미나에서 <듣기의 윤리>에 나온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통해 확인했다!! 불협화음을 포함한 화음이 이런 게 아닐까? 아닐 수도......

 

 

 

  우리가 텍스트로 삼은 <듣기의 윤리>는 대중서를 겨냥한 쉬운 문장으로 쓰여졌지만, 내용은 만만치 않다. 프리모 레비,  파울 첼란, 한나 아렌트, 아감벤, 버틀러, 스피박 등등 '현대정치철학'과 '탈식민주의' '윤리학'의 이론들이 망라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기보다는, 자신의 문제의식에 따라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말은 사람이 사람임을 증명해줄 수 있는 요소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그 말을 가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이게 인간의 생애이고 정치이다. 그런데 누구나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국적자, 이방인, 소수자, 사회적 약자 등 말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계는 국경으로 또는 국경 내부에서도 발생한다. '윤리'라고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자, 말할 수 없는 조건에 놓인 사람들에게 그 자격을 부여하는 일 또는 그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말할 것인가? 누구는 말할 수 있고 누구는 말할 수 없다. 누구의 말은 통용되고 누구의 말은 통요되지 않는다. 누구의 말은 이해되고 누구의 말은 표현조차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말하기의 문제가 아니라 '듣기'의 문제로 관점을 전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의 질문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잘 듣기란 무엇인가? 섬세한 듣기, 침묵까지 헤아리는 경청, 확고한 지지와 연대의식을 가지고 인내하며 그 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가? 저자의 질문은 계속 극점으로 나아간다. 나는 이 점에서 저자에 대한 신뢰를 발견한다. 이렇게 자기 질문을 궁지로 몰아가는 사람의 '비타협적인' 공부를 지켜보고 싶은 설렘이 든다. 

 

"중요한 것은 말에 '충분히'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그렇다와 아니다를 가르지 않으면서, 그렇게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경청은 그 말에 드리운 그림자를 빼앗지 않는 것이다."

 

  서문에 쓰인 이 말에 우리 모두 감동받았지만.....그 의미를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모두 실토했다. 그래서 7월 31일 저자와의 대화시간에 꼭 물어보기로 했다. 세 번의 세미나를 통해 우리가 파울첼란의 시를 이해하고 <듣기의 윤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개인적으로는 2장에 나온 '서사 정체성' 부분이 재미있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이야기'라는 방식으로 규정해본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 이러한 판단은 그 사람의 가치 판단과 자기 이해를 통해 가능하다. 이야기로 가득한 세계, 세헤라자드의 <천일야화>는 서사의 모범이다. 어떤 이야기도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세계. 그런 세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 이런 것을 저자는 정의고 윤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듣는' 문제도. 

 

 

 

 

  요즘 내가 많이 하는 생각은 우리의 말하기는 '반사'적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들었을 때, 그 의미를 파악해보고, 자신의 입장과 따져보고 그와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그냥 맞받아칠 뿐이다. 너 문빠/ 나 비문빠, 너 페미/나 반페미......그래서 우리의 대화든 인식이든 새로운 '앎'으로의 진전이 없이 자기가 알던 것의 '확인'과 '재인식'에 그칠 뿐인 것 같다. 그래서 말을 안 해보려 하는데, 그게 또 잘 안 된다. '반사'하는 습관이 빛처럼 빠르게 쏘아부치고 있다. 자중해야지.....

 

다음주 금요일에는 2부 3장의 3절까지 (180쪽) 세미나 합니다. 2부가 길어서 분량을 조금 나누웠어요.

그럼 다음주 금요일 밤에 봅시다^^

 

 

댓글 6
  • 2020-07-12 12:29

    항상 진실을 말하라고는 하지만 하지만 우리가 과연 진실만을 말할 수 있을까?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상대방도 나도 완전할 수 없으니 ‘옳다’, ‘그르다’로만 가르지 말고 함께 오류를 파헤쳐 보는 식의 대화를 해보자..
    자꾸만 생각나는 유일한 내용이네요~><

  • 2020-07-12 14:35

    권력에 의해 말이 말이 될 수 없을 때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권력이라는 것이 꼭 거대 권력이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흔히 겪는 일이 아닐지요. 저는 세미나를 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말하게 하고 귀기울여 듣는 엄마인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물론 듣기의 윤리는 더 큰 범주에서듣는자로서의 윤리를 뜻하겠지요. 돌아오면서 여운이짙은 세미나였습니다. 함께 얘기 나누니 혼자 끄덕이고 말 때보다 더 진해지나봐요~~

  • 2020-07-12 18:17

    저도 첫 세미나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철학서적 읽으니 계속 문턱에 걸리는 느낌이었는데 그 자주 멈춰 서게 하는 독서의 매력을 오랜만에 맛보니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그림자, 불협화음의 화음 등 여러 표현들이 명료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지만 그것들의 개별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들을 서로 나누며 잘 들어주고 때론 오류와 방향성을 잡아주기도 하는 것이 세미나에 참여하는 우리들이 나눌 우정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라는 표현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그건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존재를 부인당하는 내 안의 야생성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여서 그런 듯 합니다.

    이 세미나에 초대해주신 요요님과 첫 세미나 발제와 해설을 해 주신 새털님께 감사드립니다.

    남은 세미나도 긴장과 떨림이라는 생기있는 감정으로 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2020-07-12 21:38

    오랜만의 세미나는 여전하기도 새롭기도 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한 세미나였는데, 치즈인더트랩이라는 이름이 절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미스테리한 시작이지만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리라 생각하며 일단 계속 읽어보렵니다.
    듣기의 윤리란 과연 무엇인지...
    저는 그림자라는 개념이 제일 마음에 들기도 어렵기도 하네요...

  • 2020-07-13 08:09

    저도 세미나 참석은 못하고 있지만 같이 읽고 있어요^^

  • 2020-07-13 10:38

    저는 세미나 후에 '먹는 것'을 해결한다는 문장에서 내가 느꼈던 질문을 주말에 쿠바에서 공부중인 해완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내 질문이 대단히 관념적이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좋은 삶과 관련한 정의에 대해 '~ 위해' 라는 의미와 '제도'의 의미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담주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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