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세월호 순례길은 여행이었어요

자누리
2017-06-09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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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스러운 시간 도보순례

 

6일 아침 눈뜨자마자 한단어가 떠올랐다. “이어서

요즘 책에서 자주 접하는 글자들이긴 하지만 아마도 순례를 가는 마음을

허투루이 하고 싶진 않았나보다.

 

나카자와 신이치도, 엘리아데도, 우리가 성스러운 차원의 사고를 잃어버렸다지만

세월호 아이들의 영혼을 마주하려면

적어도 오늘은 성스러운 마음을 회복해야하지 않을까하면서 길을 나섰다.

(모든 일을 파지사유인문학 신화에 관한 홍보로 마무리하는 신공을 요즈음 자제하는 중이었는데...

역시 현실에 충실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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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순례길은 서해안 바닷가를 따라간다. 경치도 좋고 걷는 사람들도 좋고..

좋음에 심취하여 걷다가 이렇게 좋아도 되나 잠깐 돌아보기도 하고..

모두들 한줄로 서서 묵묵히 걸었다.

이 사람들이 무얼하는지 알리고 싶어 ‘416 희망의 길조끼를 입었고

길가다 마주치는 차들에게 열심히 손들도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길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비가와서인가?)

오후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대거 합류했다.

혹시나 흐트러질까봐 인솔자는 다시 경건하게 걷자고 대열을 추스렸다.

침묵의 시간은 슬펐다. 바닷길이 아름다워서 더 슬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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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속의 시간 밥과 조개젓

휴일이라 평소에 비해  순례자들이 많았다. 50명정도.

점심과 저녁을 식당에서 맛있게 먹으면서 세속의 시간을 즐겼다.

점심시간은 꽤 길어서 서로 소개도 하고 바닷가에서 잠깐 눈도 붙였다.

문탁에서 왔다고 매운탕을 앞에두고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416을 잊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 중이라고, 약전을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도법스님이 문탁 무섭게 공부하던데 요즘도 그렇냐고 물으시길래

한뜸 들여서 대답했다. 그렇다고.

여기저기서 아, 문탁하고 안다는 신호가 나오고 몇 사람은 인사도 했다.

춘천강원에서 공부하며 문탁축제에도 왔었다는 젊은 처자(송미선)는 인사끝에

지금도 자누리 썬크림을 쓰고 있다고 우리의 인연을 반가와했다.


담쟁이베이커리에서 만들어준 만쥬와 카스테라, 봄날표 사과즙을 간식으로 준비해갔는데

간식실은 차가 사라져서 결국은 못먹었다.

(찍어논 사진도 핸폰에서 실수로 날려버렸다.)

먹는게 무어 그리 중요하냐만은 그래도 주관하시는분도 미안해하시고

미안해하시니 나도 미안하고...다음날 맛있게 드셨기를!


보령에 사시면서 그곳 학천리는 처음이라는 분과 조개젓의 탱글함에 놀라면서

우리는 진심으로 사가고 싶어했다.

조개젓만이랴, 갑오징어도 유명하다고 하니 사서 문탁 점심에 선물로 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너무 세속적이라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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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행의 시간 - 보령

순례길의 모든 여정은 지역에 사시는 분들과 함께 하는 것같다.

축제에 왔었던 수지행님은 선발대로 다른 지역에 가있어서 만나지 못했다.

홍성. 보령 지역분들, 특히 시민단체에서 많이 참가해서 환대를 해주었다.


뭔가 모를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모르는 곳을 여행한 기분이었다.

밥을 근처 식당에서 먹거니 했는데, 웬걸 15분 정도 차로 이동하는 것부터 묘한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까만 봉고리무진차가 앞에서 인솔하니 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시민자율방범대 차량이라는데 사이렌이 달린걸로 봐서 아마도 관에서 제공해준게 아닐까 했다.

관과 민이 서로 멀지 않은 지역운동을 보니 뜬금없이 송나라 주자가 펼친 향리 공간의 정치론이 떠올랐다.

홍성의 홍동마을 분들도 꽤 보였다. 전날 숙소도 홍성 아이쿱생협이었다고 한다.

 

인솔하시는 분들이 전교조 교사여서 그런지 보령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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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방조제에서는 여기를 빨리 허물어야하는데 누가 하려나고 하셨다.


천해의 보고였던 바다가 많이 황폐해졌다고 한다.

충남의 해양기지나 다름없었던 천수만을 이처럼 방조제로 막아버려서,

중부발전소에서 뜨거운 물이 나와서..

뻘에서 긁기만 하면 나왔던 조개와 굴을 잃어버린 대신에

발전소에서 매년 보상금으로 면마다 70억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고향으로 귀농해서 유기농우유를 생산하는 젊은분은 보상금을 잘 쓰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마을단위로 나오니 쓸데없는 공사를 자꾸 하게 된다고.

도법스님은 마을단위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기금으로 조성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놓는데

지역분들에게서 쉽지 않다는 눈빛과 하고 싶다는 눈빛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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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하면 머드팩만 떠올리는데 전체 수입의 절반이 어업이라는 것도 알았고

사람들이 바다와 밭에서 일상을 어울리며 사는 질퍽함이 정겨웠고

길위로 마구 올라와 있는 칡들의 무성함이 생소했다.

그래서 순례하는 길이 여행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 귀한 시간을 친구들에게 더 권했어야 하는데 혼자만 간 게 미안해졌다.

특히 방에서 뒹굴면서 같이 갈 걸 하고 후회했다는 누구의 얘기를 들으니 더...

순례 일정이 아직 한달 정도 더 남아있으니 마음먹고 훅하니 다녀들 오시길..

 

ps. 416 순례길 걷기에 후원금들을 주셨는데 잘 전달했습니다.

댓글 5
  • 2017-06-09 07:04

    아! 좋았겠다.. 싶네요.^^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평범한 시간들이

    자누리님이 쓴 것처럼 성과 속을 성찰하는 순례길이 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매일 순례자로 살 수 있을까요?

    갑자기 작년 축제가 우리에게 던졌던 '수행'이라는 화두가 떠오르는군요.

  • 2017-06-09 08:56

    아...聖스럽게 읽어야 하는데 웃느라 전혀 그럴수 없었음...ㅋㅋ

    뭔지 모르지만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신이치와 엘리아데와 주자와 순례와 지역공동체...등을 종횡무진으로 엮다니^^)

    뭔지 모르지만 성과 속을 통합하는 느낌도 들고 (조개젓과 갑오징어 먹구 싶다~~)....

     

    갑자기 확 땡기니...좋은 후기가 틀림없군요. 푸하핫!

  • 2017-06-09 09:20

    아....멋지다^^

  • 2017-06-09 09:41

    요즘 세월호 기억의 교실 방석 만들기를 하면서 

    약전 속의 아이들의 세속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들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 2017-06-10 08:39

    어제도 약전을 읽으며 눈물을 닦으며...그래도 나비의 날개짓을 생각하며...

    요즘 조각난 생각들이 흘러다니는데...

    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