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논어 3회] 왜 나는 묻지를 못하는가

관리쟈
2020-04-13 16:31
361
[딩동 논어]  딩동!~ 리플레이 논어가 편지처럼 왔습니다. 문탁의 고전답게 다양하게 변주된 <논어>, 친구들은 예전에 어떻게 읽었을까요? 몇 년전 부쳤던 편지를 받는 기분으로,  리플레이되는 논어를 천천히 읽어봅니다.

 

리플레이 3회는 2012년 <이문서당>과 <학이당>에서 논어를 공부하고 쓴 산새의 에세이입니다.  <학이당> 친구들의 다른 에세이는  2012년 축제자료집 '논어읽기/9인9색' 코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산새 / 작성일 : 2012-11-07


 

왜 나는 묻지를 못 하는가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논어,술이편)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늘 ‘공부’다. 사서(四書)와 삼경(三經) 같은 동양고전에 특히 관심이 더 가는데 그 중에서도 《논어》와 《대학》, 《중용》은 꼭 읽어 보고 싶은 고전이었다. 지난 가을 갑작스럽게 동천동으로 이사를 하며 ‘문탁-고전학교(이문서당, 학이당)’를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논어》를 만나 완독의 기쁨을 누리기에 이르렀는데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나의 ‘질문 없음’에 대하여 질문을 하게 되었다.

 

《논어》대부분은 제자들이 스승에게 질문하여 들은 대답들로 채워져 있다. 질문하는 제자에게 답을 주는 자가 스승인 것이다. 질문할 줄 아는 제자가 스승의 대답을 듣고 배워나가는 것이 공자학교의 배움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나는 공부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는데도 여전히 질문이 생기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 특히 세미나 시간마다 문탁 선생님이 ‘질문을 좀 해 보세요.’ 할 때 갑자기 밀려드는 그 ‘멍한’ 느낌. 책을 다 읽었어도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건 왜일까?  ‘질문다운 질문을 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지...’ 하며 혼자 위로도 해본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만 가며 좇아가기 바빳지만, 이제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조차 하지 못하면서 그저 따라가기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왜 질문이 없을까?

 

《논어》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논어, 술이-8)

 

不憤不啓(불분불계)의 憤(분)은 진심으로 깨우치고자 구하지만 아직 얻지 못한 상태이고, 啓(계)는 그 알고자 하는 뜻을 열어주는 것이다. 不悱不發(불비불발)의 悱(비)는 말로 표현하려고 애를 쓰지만 뭐라고 형용하지 못하는 모양이고, 發(발)은 그 말을 일러 주는 것이다. 즉, 안타까워하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았고, 애태우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거일우 불이삼우반 즉불부야)는 한모서리를 들어주되 나머지 세 모서리를 알아채지 못하면 다시 되풀이 해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의지와 정열을 지니고 있어야 가르치는 사람이 그를 啓發(계발)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공자는 “어찌할까, 어찌할까라고 말하지 않는 자는, 나는 그를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라고도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의 ‘질문 없음’은 내가 憤(분)하고 悱(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校訓

 

도대체 왜 나의 생각은 공부하는 시간이 계속 쌓이고 있는데도 여전히 ‘왜?’라는 질문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왜 알고자 憤(분)하고 悱(비)하지 못하는 것일까? 공자가 배우는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강조한 것처럼 나 역시도 배우려는 사람의 자세를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좋은 학생의 태도를 가지려고 늘 노력해 왔다. 나는 배움에 있어서는 비판부터 하지 않고 경청하며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을 ‘열린 마음’이라 생각하고 의욕과 열정을 가지고 배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정도라면 배우려는 자세는 충분히 갖추었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논어》를 통해 보았을 때 그들이 가지는 ‘열린 마음’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논어》에서의 ‘열린 마음’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좀 더 절박한 것 같았고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묻어져 있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혹시 나의 배움에 대한 ‘열린 마음’이란 것은 단지 지식과 관련된 것에 대한 태도였을 뿐이었나? 그래서 나의 공부는 지식만을 열심히 잘 받아들이려고 하는 외적인 태도로 치우쳐지고 ‘내 삶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 이유가 내게는 공자와 제자들처럼 자기 삶에 부딪힌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절박함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말하자면, 내 삶에서는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질문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일까?

 

나에게 절박함이 없다는 것은 그릇에 비유하자면 나는 나의 가족 내에서 엄마나 아내라는 그 그릇에 자족하며 살았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君子不器(군자불기)’라고 하였다. 군자는 어느 한 가지의 용도로 국한된 ‘그릇’과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때론 밥그릇도 되었다가 국그릇도 되었다가, 텅 비어 있어 무엇이든 담을 수 있고 또 어떤 그릇으로도 쓰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정된 ‘그릇’에 갇히게 되면, 우리의 사유는 그 ‘그릇’이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不器(불기)’가 된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늘 기존의 용도에서 벗어나서 自足(자족)적인 나의 ‘그릇’을 깨뜨려 새로운 것을 담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나’라고 하는 이 ‘좁은 그릇’을 깨뜨리는 것으로부터 공부가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질문을 해나가는 그런 공부를 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나는 이런 질문으로 다시 시작해 보고자 한다.


 

댓글 2
  • 2020-04-14 09:48

    맞아요... 질문해가는 공부 너~무 어려워요... 8년 전 글을 읽으니 그때의 저를 떠올리게 되네요^^
    산새님^^ 등산 가고 싶다는 말이 들리던데^^ 등산 하면서 질문하는 공부를 더 밀고 나가 보아요~~

  • 2020-04-14 10:11

    산새의 질문은 더 나아갔는지...정말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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