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獲麟解 -韓愈> 후기

누룽지
2022-03-24 06:31
169

획린해는 기린이라는 상상의 동물을 잡았다는 것을 해명한 글이다

麒(기)가 수컷이며 麟(린)이 암컷이라는 麒麟(기린)은 성인(聖人)이 세상에 나면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한유는 기린이 ‘시경’과 ‘춘추’ , 전기와 백가의 책에 섞여 나오니 부인과 아이들이라도 모두 그 상서로움을 안다는 말로 글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유명인사는 아무나 알아볼 수가 없단다. 집에서 기르는 각종 동물들이나 들짐승과는 다르기 때문에 알 수 없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해도 할 수 없단다.

 

그런데 

雖然이나 麟之出에 必有聖人在乎位하니 麟은 爲聖人出也라 聖人者는 必知麟이니 麟之果不爲不祥也로다

라고 한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기린이 나오면, 반드시 성인이 그의 지위에 있을 것이니 기린은 성인을 위하여 나오는 것이고 성인은 반드시 기린을 알 것이니 기린은 결국 상서롭지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이 한유의 저 깊은 속에서부터 나온 가슴 시리고 애끓는 마음으로 쓴 것일 줄 알고 읽지 못했다.

본 문 앞에 설명글이 길었다. ‘노나라 애공 14년에 숙손씨가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기린을 잡았다’하였으니 이 편을 기린해라 이름함은 마땅히 ‘춘추(春秋)’에서 기린을 잡은 것을 가지고 논해야 한단다. 신비의 동물을 잡은 얘기에 왜 이런저런 애기가 긴가 했더니 공자가 이 내용으로 춘추의 집필을 멈춘다. 그리고 그 2년 후인 애공 16년(BC47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춘추가 획린(獲麟)으로 끝났기에 획린은 절필 또는 임종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공자가 마음 아파한 ‘때 아닌 때에 나와서 죽음을 당한 기린’이 곧 공자라고 사람들은 말을 한다. 또 사람들이 기린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였으니 '이루고자 했던 인의(仁義)의 정치도 이젠 끝났는가'라는 공자의 탄식으로 기린의 죽음을 읽기도 한다.

 

한유는 획린해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낸다.

又曰 麟之所以爲麟者는 以德이요 不以形이니 若麟之出이 不待聖人이면 則其謂之不祥也亦宜哉인저

또 말하기를 ‘기린이 기린이 된 까닭은 덕 때문이요 형체 때문이 아니니 만일 기린의 나옴이 성인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그것을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는 것도 또한 당연하겠구나’ 하였다.

공자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유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 성인을 기다리지 못하고 나온 기린을 자기 자신에게 대입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시렸을까 싶다.

 

나는 아직 공부가 짧아 한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른다. 다만 청나라 강희제 때의 장조가 쓴 ‘그윽한 꿈의 그림자’라는 책 『유몽영(幽夢影)』에서

‘경서經書를 읽기에는 겨울이 좋다. 정신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서史書를 읽기에는 여름이 좋다. 날이 길기 때문이다. 제자서諸子書를 읽기에는 가을이 좋다. 운치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문집文集을 읽기에는 봄이 좋다. 기운이 화창하기 때문이다.’라하니

이 봄에 무겁고 버거운  ‘고문진보’를 탐독해봐야겠다.

될라나 모르겠지만 유몽일영의 제1칙으로 이 구절을 쓴 걸 보면 일단 자기 믿어보라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아 믿어볼까싶다.

댓글 1
  • 2022-03-26 20:19

    누룽지샘이 인용한 <유몽영>에 나온다는 그 말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아요.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근사록>에서 읽은 것 같군요.^^

    그걸 읽으면서 이게 맞나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네요.ㅎ

    <근사록> 같이 읽은 분들, 제 기억이 맞나요?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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