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vs 스토아학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세븐
2023-07-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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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간의 꿀맛같은 방학을 마치고 <스피노자읽기>2 개막을 앞두고 있네요.
 

 제가 지난 시즌 7주차 때 '자살'과 관련한 질문을 한 적이 있던 터라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죽음, 자살을 스토아학파와 비교해 봤습니다.

 

 

   "자유인은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이다."(<윤리학> 4부 정리67)

 

   "죽음, 추방, 그 밖의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다른 모든 것들을 날마다 네 눈앞에 놔두어야 한다. 특히 모든 것 중에서 죽음을. 그러면 너는 결코 그 어떤 비참한 생각도 가지지 않을 것이고, 또한 어떤 것을 지나치게 욕망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엥케이리디온> 에픽테투스.37p)

 

 

   <윤리학>의 저자인 스피노자와 <엥케이리디온>을 쓴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에픽테투스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사실 스토아학파로부터 상당 부분 '사상적 채무'를 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판 덴 엔덴은 그의 학생들에게 르네상스의 신고전주의 작품 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유산인 시, 연극, 철학 등의 고전문학을 읽도록 했다. 그들은 적어도 폭넓은 방식으로 플라톤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스토아 철학, 세네카, 키케로, 오비디우스 그리고 대체로 고대 회의론의 원리들까지 소개받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비교적 작은 서재에 호라티우스, 카이사르, 베르길리우스, 타키투스, 에픽테토스, 리비우스, 플리니우스, 오비디우스, 호메로스, 키케로, 마르티알리스, 페트라르카, 페트로니우스, 살루스티우스 그리고 다른 저자들의 책들을 가지고 있었다."(<스피노자,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 224p)

 

 

   스토아학파를 대표하는 에픽테투스와 세네카가 스피노자 철학에 영향을 끼친 지적 배경에 포함돼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렌즈 가공으로 생계를 꾸리며 실제로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했고, 죽음 직전까지 스토아적인 삶을 실천했습니다.

   또 <윤리학>에서 스피노자가 언급하는 자유인(스토아학파의 현인)과 덕(德), 행복 등은 스토아학파의 견해와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과 관련한 주제만큼은 스토아학파와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스피노자의 '자유인'이 죽음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 반면 스토아철학에서 등장하는 현인(賢人)은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고찰합니다.

  스피노자는 '이성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다'(4부 정리 67 증명)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 스피노자와 달리 스토아학파는 죽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세네카는 "인생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일 뿐이며, 인간은 태어나는 날부터 매일 죽어가기에 살아가면서 죽음을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살'에 대한 견해도 둘간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세네카는 '합리적 자살'을 사실상 지지하는데, 자살은 고통이나 수모, 개인의 윤리적 청렴을 무너뜨리는 악랄한 왕과 황제들에게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에 사실상 '해방'의 기능을 한다는 관점을 보입니다.

 

  반면 스피노자는 "누구도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스스로 곡기를 끊는다거나 자살을 하게 되지 않는다"(4부 정리 19 주석)면서 자살하는 사람들은 약한 마음을 지니고 있고, 그들의 본성에 반대되는 외부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스피노자는 자살이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임을 주장하면서 "세네카처럼 폭군의 명령으로 자신의 혈관을 드러내도록 강제되기도 한다"며 세네카의 사례를 듭니다.

 

   강한 외부 원인에 압도되는 것을 자살의 주요 이유로 꼽는 스피노자는 그러나  세네카 자살처럼 '더 큰 악을 피하기 위해 더 작은 악을 욕망하는 것'으로서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선 미묘하게 동조적인 입장을 보이는 듯합니다.

 

  두서없이 써봤는데, 세미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 ^

댓글 4
  • 2023-07-25 11:24

    방학은 학을 놓아버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ㅠㅠ 세븐샘의 방학은 그게.. 아니었군요!!ㅎㅎ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곡기를 끊지 않는다'에서 저도 멈칫했는데.. 음.. 곡기를 끊는 죽음을 추앙하고 있었던지라..
    아무튼..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4부를 차분히 읽어보아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3-07-25 23:06

    스피노자의 자유인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는 것은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듯 합니다.
    '두려워하지 않음'과 '생각하지 않음'은 조금 다른 것이니까요. 조금 적극적으로 해석해보면, 스피노자에게 '기쁨-역량-능동-자유'가 한 계열을 이루고 그 반대편에 '슬픔-무능-수동-예속'이 한 계열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때, 각 계열에 하나의 항을 더 추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앞쪽엔 '생성'을 뒤쪽엔 '소멸'을요. 물론 스피노자가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만, '기쁨'이 '더큰 완전성으로의 이행'을 말하고, '슬픔'이 '더 작은 완전성으로의 이행'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때, 그 각각의 이행들을 '생성'과 '소멸'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이행의 원리'를 직관하는 것이 스피노자의 '자유인'이라면, 그 역시 '죽음'을 항상 곁에두고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이 말들은 스피노자와는 아무 상관없는 해석일 수 있습니다만, 스피노자를 발판삼아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을 듯 합니다. ㅎㅎㅎ 그런데 물론 이렇게 생성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소멸'을 죽음과 연관짓는다면, 그 죽음은 스토이즘의 죽음과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될 겁니다. 사실 저는 좁은 의미의 윤리적 관점도 스피노자주의와 스토이즘이 꽤 다르다고 생각하는지라... 오히려 스피노자는 에피쿠로스와 훨씬 비슷한데가 많다고 봅니다.

    • 2023-07-29 11:51

      정군샘의 말씀처럼 스피노자의 죽음과 관련한 생각은 에피쿠로스와 닮은 지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찾아 보니 에피쿠로스가 "악 중에서 가장 끔찍한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아직 오지 않았고, 죽음이 왔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유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스피노자는 '영혼의 불멸성'을 믿었던 스토아학파와 달리 불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 2023-07-26 22:58

    코나투스를 본성이라고 여긴 스피노자에게 자살이건 곡기를 끊는 죽음이건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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