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후기)푸코는 왜 칸트에게로 갔을까요?

여울아
2021-07-27 16:38
453

<주체의 해석학> 4강 마지막 강의에서는 푸코도 모르겠는데, 칸트의 비판서까지 등장했습니다. ㅎㅎ

왜 푸코는 말년에 칸트에게로 갔을까요?  (사실 강의록을 미리 읽어 보지 않아서 마지막 칸트 얘기에 정신이 얼얼했습니다.) 

 

먼저 아스케시스에서 솔직하게 말하기, 파르레시아(파르헤지아)가 요청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대의 읽고 쓰기는 자기 훈련이자 명상이었으며, 말하기 또한 그런 과정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초등학생이 알파벳을 읽히고 난 후 한 글자씩 읽고서 문장 읽기를 배우는 것처럼 

말하기 또한 자신의 영적 스승으로부터 그의 삶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파르헤지아는 스승의 말하기 윤리에 가깝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인상적인 것은 파르헤지아를 중세 기독교의 고해성사와 비교한 점입니다.

솔직, 담백하게 진실을 말하는 관계는 서로를 구속하거나 의존적이지 않다는 것.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는 아첨이나 수사적 말하기를 상대를 해치는 도적(비도덕)이라 간주한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83년, 84년 푸코의 강의록에서 파르헤지아는 소크라테스(처럼 말하기?), 견유주의(처럼 말하기?)까지 탐구가 확대됩니다.

공공장소에서 상대와의 관계가 단절될 각오로 말하기. 

죽기전까지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서야 했던 소크라테스가 떠올랐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진리를 자신의 행동으로 드러내는 용기. 

저는 이 부분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김기덕이 이들 견유주의자들과 크게 다른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들이 실천하는 윤리를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미투 이후 김기덕은 그의 영화에서 보여줬던 부조리와 꼭닮은 삶을 살았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폭로되었지요 ㅠㅠ

 

83년 이후 이제 푸코는 파르헤지아를 칸트적 비판으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푸코의 책 <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에서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소개되고,

여기서 파르헤지아는 칸트의 비판이라는 현대적 이름을 얻게 됩니다. 

엥? 왠 계몽주의? 계몽, 미몽에 빠진 이들을 흔들어 깨우는 루쉰도 생각나네요. 

그럼, 칸트의 비판은 왜 나왔을까요?

강의에서는 문탁샘이 너무 훅 들어온 느낌적인 느낌..

이전에 공부한 걸 떠올려 보자면, 칸트는 이성의 한계를 깨달을 때에만이 비로소 이성의 남용을 막고(기독교의 사목??)

주체의 변형, 혹은 자유가 가능하다는 알듯모를듯...

암튼, 그래서 칸트의 입을 빌어 푸코는 비판은 필연적 한계를 갖는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지금의 나와 다른 나로 자신을 변형하는 것,

이제 파르헤지아는 비판적 태도, 에토스, 철학하는 삶으로 풀이됩니다. 

푸코가 이러한 비판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열망했던 것은 자유였다고 하는데... 

 

나는 비판의 과업이 우리의 한계에 대한 연구 작업, 그러니까 자유를 향한 우리의 참을 수

없는 열망에 형태를 부여해주는 끈질긴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983, <계몽이란

무엇인가>, 『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 p200)

 

강의가 끝나고 며칠을 보냈지만, 헥헥.. 제게는 여전히 고대의 파르헤지아에서 칸트의 비판까지는 좀 벅찹니다...

그럼에도 문탁샘에 의지해서 칸트의 해석까지 가봤다는 것은, 

제가 어항 밖으로 나가 내 자신이 살고 있는 어항 속을 들여다볼 용기를 내는데 한 발자국 뗀 것 아닐까요? ㅎㅎ

 

댓글 2
  • 2021-07-28 10:21

    아, 금요클래식이 끝나자 마자 <주체의 해석학>에서 아직 덜읽은 마지막 하루치 강의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룰루랄라 하고 있었네요.

    여울아님의 후기가 다시 그날의 기억으로 저를 데려 가네요. 고마워요.ㅎㅎ

     

    솔직하게 말하기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가 떠올리는 건 심리상담하러 가거나 정신과에 가서 하는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

    아니면 사적으로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하는 속이야기 같은 것인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초기의 파르헤지아는 아주 다른 거였더라고요.

    그리고 그 안에서도 그룹마다 파르헤지아의 실천은 달랐던 듯.

    오늘 우리에게 파르헤지아의 실천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푸코가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가지고 온 것도

    <주체의 해석학>이후 강의에서 견유주의를 중점적으로 연구한 것도 그런 맥락 아닐까요?

    마지막 강의를 들으며 <진실의 용기>를 읽어봐야하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불현듯 그것도 다시 상기가 됩니다.^^

  • 2021-07-29 18:12

    저도 마지막 시간 칸트의 등장은 의외였어요. 전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서문 강독 단기 세미나에서 문탁샘께서 "푸코가 칸트의 비판에 관해 얘기했다"고 하신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저는 이번 마지막 강의의 여운이 아직도 꽤나 강렬합니다.

    전에 <주체의 해석학>을 읽을 때, 마지막 강의의 마지막 두 단락이 제게 굉장한 궁금증을 남겼는데 이번에 생각이 나서 다시 펼쳐봤어요. 거기서 푸코는 "어떻게 세계(=bios 삶)가 (주체의) 인식 대상"인 동시에 "주체의 체험 장소"가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이러한 주체의 이중적 위치는 강의 시간에 언급되었던 '어항 안에서 어항 밖을 상상'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쩌면, 푸코가 주체의 해석학 강의를 시작할 때, 문탁샘께서 첫 번째 강의에서 언급하신 "권력 너머"에 대한 탐구를 푸코가 시도한 것이 맞다면, 이것 역시 달리 말하면 주체가 처한 이중적 위치에 대한 질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권력 게임 안에서 주체화가 가능한가. 혹시 지금의 권력 게임 이전의 시대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쩌면 푸코가 주체에 관한 해석학적 탐구를 시작할 때 염두에 둔 것은 주체화의 방식 못지 않게 주체화의 가능성 그 자체였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고 푸코는 그 질문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가능성 여부가 아니라 "가능성을 실험하는 태도"일 테니까요. 다만, 우리는 스스로 그러한 이중적 위치에 있음을 알기에, 우리에게 부과된 그러한 한계를 더더욱 치밀하게 "비판"에 부쳐야 한다고, 그것이 이성의 공적 사용이라고 말한 거라고, 지난 시간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실험하라!"로 읽어봅니다. 푸코의 연장통에서 나온 칸트의 비판과 계몽은 그간 덧붙여져 온 수많은 오해와 선입견이 벗겨져 마치 새로운 이야기가 된 인상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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