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양생주 후기 “날 보고 어찌 살라고~”

타라
2019-03-22 17:18
412

적래(適來) 적거(適去), 안시이처순(安時而處順).

우연히 오고, 우연히 가니, 매 순간을 편안히 맞이하고 순리에 머무르다.

 

양생주를 읽으며 이 구절이 가장 와 닿았다.

삶과 죽음을 우연히 오고 감이라 말하는 장자야 매 순간 편안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테지만, 매 순간 스스로 고()를 만들어내고 있는 요즘의 나는 어찌하면 매 순간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불교에서 고()란 두카, 즉 불만족을 뜻한다.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고()라는 것이다. , ()는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주체의 태도 문제로 귀결된다. 같은 상황이 누구에게는 고()가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장자로 돌아와 어떻게 하면 안시이처순(安時而處順), 즉 양생(養生)할 수 있을까.

 

문탁 선생님은 기독교의 영생(永生), 도교의 장생(長生)의 예를 들어, 장자의 양생(養生)을 설명하고자 하셨는데, 이번 시간에 명쾌한 답이 내려지지 않아 다음 시간에 다시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이유애(以有涯) 수무애(隨無涯), 태이(殆已)

끝이 있는 것으로써 끝이 없는 것을 좇으면, 위태롭다했으니, 끝이 없는 지식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 말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럼, 대체 어찌 살라는 것인가.

 

장자는 포정이 소를 잡는 예를 들어, 처순(處順), 즉 도()를 설명한다.

신이신우(臣以神遇), 이불이목시(而不以目視)

()으로써 만나지, 눈으로 보는 것으로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이란, 시각, 청각, 미각, 촉각, 생각을 넘어선 마음으로 만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소를 잡는 이는 소를 신()으로써 만나고, 호떡을 굽는 이는 호떡을 신()으로써 만나고, 자장면을 만드는 이는 자장면을 신()으로써 만나는 것. 자기 삶의 터전에서 생활의 달인이 되는 것이 삶의 도()라고 말하는 것이다. 문탁 선생님은 도의 파지(把持)는 대상의 인식이 아니라 방법의 인식이며 결코 언표화될 수 없다는 그레이엄의 말을 인용해 삶은 의미와 표상을 넘어서, 현장에서 수행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매 순간 펼쳐지는 삶 속에서 무아, 무심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상황과 대상에 대한 고도의 집중이며, 이로 인해 대상과 신()으로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양생(養生)이란 무엇인가.

각자 다른 답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내게 삶이라는 순간의 연속이고, 매 순간 내 앞에 주어진 상황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어설프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모든 주어진 상황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다. 언제쯤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것들과 신()으로서 조우할 수 있을까, 란 질문을 남긴 채 어설픈 후기를 마무리해야겠다.  

댓글 1
  • 2019-03-22 21:50

    한동안 나는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라는 질문을 반복했던 적이 있어요.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있다면 달라질 수 있을것 같다고, 저 사람의 행이 내 몫이 아닌 이유를 묻고 물었더랬지요. 그런데 장자는 시시비비를 따지는 인식, 지식의 문제로만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이 분명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천리, 자연에 순응한다는 게 호흡기를 매단 채 연명하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을테니 살아간다는 것은, 샘의 말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늘 탐구하고 수련의 과정으로 삼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네요.

    요가에서 호흡과 마음, 몸의 움직임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으면 금세 균형을 잃게 됩니다. 어려운 동작을 처음부터 제대로 할 수는 없지만 매일 매일 수련하는 만큼 어느새 근력이 붙고 안정적으로 동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양생을 삶을 키우는 기예라고 할 때 포정의 예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에는 이 같은 구체적인 기술, 실천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50
<윤리학>에서 '정신'과 '마음'의 차이 (3)
세븐 | 2023.07.07 | 조회 354
세븐 2023.07.07 354
749
[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9주차 질문들 (12)
정군 | 2023.07.05 | 조회 420
정군 2023.07.05 420
748
[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8주차 후기 (8)
정중동 | 2023.07.04 | 조회 321
정중동 2023.07.04 321
747
스피노자의 이뤄지지 않은 사랑 이야기 (7)
세븐 | 2023.07.01 | 조회 437
세븐 2023.07.01 437
746
[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8주차 질문들 (12)
정군 | 2023.06.28 | 조회 344
정군 2023.06.28 344
745
[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7주차 후기 (8)
진달래 | 2023.06.27 | 조회 375
진달래 2023.06.27 375
744
[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7주차 질문들 (14)
정군 | 2023.06.21 | 조회 361
정군 2023.06.21 361
743
[2023 철학학교 시즌2] 스피노자 읽기 6주차 후기 (7)
지음 | 2023.06.19 | 조회 370
지음 2023.06.19 370
742
보충자습...미진했던 부분 (7)
아렘 | 2023.06.19 | 조회 388
아렘 2023.06.19 388
741
[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6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6.14 | 조회 349
정군 2023.06.14 349
740
[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에티카> 2부 두번째 세미나 후기 (12)
호수 | 2023.06.08 | 조회 617
호수 2023.06.08 617
739
[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5주차 질문들 (14)
정군 | 2023.06.07 | 조회 377
정군 2023.06.07 377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