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에티카> 2부 두번째 세미나 후기

호수
2023-06-0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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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 세미나의 풍경을 떠올려보니 오늘만큼은 정시에 세미나를 마치겠다는 튜터의 열망과 집중력이 두드러진 시간이었구나 싶네요. 생각지 못한, 하지만 으레 이쯤이면 나올만한, 각종 암초를 때로는 마주치고 때로는 비켜 가며 진행을 이어가는 튜터를 지켜보는 세미나원들은 질문이 중복되었다 싶으면 서둘러 넘어가도 좋다고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논의가 지나치게 길어지거나 멀어지고 있다 싶으면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참회가 등장합니다. 자비로운 미소를 띤 요요샘이 여전히 자비로운 얼굴로 잘못한 거 맞아! 라고 일침을 놓기까지.... ㅎㅎ. 그리하여 오늘은 홀가분하게도 모처럼 정시에 세미나가 끝났네요. 하지만 넋놓고 있던 저는 이렇게 후기를 쓰게 되어 방금의 세미나를 혼자 좀 더 연장해봅니다. 🙂

 

에티카 2부의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관하여’라는 제목에 걸맞게 2시간 반 내내 정말로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자분자분하되 치열하게 오갔습니다. 오늘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은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들’은 ‘신체의 변용들에 대한 관념들’이라는 말이었겠지요? 끊임없는 정신의 활동은 역시 끊임없는 신체의 변화와 동일한 사태입니다. 거의 모든 질문과 논의가 이 말과 연관되어 있었어요. 세븐샘은 정신을 다루는 2부에 자연학 소론이 삽입된 이유를 물으셨는데, 우리는 이후 이 소론의 내용을 인용할 때도 줄곧 이것을 인간의 신체에 관한 것으로 이해하고 이야기했고 그것은 늘 인간 정신에 대한 이해와 연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 시즌에 우리는 데카르트의 <정념론>을 읽을 때 정신과 신체는 완전히 독립적인 실체들이라며 영혼 불멸을 말하던 데카르트가 정신과 신체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 열렬히 설명하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데카르트 논리의 모순을 지적하고 한편으로는 데카르트의 재발견을 이야기했습니다. 데카르트는 사유와 연장을 두 개의 실체로 놓고 둘은 실재적으로 구별된다고 말했는데, 스피노자는 어쩌면 비슷하게 이 둘을 하나의 실체를 구성하는 두 속성으로 놓고 둘의 실재적 구별을 말합니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주장과 다르게 두 실체간 인과관계를 설정한 반면 스피노자는 두 속성 사이에 인과성을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그것보다 더 긴밀한 연관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이른바 평행론입니다. 그리하여 정신에 대한 이해는 신체에 대한 이해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심지어 우리의 정신이 외부 물체들에 대해 갖는 관념들은 외부 물체들의 본성보다도 우리 신체의 상태를 더 많이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하고요(2부 정리16 따름정리2).

 

‘상상’ 역시 신체의 상태 또는 변용으로 설명됩니다. “외부 물체들을 우리에게 현존하는 것처럼 표상하는 인간 신체의 변용들”은 “실재들의 이미지들”이고 정신이 물체들을 “이런 방식으로 고려할 때” 우리는 “정신이 상상한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서 세션샘은 이 표상을 인식의 한 종류로 보셨는데 저는 표상이 인간 신체의 변용으로 이어진다는 데에서 망막에 상이 맺히는 것과 같은 물리적 투사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하여 실재들의 이미지들이 우리 몸에 새겨진다고 생각했고요. 여기에 대해 다른 샘들께서 어떤 코멘트를 해주셨는데 저는 (자주 그렇듯이) 못 알아들었습니다. 흐흐. 어쨌거나 이 시기에 표상(representation)은 인식론적으로 아직 중요한 개념은 아니었다고 정군샘은 설명하셨어요. 스피노자는 이 상상은 그 자체로 고려될 때는 어떤 오류도 포함하지 않는다, 이 상상이 상상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면 상상의 역량은 악덕이 아닌 미덕으로 간주될 것이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이후 적합한 인식으로 가는 방법의 힌트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 좀 더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스피노자의 예고편은 하나 더 있었어요. 슬쩍 흘리듯 정리 18의 주석에서 “지성의 질서에 따라 만들어지는 관념들의 연관”을 언급합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 안에 동일하게 존재한다고요! 이 말은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예고편으로 남겨두기로 했지만, 일단 정군샘은 인간 정신 안에 존재하는 관념들은 신 안에도 존재한다는 점이 이 말을 이해할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 한에서의 신’들의 잦은 나열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무한한 한에서의 신’이 있는가 하면 ‘이것저것에 의해 변용된 한에서의 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신은 결코 다른 신이 아닙니다. 아까 상상이 미덕이 될 때는 그것이 상상임을 알 때였습니다. 신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부적합한 관념 역시 갖고 있되 동시에 그것의 부적합함을 압니다. 부적합한 관념이 부적합함을 알면 이것 또한 적합한 관념입니다. 인간 정신은 이 적합한 관념을 어떻게 갖게 될까요? 우리는 요요샘의 질문에서 그 힌트 및 예고편을 얻었습니다.

 

정신이 갖고 있는 관념들은 신체 변용의 관념들, 그리고 사유 속성의 가히 폭발적 역량 때문에 무한히 쏟아져 나오는 관념의 관념, 관념의 관념의 관념, 관념의 관념의 관념의.............. 관념들............... (이처럼 무한하게 진행........)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념들을 가진 정신이 실재들을 지각할 때, 우발적 마주침에 따라 외적으로 규정된 대로 바라볼 것이냐, 아니면 다수의 실재를 동시에 바라봄으로써 실재들 사이의 합치, 차이 및 대립을 이해하도록 내적으로 규정해 바라볼 것이냐가 문제라는 것인데요..................... 그 방법을 다음 시간에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러니까 다음 시간에는 재선샘과 형은샘도 꼭 오세요!

 

댓글 12
  • 2023-06-09 12:14

    세미나를 정시에 마치겠다는 튜터의 열망과 집중력이 돋보였던 것에 저도100% 공감합니다. ㅎㅎ.
    뒤끝이 남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던 세미나였던 것 같구요.
    호수샘의 유려한 후기에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보태는 것으로 댓글을 대신할께요.

    정군샘의 질문 "인간 정신이 외부 물체의 실존을 배제하는 변용에 따라 변용되기 전까지, 그것이 '동일한 외부 물체를 현행적으로 실존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 정리17)에는 어떤 예를 들 수 있을까요?"

    <아래는 대화의 재구성>
    ▲ 요요샘 "바울과 베드로 예 있잖아요."
    ▲ 정군샘 "직관적으로 이해가 안가서, 일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예는 없을까요?"
    ▲ 아렘샘 "없는데 있다고 하는 거, 그걸 엎어버리기 전까지 있다고 생각하는 거"
    ▲ 요요샘 "저번 세미나에서 정군샘이 말한 것에 기분이 나빴어..."
    ▲ 아렘샘 "(맞아요) 그런 건 오래 남잖아요."
    ▲ 요요샘 "그런데 오늘 세미나를 했는데 '너무 좋아' 배제되는 관념이 들어오기 때문에..."
    질문자인 정군샘의 말이 압권입니다.
    ▲ 정군샘 "제 싸구려 예하고는 다른 고품격 예군요. 피자를 먹고 너무 느끼한데, 제로콜라를 마시면 느끼함이 사라지는 거"
    ▲ 요요샘 "좋네요. 제로콜라를 마시면 피자의 느끼함이 사라진다."
    봄날샘도 고품격 예를 첨가합니다.
    ▲ 봄날샘 "늘상 미워하던 사람이 있잖아요. 그 미워하는 사람이 죽고 없거나 더 이상 만나지 않는데도 미움이 계속 있잖아요. 명상을 지도하는 사람이 '정말 미워하는 그 사람이 맞냐?고 물었을 때 그러면 "미움은 결국 내가 키운 걸 알게 되면 미움이 사라지는 것"

    제 첫 질문 부분도 추가해요.
    저는 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중간에 <자연학소론>를 끼워놓은 '스피노자의 의도가 있었나?' 였는데요. 스피노자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혹 '물리학 관련 책을 쓰지 않았을까'하는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스피노자의 60번째 편지를 보면 "운동과 방법에 관련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 것도 글로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기회를 위해 남겨두겠습니다."라고 추가 저술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정군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흐름상 인간정신의 본질과 신체 변용의 관념, 신체는 물질 등이 복잡하게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물질이 어떤 방식으로 운동하는지를 설명하는 <자연학소론>이 꼭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것.
    스피노자가 더 오래 살았더라도 물리학 또는 자연학 책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는.
    "답이 없는 주제지만...웬지 (물리학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데카르트가 자연 그 자체를 탐구하는 유형이라면 스피노자는 그런 유형의 사람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자연학에 관한 것으로 정치학 책을 쓰지 않았을까..."
    그래도 아렘샘의 말에 위안이 됩니다.
    서간집의 3분의 2 이상이 과학에 대한 대화라는 것. "이미 (스피노자가) 물리학 책을 썼다고 해도...."
    맛점하세요. ^ ^

  • 2023-06-09 13:26

    저는 세븐샘이 일등으로 댓글을 다실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1등이십니다. 2등으로 저는 어제 오래도록 이야기 나눈 관념이란 말과 상상이란 말이 바로 전 데카르트에게서는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좀 찾아보았습니다. 데카르트는 벌써 다 잊었지만, 다행히 표시를 해 놓았더군요.

    먼저 관념이란 말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데카르트: 나는 불완전한데 완전한 것의 관념을 가지고 있고, 이 완전한 것(신)은 실존해
    사람들: 뻥치시네. 그 완전한 관념이란게 불완전한 내가 가지고 있는건데, 이 관념 자체가 나보다 더 완전하다고? 그리고 어떻게 거기서 완전한 것이 실존한다는게 따라나와?
    데카르트: 성찰에서 내가 밝힐테니 읽어봐

    이런 대화들의 맥락에서 <성찰>의 서언에서 데카르트가 관념이란 말을 좀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성찰 P27)
    “(나는) 관념이라는 말 안에 동음이의어가 숨어 있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관념은 질료적으로 지성의 작용으로 간주될 수 있고, 이 의미에서 그것은 나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관념은 표상적으로 이 작용을 통해 재현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고, 이 사물은, 비록 지성 외부에 현존한다고 가정되지는 않더라도, 그 본질 때문에 나보다 더 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가 하려는 말과 많이 다르지 않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정군샘이 말씀하신 대문자와 소문자, 적합한 부적합한, 그리고 신이 가진(?) 두 가지 관념 그러니까 스피노자가 자주 인용하는 말처럼…. ‘신이 인간 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관념을 갖는 한에서가 아니라 아주 많은 실재들에 대한 관념들에 의해 변용되는 한에서 같은’ 이런 말들을 이리지리 대보면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이야기라는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원래 제가 좀 흐리멍텅한 걸 선호합니다.

    다음은 상상입니다.
    세미나 시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상상이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모두에게 물체라는 말에 강한 긴장이 걸린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아렘식으로 말하자면 조금은 수준 낮은 정신의 작용입니다. (긴장이란 말은 데카르트에게서 훔쳐왔습니다.)

    데카르트 말을 좀 붙여보겠습니다. (성찰 P103~105) ‘나는 먼저 상상작용과 순수지성작용 간의 차이를 조사한다. (도형 예가 나옵니다.) ~~ 즉, 이해하는 동안 정신은 어떤 식으로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자신에 내재하는 관념들 가운데 어떤것을 돌아보는 반면, 상상하는 동안 정신은 물체를 향하고, 이것 안에서 자기 자신에 의해 이해된 관념이나 감각을 통해 지각된 관념과 일치하는 어떤 것을 직관한다는 것이다.’

    스피노자 상상입니다. (2부 정리 17 주석)
    그 관념들이 우리에 대해 외부 물체들을 마치 우리에게 현존하는 것처럼 표상하는 인간 신체의 변용들을 우리는 실재들의 이미지들이라고 부른다. 비록 이것들이 실재들의 모양을 재생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그리고 정신이 물체들을 이런 방식으로 고려할 때 우리는 정신이 상상한다고 말한다.

    이것들의 사용례들을 데카르트의 명석판명, 스피노자의 적합한 관념과 같이 놓고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2023-06-10 14:14

    지난 셈나의 키워드는 유쾌하지만, 은근히 만연했던 '질책' (지난 셈나 분위기 이름 붙이는데 재미들렸음ㅎㅎ) 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호수샘의 후기는 유려하고 다정하며, 댓글들은 화려하네요. 성급한 호기심으로 욕은 좀 먹었지만 여전히 아렘샘이 올려주신 데카르트의 상상ㅡ스피노자의 상상ㅡ칸트의 표상ㅡ들뢰즈의 재현 비판의 연결고리에는 관심이 갑니다. 스피노자의 상상은 아무래도 뭔가 좀 있어보여서요. 건 그렇고 정중동샘, 지난 주엔 너무 쉽게 물러나신 거 아닌가요? 은근히 만연했던 '질책'의 분위기 때문인가?^^

    • 2023-06-14 12:52

      오늘 적합한 관념 생각하다가 예전에 보았던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에서 '9장. 부적합성'을 펴서 읽어보는데 세션샘 질문과 관련된 대목이 있어서 여기 옮겨요. 들뢰즈는 (아마도 세션샘이 짐작하신 대로) 표상과 이미지를 더 적극적으로 비표현적 사유로 연결해 스피노자를 해석하고 있는 듯해요. '적합/부적합'과 관련된 부분이라 이번에 우리가 이번주에 다루는 부분과 연결이 되니 혹시 읽어보실 분들을 위해 좀 길게 옮겨볼게요. 176-7쪽입니다.

      그 관념들은 신 안에 있지만, 신이 우리 영혼 혹은 정신을 구성하는 한에서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념들이 그들 자신의 (질료) 원인을 표현할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관념들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확실히 우리의 변용 관념들은 그들 자신의 원인, 즉 외부 물체의 표상적 본질을 "함축"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거나" 그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 관념들은 우리의 인식 역량을 함축하지만, 그것에 의해 설명되지 않고 운을 참조한다. 이 경우에 "함축하다"라는 말은 더 이상 "설명하다"나 "표현하다"의 상관어가 아니다. 이 말은 우리가 그것의 관념을 가지는 변용에서의 외부 신체와 우리 신체의 혼합을 지칭하므로 오히려 그것들과 대립한다. 스피노자가 자주 사용한 정식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변용 관념들은 우리의 신체 상태를 지시하지만, 외부 물체의 본성 혹은 본질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갖는 관념들은 기호들, 우리 안에 새겨진 지시적 이미지들이지 우리 자신이 형성한 표현적 관념들이 아니다. 즉 지각 혹은 상상이지 이해가 아니다.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이미지는 자국, 흔적 혹은 물리적 인상, 신체의 변용 그 자체, 어떤 신체가 우리 신체의 유동적이고 무른 부분들에 초래하는 결과이다. 반면에 비유적 의미에서 이미지는 변용에 대한 관념이며, 이는 단지 대상을 그것의 결과를 통해 우리에게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은 인식이 아니라 기껏해야 재인식recognition일 뿐이다. 그로부터 지시 일반의 특징들이 나온다. [길어서 잠시 조금 고민되었지만 ㅋㅋ 마저 옮겨 쓸게요] 주된(직접) "지시대상"은 우리의 본질이 아니라 우리의 가변적 구성constitution의 순간적인 상태이다. 이차 (간접) 지시대상은 외부 사물의 본질 혹은 본성이 아니라 외관이며, 그로써 우리는 단지 사물을 그것의 결과에서 시작하여 재인식할 수 있고, 따라서 맞거나 틀리게 사물의 현존을 긍정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갖는 관념들은 재인식에서 그 역할을 하는데, 순전히 지시적인 운과 마주침의 산물이며, 비표현적이고, 다시 말해 부적합하다. 부적합한 관념은 절대적 결핍이나 절대적 무지가 아니다. 그것은 인식의 결핍을 함축한다.

      • 2023-06-14 17:45

        책도 어렵고 자세히 읽고 생각할 시간도 별로 없고 여러모로 좀 지치는 느낌이었는데ㅠ.... 호수샘이 올려주신 글을 읽고 있으니 갑자기 힘이 나는 건 왜일까요?^^ 안그래도 저 대목을 읽으면서 함축은 안으로 말리는 것이고 설명(표현)은 밖으로 펼쳐지는 것이니 상대적인 개념인가 했었어요. 위의 글에 의하면 변용의 관념은 지시적 이미지(=상상 혹은 지각)이고 이미지를 통한 인식(표상)은 기껏해야 재인식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사물의 본성이 아닌 외관만을 인식할 뿐이니. 결론적으로 이미지로 인식하는 표상은 부적합한 인식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정도로 읽히네요. 정군샘이 말씀하셨던 이미지와의 관련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군요. 호수샘, 고맙습니다. 이렇게 긴 글을 옮겨주시기까지. 역시 분야의 전공자들에겐 늘 배울 게 많습니다. 시비거리를 하나 던진다면, 그래서 전 이과 전공자들의 인문학 공부를 잘 신뢰하지 않는 편이죠 ㅋㅋㅋㅋㅋ 물론 문탁에서 이런 말 하면 돌맞는 거 압니다^^

        • 2023-06-14 18:39

          아, 저의 타자질이 ㅎㅎ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다만 시비를 걸자면ㅋㅋ(질책인가요? ㅋ) 스피노자가 쓰고 있는 개념을 들뢰즈식 개념에 등치시키는 것에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지지만요ㅋ (예를 들어 이미지가 몇 개 안 될 때는 판명한데 많아지면--신체의 한계로--혼란 즉 부적합한 상상이 초래된다는 대목을 보면 이미지 자체가 비표현적 특성을 갖는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고, 들뢰즈는 여기서 함축을 표현의 대조적 개념으로 정립하고 있지만 스피노자의 2종 인식에서는(2부 정리39 증명)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서요). 덕분에 저도 좀 더 자세히 생각해봤어요. 아무튼 여기서도 들뢰즈가 개념들을 도식화하는 능력은 실로 탁월한 듯요.

          • 2023-06-15 13:43

            그러게요. 일단 제가 정리한 건 들뢰즈에 제한해서 이해해야 될 것 같네요. 그니까 쌤 말씀은 스피노자에겐 이미지나 상상이 사물의 본성을 일부 표현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건가요? 오늘 좀 더 이야기하면 좋을텐데 제가 결석이라ㅠ 셈나시간에 혹시 시간되시면 한번 이야기 나눠보시죠.

            • 2023-06-15 17:14

              제가 이미지가 그 자체로는 표현적일 수 있다고 한 것은 기본적으로 그 자체로 연장 양태이기 때문에 특수한 실재는 신의 본성을 표현한다는 차원입니다(물론 사유 속성과 양태의 측면에서도요). 하지만 이것 말고도 함축이 반드시 표현의 대립어가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을 더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사물이 표상된 이미지(신체 변용)와 거기에서 이어지는 관념(또는 상상)이 '그 사물의 본성을 표현(설명)하는가'에서 스피노자의 입장은 지난번 내용에서 나왔어요. 이러한 관념들은 함축적이지 설명적(=표현적)이 아니라고 스피노자도 2부 정리18 주석에서 말한 바 있어요.

  • 2023-06-12 16:23

    저는 자연학소론 부분에 관해서 몇 가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보았던 "물체에 따른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물체의 정신화"부분입니다. 이것은 물체의 능동화라고 읽어야 한다는 진태원샘의 책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영혼이라는 말은 오히려 헷갈릴 수 있습니다. 모든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하면 당장에 범신론으로 빠질 수 있으니까요. 이 당시 물체의 운동 원인을 충돌이든(갈릴레이) 신이든(데카르트) 외부적 요인으로 봤던 자연학적 관점과는 달리 스피노자는 내재적(내부적) 힘을 운동원인으로 봤기 때문에 물체의 정신화/능동화를 언급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17세기 자연철학>에서 갈릴레이와 데카르트가 운동학으로 묶이고, 홉스의 코나투스와 뉴턴이 동역학으로 묶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만 홉스의 코나투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양쪽에 모두 함의를 가진 것으로 저자가 풀이 했었는데, 스피노자에게도 이런 이중성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자연학소론 대부분 내용은 운동과 정지의 비율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에게도 정지한 물체가 운동을 한다는 것은 데카르트의 외부적 충돌과 다르지 않은 "마주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요샘이 본성도 구성된다고 얘기해서 저는 고개를 갸웃했는데요. 이것에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면 좋을 듯) 그런데 제가 생각해보니 물체의 무른 부분과 단단한 부분들이 변용되는 과정 그 자체가 물체가 구성되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것이 어쨌든 변용의 외부적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내부적인 원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이후에 물체의 본성을 코나투스로 스피노자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도 좀더 지켜봐야 스피노자의 자연학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듯합니다.

    • 2023-06-14 13:21

      제가 본성이 구성된다고 했나요?^^
      어떻게 말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ㅎㅎ 저의 맥락은 복합개체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단순개체들이 합성되어 복합개체가 되고, 또 복합개체들이 모여 더 복잡한 복합개체가 구성됩니다. 그럴 때 개체의 본성은 미리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개체를 구성하는 개체들의 본성들의 합도 아닐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기에 그 복합개체를 구성하는 개체들 사이에 서로 주고받는 운동과 정지의 관계가 개체(전체)의 본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본성이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개체의 합성이 일어날 때 그 개체를 유지하게 하는 운동과 정지의 관계라는 것이지요. 그럴 때 개체를 구성하는 부분들이 끊임없이 변이하더라도, 운동과 정지의 관계가 어느 한도 내에 있는 한 그 개체는 개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되겠지요. (이것을 자연학 소론에서 스피노자는 개체의 본성의 유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합성을 무한히 계속해 가면 단 하나의 개체인 자연전체가 됩니다. 스피노자의 자연학에 따르면 자연전체는 오직 하나의 개체이니만큼 그것은 개체의 본성을 유지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무한하게 변이가 일어나는 것이 되는 것이 됩니다. 저는 자연이 하나이고, 그 본성이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것보다 그 내부에서 무한하게 변이가 일어난다는 점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연을 구성하는 개체들은 끝없이 해체와 변용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연장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 전체의 운동과 정지의 비율이 어떤 하나의 고정된 함수를 갖는다 하더라도, 기실 그 내부의 개체들 그리고 개체들 사이에서는 끝없는 해체와 합성의 형태로 변용이 일어나고 새로운 본성의 출현이 일어나고 있지 않냐는 것입니다.

      • 2023-06-15 00:16

        신을 역량이라고도 하지만 함수라고 봐도 어울리는 비유같습니다. 예전 세미나에서는 알고리즘인가 뭐 이랬던 기억이 납니다.

  • 2023-06-14 19:35

    아아아...지난 주에 후기가 올라오자마자 보고, 곧 댓글을 달아야지... 곧...곧...곧... 하다가 내일이 세미나녜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 댓글 달기가 더 어렵습니다. ㅎㅎㅎ
    간단한거 한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스피노자 특유의 말투(저 위에 호수샘의 들뢰즈 인용에도 나오는) '인간 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한에서' 이와는 대별되는 의미로 '실재의 정신의 구성하는 한에서' 같은 것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신'와 '인간'은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은 '인간 정신을 구성'하기도 하고, '실재들의 정신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둘째, 그런 이유에서 스피노자가 '-하는 한에서'라는 표현을 쓸 때는 '신'을 유한한 어떤 것으로 보고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신'의 어떤 측면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봐야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으로서 신의 관념'에 관해서 말하거나, 인간 정신을 넘어서 실재들(인간도 실재들 중 하나죠)의 관념에서 관해서 말하거나. 요컨대 이건 전체집합과 부분집합의 관계랑 같은 겁니다. 마지막으로, '신'의 이처럼 모든 관념들의 '원인'입니다. 아마도 이점이 인간 정신이 1종 인식을 넘어설 수 있는 근거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요.

    어쨌든, 이번주부터 드디어 2종 인식과 3종인식 그러니까 '적합한 인식'에 관한 부분으로 넘어갑니다. 이 '적합한 인식'은 여느 철학자들의 '인식'처럼 그저 인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복의 근거가 되는만큼 매우 중요합니다. 몹시 기대가 되는 동시에 어쩐지 걱정도 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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