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1주차 후기_도의적 책임이란?

호수
2023-07-29 08:29
493

올해 데⸱스⸱라 철학학교는 시즌마다 첫 후기를 세션샘이 꽃과 야구 소식으로 다정히 열어주셨는데, 꽃에도 야구에도 일가견이 없는 제가 첫 후기를 쓰려니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군요. 정군샘은 지난 시간 이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 번 내비쳤어요. 에세이를 얻고 세션샘을 잃었군요... 세션샘과 성이 같은 세븐샘 차례입니다... 역시 이 질문은 괜히 올렸어요. 이 질문을 세션샘이 봤다면 이런 노답 질문 또 한다고 마구 뭐라고 해주었을 텐데....... ㅎㅎㅎ 이거 보시면 부디 어서 돌아오세요, 세션샘.

 

세션샘이 없어도 첫 질문의 저주는 봉인 해제되지 않았고, 이번에는 그 피해가 극심한지라 (시즌 첫 시간부터 10시 반을 훌쩍 넘겨) 결국 질문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왜요...) 쓰다 보면 질문이 종종 커질 때가 있고 그럴 때면 이렇게 (우리 모두를 저주에서 꺼내고자) 무거운 질문은 되도록 중간이나 뒤쪽에 배치되도록 하고 싶지만 ㅎㅎ, 이 ‘배치’라는 게 역시나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서—저도, 제 질문도 전체의 부분이고 맥락에 처한 존재이니까요..

 

우리는 지난 시간에 정서의 힘과 인간의 무능력을 다루는 4부에 진입했습니다. 스피노자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완전성과 불완전성, 그리고 선과 악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데요, 저는 이 부분에 관해 질문했어요. 더 정확히 말하면 완전성과 불완전성을 판가름하고 선과 악을 판가름할 수 있게 하는 ‘모형’에 관한 것이었지요. 스피노자는 이 ‘모형’이란 편견이고 공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형이란 목적의 설정에서 나오는 것이며 “자연은 결코 어떤 목적을 위해 행위하지 않는다”고요. 자연에서 “실재성과 완전성은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자연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는 뜻일 겁니다. 그리고 선과 악의 경우 “그 자체로 고려된 것들 안에 존재하는 실정적인 것을 가리키지 않으며” 비교에서 나오는 사고방식이나 통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요. 그렇다면 완전성과 불완전성, 선과 악은 “목적의 설정”에서 나온 것이고 “비교”에서 나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목적을 설정하고 비교하는 것은 여기서 인간입니다. 좀 더 넓혀서 말하면 (능동이든 수동이든) 행위자로서 개체, 스피노자의 용어로는 실체의 부분으로서 실체를 표현하는 양태이고요.

 

그리하여 스피노자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이 용어들[선과 악]을 계속 보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염두에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인간 본성의 모형으로서 인간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려고 욕망하는 까닭에, 내가 말했던 의미대로 이 용어들을 보유하는 것이 유용하기 때문이다”라고 씁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윤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이 용어들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 용어들을 보유한다는 것은 ‘목적을 설정’하고 그리하여 완전성과 불완전성, 완전성의 이행을 말하고,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여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량의 증가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욕망은 좋은 것을 향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목적을 설정’하고 ‘비교’하는 양태적 관점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티카>의 시작은 실체였지만, 실체적 관점에서는 허위인 것들이 양태들의 윤리학에서는 중앙무대에 자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우연’과 ‘가능’이라는 표현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자연에서 우연한 일은 없지만 양태적 관점에서는 우연이 있고, 처음에 우리는 스피노자가 왜 ‘우연’이라는 ‘잘못된’ 표현을 쓰는가 싶어 이 부분을 논의했지만 4부 정리에서 스피노자는 ‘우연적인 것들’을 대놓고 규정합니다.

세븐샘과 정군샘도 질문에서 이 ‘유용성’이라는 표현을 다루셨어요. 저는 이 ‘유용성’이 말하자면 목적론적 태도(세븐샘의 문제 의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나 실용적 관점과 그 기저에 깔린 윤리의 상대주의나 주관주의(정군샘의 문제 의식이었다고 생각하고요)와는 다소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스피노자는 양태적 관점에서 옳은 것이 정의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의 목표는 아마도 양태적 관점을 벗어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이성이 곧 본성이고, 자신의 본성만을 따를 때 능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체적 관점과 양태적 관점이 하나나 다름없는 것이 되는 경지를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스피노자에게는 객관적으로 좋은 것이 있고 그리로 향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윤리학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정말 될까 싶은 야심 찬 기획이긴 합니다. 특히 4부 정리 4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게 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그의 본성만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인간이 적합한 원인이 되는 그러한 변화들만을 겪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를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스피노자는 상대론을 말하면서도 실재론자이고 주관주의를 말하면서도 객관주의자가 되는 묘한 면이 있는 듯합니다. 세미나에서 잠깐 얘기되었듯이 합리론자이면서 경험론자의 면모가 눈에 띄고요. 가마솥샘 질문을 다루며 얘기가 나왔지만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개체라는 것도 굉장히 다층적인 개념이어서 개체적 관점에서 선을 행한다는 것이 여러 가지 함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실체와 양태, 전체와 부분의 관계라는 것이 계속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세미나도 후기도 저 때문에ㅠㅠ(네,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본문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네요. 덕, 능력(potestas), 역량(potentia, 아, 그런데 이게 발음이 포텐티아 같아요. 교회식으로도요. 혹시 이탈리아어식으로 발음한데도 포텐치아일 듯합니다. 전설의 승용차 포텐샤 때문에 이 발음이 익숙해진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고, 아렘샘이 제기하신 공리 문제도 있었는데 쓰지 못했네요(아렘샘, 저도 소수의견이지만 그 공리 당연하게 안 느껴집니다 ㅎㅎ 하지만 그냥 저는 제가 이상한가보다 생각해요 ㅋㅋ). 무엇보다 정서에 관한 논의를 후기에 전혀 쓰지 못했네요. 정서는 힘이 세고 외부 원인의 역량은 인간의 코나투스를 무한하게 능가합니다.... 이어서 샘들께서 다른 내용을 잘 보충해주셔서 지난 시간의 후기를 마저 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 9
  • 2023-07-29 11:39

    호수샘의 첫 질문과 관련한 토론이 어쩌다 길어졌는데, 그 사태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결국 후기를 쓰셨군요.
    너그럽게 이해하시고 멋진 후기를 남긴 호수샘은 도의심(道義心)이 충만한 게 분명하네요.ㅎㅎ
    도의심은 '우리가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생겨나는 좋은 일을 하려는 욕망'(172p)이라고 합니다.
    도의심의 용어 규정처럼 호수샘의 후기를 쓴 행위는 이성의 인도에 따른 '자유인의 행동'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저도 유용성을 이유로 선(좋음)/악(나쁨)을 재사용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는데, 스피노자의 전략이면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1부 부록에서 선악 관념이 자연에 대한 목적론의 산물이었는데, 4부 서문에선 '인간 본성의 모형'을 상정함으로써 사용의 유용성을 얻은 듯합니다.
    '인간본성의 모형'도 "(우리가) 인간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려고 욕망하는 까닭에"라면서 새 용어 규정의 장치를 만들어 놓는 듯합니다.
    그리고 역량(potentia)의 발음과 관련해 라틴어사전을 찾아보니 '포텐샤'가 맞는듯 합니다.
    라틴어 'ti' 발음의 경우 t 앞에 s, x, t가 있는 경우에는 띠(티)로, 그 외에는 시로 발음. 예) tolerantia(톨레란샤).
    진태원샘의 <스피노자와 정치>의 역량/권능.권력.권한 용어설명(312p)에서도 '포텐샤'로 표기했어요.

    • 2023-07-29 15:50

      네? 제가 무슨 예언을 했단 것이지요? 그럼 우리의 맛점과 즐거운 주말은 누가 챙겨주시나요? ㅠㅠ

      포텐샤라고 읽는 라틴어 음차법이 있군요.. 저는 티아로만 알고 있어서 어딘가 어색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저도 이제 발음도 더 편한 포텐샤로 거리낌 없이…

      • 2023-07-29 16:52

        제가 오독을 한 것 같아요. 내용 수정했어요.

        • 2023-07-31 00:46

          앗, 비보가 사라졌네요. 사실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세븐샘의 일정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공포까지야 있겠어요 ㅎㅎ 매주 후기 담당을 정하는 것이 또하나의 고초일 튜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ㅎ 하지만 좋은 것은 함께 나누어야 하는 고로 제가 또 맡지는 않겠어요 ㅋㅋ

          • 2023-07-31 07:58

            재밌게 쓴다고 '공포'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주말 내내 이 단어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특히나 그 부분을 수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도 튜터의 고충을 십분 이해합니다.
            후기 쓸 사람을 매주 지정해야 하고, 에세이를 쓰도록 독려하기도 해야 하구요.
            그래서 2주차 후기는 제가 자원해서 쓸께요.

            • 2023-07-31 17:42

              세븐샘 2주차 후기는 이미 찜하신 분이 계세요. ㅎ 날씨가 엄청납니다. 두분 다 든든하게 챙겨드세요.

  • 2023-07-31 19:32

    날이 너무 더워서 머리가 오늘도 멍~합니다. 낮에 잠시 띵한 머리 식히러 동네 카페에 다녀오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 집에 와 있으니 도서관도 좀 멀고, 피서할 방법이 마땅찮네요.
    인간본성의 모형에 따른 좋음(선)과 나쁨(악)을 보존하는 것의 유용성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가 지난 세미나에서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은데..
    아~ 더위에 지쳐서 뭘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요.ㅎㅎ 그저 호수샘과 세븐샘이 주고받는 아름다운 대화에 놀랄 뿐입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돌맞을 지도 모릅니다.^^) 불교에서는 이제론이라는 것이 있어요.
    이제는 두개의 진리라는 뜻인데, 진제와 속제를 말합니다. 진제는 말하자면 사물의 실상을 밝히는 진리이고, 속제는 세속의 진리입니다.
    용수는 속제가 없이는 진제를 설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치만 속제는 낮은 차원이고 진제는 높은 차원이라는 식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고 하지요.
    둘 다 진리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높고 낮은 차원이 아니면 뭘까요? 늘 헷갈리는 문제인데..
    저는 실체의 관점과 양태의 관점을 말하는 스피노자의 방법도 이제론의 틀을 빌려와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보긴 했습니다.
    이게 다 날이 더워서 횡성수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휴!!

  • 2023-07-31 22:33

    호수샘, 항상 상냥하신 목소리로 치밀하고 꼼꼼하게 논의를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호수샘에게 도의적 책임을 전가하는 게 다소 부당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호수샘의 항변에 내심 동조하고 있었음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여하튼 저는 후기라도 여러 번 읽어서 세미나의 논의를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2023-08-01 13:58

    세션샘이 그립기는 합니다만, 야구는 진짜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완전히 그립기만 한 것만은 아니다는 것도 밝혀둡니다 ㅋㅋㅋ
    저는 이번에 스피노자를 읽으면서, 특히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개체성 문제에 관심이 자꾸자꾸 자라납니다. 이를테면 3종 인식에 도달한(?) 어떤 개체를 가정해 보면 이 개체는 '자기원인-실체-신'과 다르지 않은 생산역량 하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개체는 예속의 토대에 있는 '자유의지'가 소멸한 상태,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활동하는 개체일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우리가 '개체성(주체성)'이라 믿는 것들은 이 개체에게서 발견될 수 없다. 이 개체는 자기 자신의 원인이되는 '능동적 개체'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작년에 보았던 끊임없이 변이하는, 변이만을 존재양식으로 갖는 '수동적 주체'가 된다. 띠요옹...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새삼 들뢰즈에게 스피노자가 얼마나 중요한 철학자였는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시 들뢰즈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녜요...ㅎㅎㅎ

    아 그리고, 4부 정리37의 주석1에 "나는 우리가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생겨나는, 좋은 일을 하려는 욕망을 도의심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62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5주차 질문들 (12)
정군 | 2023.08.23 | 조회 329
정군 2023.08.23 329
761
[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읽기 4주차 후기(2종지와 3종지) (7)
여울아 | 2023.08.22 | 조회 344
여울아 2023.08.22 344
760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4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8.16 | 조회 357
정군 2023.08.16 357
759
[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읽기 3주차 후기 (5)
봄날 | 2023.08.15 | 조회 379
봄날 2023.08.15 379
758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3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8.09 | 조회 395
정군 2023.08.09 395
757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2주차 후기- 정리37 세미나? (8)
세븐 | 2023.08.04 | 조회 427
세븐 2023.08.04 427
756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2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8.02 | 조회 382
정군 2023.08.02 382
755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1주차 후기_도의적 책임이란? (9)
호수 | 2023.07.29 | 조회 493
호수 2023.07.29 493
754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1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7.26 | 조회 569
정군 2023.07.26 569
753
'스피노자 vs 스토아학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4)
세븐 | 2023.07.25 | 조회 378
세븐 2023.07.25 378
752
2023 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읽기]2가 시작됩니다! (2)
정군 | 2023.07.10 | 조회 1451
정군 2023.07.10 1451
751
[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9주차 후기 (8)
김재선 | 2023.07.09 | 조회 491
김재선 2023.07.09 49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