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8주차 후기

정중동
2023-07-04 23:31
323

3부 "정서"의 차원이라서 그런가, 이번 세미나에서는 독특한 실재들의 정서가 유난히 많이 흘러 나왔습니다.

 

재미없다(슬픔) / 3부 하니까 뭔 말인지 좀 알 것 같아서 읽을만 하다(희망/기쁨) / 1,2부에서 괴로웠던 것보다 재미가 없는 게 낫지 않나? 이들은 읽기 어려운 텍스트를 읽어야지 뭔가 엔돌핀이 도는 분들이다(미움?/슬픔) / 상당히 정치적인 텍스트를 상당히 안 정치적으로 꼭 이렇게 써야겠냐(실망?/슬픔) vs “이건 표면상으로 사랑과 미움 이런 이야기지만 심층은 굉장히 정치적인 텍스트다”, “사랑과 미움이라고 하는 건 정치적인 갈등의 바탕에 지금 뭐가 깔려 있는지를 존재론적으로 보여주는 거다”(=>정리31의 따름정리 각각의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려고 하는 이 노력은 사실은 암비치오다) / 기분이 더럽다_뭘 내맡기냐(분개/슬픔) / 얘는 여기에 왜 이렇게 써놨냐(비웃음/무시?/슬픔) / 질문 겹침에 따른 질문 생략(공감_기쁨) / 이건 경험하지 않고도 쓸 수 있지 않냐(상상_공감/기쁨) vs 이건 경험에서 따라나온 텍스트다(공감?/기쁨) / 얘는 폴리아모리를 모르나(무시와 결합된 연민?) / 이제 이해가 된다(만족?뿌듯함?_기쁨) / 내가 암비치오를 발휘했다(칭찬/욕망) / 나는 지금 정서모방으로 웃고 있다(기쁨) / 부적합한 인식으로 비롯된 슬픔(책비를 피하기 위해 정군사랑을 멈춰야할까 고민(마음의 동요) / 모순되게 읽혀지는 텍스트_연민_을 결국 남겨놓고 가는 당혹감(슬픔)과 함께 연말 에세이를 미리 준비하게 된 것에 대한 부러움(시기심?/슬픔)과 축하(타인의 행복에서 생겨나는 기쁨_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 나는 잘 모르겠다_3부 정리 22의 주석에 의해)=>마음의 동요. 운운.

 

물론 위에서 언급한 슬픔의 정서(저의 부적합한 관념에서 따라나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는 분류) 및 슬픔으로 수렴되는 정서들은 모두 (스피노자에 대한) 사랑(?)을 동반하고 있기에, 매주 에티카의 텍스트를 마주하는 우리는 “마음의 동요”를 겪게 되지요. 그리고 세미나를 통해 그 “마음의 동요”는 더 커지거나 혹은 줄어들게 됩니다. 다만 “정신의 결단”(3부 정리2의 주석을 보라)을 통해 침묵하거나 겨우 질문을 말하는 정도로 세미나에 참여해 왔던 저는, 이번 세미나 후기과제를 전 주에 미리 받아놓은 터라, 그 어느 때보다도 커다란 “마음의 동요”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슬픔에 빠지게 되었지요.(3부 정리 55_정신이 자신의 무능력을 상상할 때, 정신은 이로 인해 슬픔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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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게 인상적이었던 의견들 및 많은 의견들을 야기했던 질문 두어개를 복기함으로써 이번 8주차 후기를 채우겠습니다.

 

스르륵 쌤의 질문은 “37의 증명에서 슬픔으로 변형된 사람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슬픔이 더 클수록 슬픔과 필연적으로 대립하는 인간의 행위 역량의 부분도 커진다_라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슬픔이 더 커지면 슬픔에서 벗어나려는 힘도 있지만 또 그 슬픔에 우리가 더 침잠하고 또 슬픔의 중력이 더 커져서 불행한 결과도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이럴 때 반작용으로 인해서 벗어나려고 하는 힘, 기쁨의 힘으로 변형하게 되는 순간, 방법, 원리 이런 것이 스피노자식으로는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쌤들의 의견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에티카에 그려진 세상이나 인간이나 물리계가 다 비관적인데 되게 드물게 긍정적인 말이 나오는 부분이다. 어쨌든 우리가 슬픔에 매몰 돼서 더 망가지는 많은 케이스를 상상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도 굉장히 커지는 기쁨의 역량들도 있었다는 것.”

“스피노자는 정서는 정서로만 넘어갈 수 있다고 하니까 사실 슬픔을 이기는 힘은 기쁨이겠죠. 근데 이제 어떻게 기쁨을 만들어낼 건가_는 이제 우리가 더 읽어봐야겠죠.”

“네. 아마 그럴 겁니다. 이제 그 힘을 밝혀야 우리가 인간의 자유를 논할 수 있겠죠. 이게 아마 지성과 연관이 돼 있겠죠. 그래서 5부 제목이 [지성의 역량에 대하여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그러니까 원인에 대한 적합한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풀어나가려는 것은 단편적이고 답이 없죠. 슬픔의 원인에 대한 적합한 인식이 있어야 기쁨으로 가겠죠”

 

스르륵 쌤의 질문은 제 질문과 겹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8회차까지 이어지는 에티카의 텍스트들 속에서, 항시 스피노자가 뿌려대는 이 밑밥들(정의/정리/공리/따름정리 등)이 회수되는 과정을 어서 보고싶다는(어디 얼마나 알뜰하게 제대로 회수하는지) ‘성급한’ 마음을 달래며, 때론 그 전개의 양상을 “상상”하며 기대하고, 때로는 더 자주 그저 “좌절”하기 급급했었습니다. 그런데 정리37에 대한 샘들의 의견 속에서 어떤 “의구심을 동반한 희망”의 정서를 겪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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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여러 질문들 속에서 재등장을 거듭했던 “암비치오”라는 개념입니다.

 

아래는 정군쌤의 질문을 빙자(?)한 암비치오에 대한 “소개”입니다.

"에티카에서 암비치오(3부 정리 29) 개념의 핵심적인 내용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욕망인데, 이것은 정서 모방(3부 정리27)에서 한 번 더 진전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이것이 의식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통념적인 엠비션은 굉장히 의지적이고 의식적인 무언가인데, 지금 암비치오의 핵심은 오직 그 사람을 기쁘게 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리 30의 주석으로 가면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려고 하는 노력은 사실 암비치오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나오는 말들이, 인간들은 자신의 욕망을 다른 이도 따르기를 원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모든 갈등과 미움의 근원이 이 “암비치오” 안에 있다_라고 이야기합니다. 앞부분에서 암비치오는 사람 좋음과 다르지 않다_라고 얘기했는데, 이 사람 좋음이라는 게 갈등과 미움에 근원이 된다_라고 하는, 이렇게 대조가 딱 나타나는 게 지금 스피노자가, 이른바 이 책, 윤리학을 전개해 나갈 때 굉장히 중요하게 정초되는 개념 중에 하나겠구나_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의견들_

(요요샘) 암비치오는 다른 정서들과 달리,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상반된 정서들이 동시에 따라나올 수 있는 무엇이라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견1) 이 암비치오를 정서라고 보지 않으면 더 편할 것 같다. 이 코나투스의 결과가 기쁨일 수도 슬픔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의견2) 이러한 차원에서 암비치오는 일차정서인 욕망/기쁨/슬픔의 도식이랑 같다. 운운.

이쯤의 대화에서 요요샘은 기쁨의 정서(환희?)를 겪게 되셨죠. 쌤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저는" 절망을 동반한 경탄"의 정서를 겪었습니다. 한편 세미나 후기를 위해 복기하며 저는 이제야 (후기의_"부담"을 동반한) 환희의 정서를 겪습니다.

 

이쯤에서 유래 없이 늦어지고 길어질 것 같은 세미나 후기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간 세미나 범위를 한번(!) 읽기에 급급했던 제가 덕분에 추천해 주셨던 도서들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요요쌤이 수고로이 올려주시는 영상도 이번에는 몇 번을 들어 보며 소화되지 않던 것을 소화하는 기쁨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문득 참 요상하다는 생각을 거듭 했습니다. 이렇게 텍스트를 읽어내고자 함께 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각자 때론 재미가 없고, 때론 이해가 안되고, 때론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을 통과해가며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때론 이 후기의 압박을 등에 업고 말입니다.

댓글 8
  • 2023-07-05 09:09

    와우!! 세미나에서 오간 기쁨과 슬픔, 그리고 욕망에서 따라 나온 정서들의 향연이군요!!
    정중동샘의 후기를 통해 암비치오가 욕망계열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환희심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 기쁨과 함께 제게 기쁨을 준 세미나에 대한 사랑과 그 기쁨을 환기시켜 준 정중동샘에 대한 감사가 솟아오르는군요.
    3부 후기는 이렇게 쓰는 것이었구나!!하는 찬탄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 2023-07-05 10:10

    3부에서 나온 정서들을 세미나 구성원들의 심리 상태와 연결하신 게 인상적이네요.
    "3부 하니까 뭔 말인지 좀 알 것 같아서 읽을만 하다"(희망/기쁨) vs "1, 2부에서 괴로웠던 것보다 재미가 없는 게 낫지 않나?
    이들은 읽기 어려운 텍스트를 읽어야 뭔가 엔돌핀이 도는 분들이다."(미움?/슬픔). 이 부분이 특히 재미있습니다. ㅎㅎ
    저 역시 스피노자에 대한 사랑(?)과 매주 텍스트를 읽어내야 하는 괴로움으로 '마음의 동요'를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 2023-07-05 10:40

    결석한 제가 후기를 읽으니, 세미나에 참석한 듯 합니다. 암비치오가 어려웠거든요. 좋은 것같기도 하고 나쁜 것같기도 하고요. 영상을 보니 정군샘이 걱정말고 사랑해달라고 결론 내던데....에티카를 끝까정 읽어보고요. ㅎㅎ

  • 2023-07-05 11:22

    올해 새로 합류하신 샘들 넘 좋습니다.. 특히 정중동샘께서 의지와 능동에 대해 재차 의문을 제기하실 때 덕분에 저도, 그 시간에도, 끝나고 난 뒤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정중동샘께 재차 공감이 가면서 다시 스피노자를 향해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하는 억울함에 가까운 감정이 떠오르기도 해요 ㅋㅋ 후기 재미있게 읽었어요. 앞으로도 있을 요상한 시간들이 기대됩니다.

  • 2023-07-05 15:09

    후기를 거부하는 시도로 튜터를 경악게 하는 새로운 국면을 살짝 기대하기도 했는데, 아쉽(?)습니다. 세미나 녹화본을 다시 들여다본 흔적과 고생이 역력한 정중동 샘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3-07-05 18:07

    예전에 읽었을 때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스피노자에 매료되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또 다시 읽다보니... '그러면 이런 경우엔 어떻게 되는 거지'랄지, '경험 세계에서 겪는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생각을 더 진전시켜보면 사실 그런 문제들도 스피노자 안에서 다 대답이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드는 경우가 있어요. 오히려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되면 안 되는 것 아닌가'하는 기분이죠. 이번에 이렇게 읽고 또 몇 년 후에 (필히) 다시 읽게될 때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ㅎㅎㅎ 호수샘 말씀대로 새로 합류하신 선생님들 덕분에 세미나에 새 기운이 도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남은 세미나들도 동요 속에서 즐겁게 해나가면 좋겠어요

  • 2023-07-06 11:51

    각종 정서를 풍성하게 언급해주셔서 재밌네요~ 정서에 관한 세미나는 이렇게 정서적으로 쓰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샘들은 1,2 부처럼 좀 어려워야 엔돌핀이 도는 것 같다는 요요샘 말이 저도 무척 공감되고 재밌었습니다ㅋㅋ

  • 2023-07-06 16:03

    후기가 넘 멋지네요. 오늘 수업까지 다 마친 느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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