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같이 읽어볼까요? - <주자어류>의 독서법

문탁
2016-02-27 13:31
864

고전공방에서는 공자를 존숭하고

루쉰세미나에서는 공자를 죽이고

나 원 참...ㅋㅋㅋ...

어쨌든 요기서는 일단 공자와 이정과 주희의 말씀을 받들어 모셔야 할테니...푸하핫

 

 

 

 

8988473078_1.gif 요 책이 세미나에서 말씀드린 <주자어류>의 <독서법> 상,하를 번역한 책입니다.  요기에 이런 말들이 있어요.

 

 

 

 

 

 

일반적으로 사람이 태어나면서 갖는 도리는 선천적으로 완전하게 구비된 것이지만, 독서해야 하는 까닭은 대체적으로 우리가 아직 충분히 도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인은 많은 것을 경험을 통해 이해하였고, 그래서 그 이해한 것을 책에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666.jpg 요건 신 유학의 기본 메세지죠? 이제 이건 알겠구.....

 

 

학문은 자기 자신의 절실한 문제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독서라는 것은 이미 두번째 의의를 지닌다. 자기의 일신상에 도리가 모두 구비되어 있는 것이지, 자기의 외부로부터 첨가되어 들어온 것은 아니다.

 

학문은 똑똑함과 우매함의 구별도 없고, 큼과 작음의 구별도 없으며, 고귀함과 비천함의 구별도 없으니, 본래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해해야 하는 일이다.  가령 성현이 태어나지 않아...서책도 현존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도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니...지금의 상황은...많은 글도 현존하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스승이나 벗은 단지 (도리를) 계발시킬 뿐이다. 사람이 만약 스스로 앞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스승이나 벗이 어떻게 힘쓸 수 있겠는가?

 

      666.jpg 요게 지금도 우리가 새겨야 하는 공부하는 '이유'일거구... 전 아주 오래 전부터 요런 강령같은 걸 주워섬겼었죠. 우리같은 공부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얼 공부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공부하느냐이다. 아니, 어떻게 공부하느냐가 아니라 왜 공부하느냐이닷!!!

 

 

 

성현은 배움의 길을 사람에게 가르치면서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무릇 배우는 사람은 독서할 때 의미를 끝까지 파고 들어야 한다.... 대체로 책을 볼 때는 보고 또 보며, 단락과 구절 그리고 글자에 따라 (차례대로) 이해해야 한다. 나아가 여러 해설과 주석을 참고해서 가르침이 철저하고 완벽하게 이해되고, 그래서 도리와 자신의 마음이 서로 수긍해야 한다. 독서는 자신의 도리를 투철하게 하나로 받아들이려는 행위이다.

두원개가 말했다. "여유롭게 푹 빠져서 스스로 (도리를) 추구하게 하고, 물리도록 넉넉하여 스스로 (도리를) 쫓아가게 하면, 마치 강과 바다가 넘실대듯, 기름진 땅에 윤택함이 넘치듯, 쫘악 얼음을 풀리게 되고, 사르르 이치는 따라오게 되니, 그러면 (도리)는 얻어지게 된다.

     666.jpg ㅋㅋ... 뭥미? 이거 거의 제 잔소리와 똑같지 않나요?

     주자시절에는 "優而柔之,使自求之,厭而飫之,使自趨之 " 줄여서 "우이유지優而柔之 염이어지厭而飫之"란 말이 엄청 회자되었다고 하네요. 학문에 미치도록 푹 빠져 보아야 그 맛을 알게 된다는 것이겠죠?

 

 

 

성인의 언어는 한 겹 아래 다시 한 겹으로 싸여 있으니, 모름지기 깊이 있게 살펴야 한다....사람은 글을 볼 때 단지 한겹 만을 보고, 다시 두번 째 겹은 검토하지 않는다.

 

독서는 모름지기 꿰맨 틈새(縫罅)를 파악해야 비로소 도리를 철저하게 연구할 수 있다. 만약 꿰맨 틈새를 파악하지 못하면, (도리에) 접근하는 단서가 없데 된다. 꿰맨 틈새를 파악할 때 (글의) 맥락은 저절로 열린다.

 

글의 큰 절목(핵심)을 세 번에서 다섯 번 가량 철저하게 이해하면, 다음에는 (대의 첫마디가 쪼개지면 나머지는 칼만 대도 나가듯이) 쉽게 풀려 나간다. 배우는 사람이 근심할 것은 가벼움에 있으니, (이것은) 아주 시원스럽고 깊이 있게 침잠하지 못하는 것이다. 

     666.jpg 오...이번에 하나 배웠어요. 절목은 <예기> 학기편에 나오는 단어인데 나무결이 뭉쳐진 곳이라는 뜻이랍니다. 節은 좀 더 크게 쿵쳐진 곳이고 目은 조금 작게 뭉쳐진 곳이래요. 그래서 또 제가 원문을 찾아보니 (아, 인터넷은 너무 편해...ㅋㅋㅋ) 이렇군요

 

     

예기(禮記)-721 學記第十八 12 

善學者師逸而功倍(선학자사일이공배) 又從而庸之(우종이용지) 
잘 배우는 자는 스승이 편안하면서도 공이 배가 된다. 또 따라서 이것을 스승의 공으로 돌린다 
不善學者師勤而功半(불선학자사근이공반) 又從而怨之(우종이원지) 
잘 배우지 않는 자는 스승이 부지런히 하면서도 공은 반이 된다. 또 따라서 스승을 원망한다  
善問者如攻堅木(선문자여공견목) 先其易者(선기이자) 後其節目(후기절목) 
묻기를 잘하는 자는 마치 굳은 나무를 치는 것과 같아서 그 쉬운 것을 먼저 하고 그 절목을 뒤에 한다 
及其久也(급기구야) 相說以解(상설이해) 

그 오래 되기에 미쳐서 서로 관련하여 해득하게 된다 

 

 

 

 

  배우는 사람이 처음 글을 대하면 단지 혼란스럽고 알 수 없는 대상으로 보일 뿐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두서너 조각에서 십여 조각으로 (분해해서) 살피면 비로소 멀리 나아가게 된다. 가령 백정이 소를 발라낼 때 눈에 온전한 소로 보이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다.

     666.jpg 뭥미? 주자도 이런 말을? 하긴 天理란 단어의 최초의 용례가 <장자>에서, 그것도 포정해우편에 나오니까....장자-장재-이정-주자의 연결고리가 이렇게 보이기도 하는군요. 

     그런데 제가 뭔가 이상해서  "꼼꼼히!!" ㅋㅋㅋ... 다시 살펴보니주자의 의도적 오역? 이 눈에 띄네요. 원래 <장자>에는 이 부분이 "所見無非全牛者"입니다. 전우가 아닌게 없었다는 것이죠. 그 결이 보이지 않고 통째로만 보였다... 뭐 이런 뜻이죠. 그런데 주희는 이부분을 "目視無全牛"라고 했어요. 전체의 소(온전한 소)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중부정을 그냥 부정어로, 완전히 반대로 만들어놓고 같은 문맥으로 인용하니, 이 불초한 학생...다만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네요.

 

 

   어쨌든 주희님의 결론은 공부란 잘근잘근잘근 씹어야 하나니, 그러다 보면 어느새 '활연관통' 하리라............쯤 되는 건가요?  크하핫..

 

  81.jpg                                                   82.png

댓글 1
  • 2016-02-29 22:53

    파일이 커서 인쇄에 시간이 좀 걸릴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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