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기표적 기호체제는 주체화의 체제? (5/24)

뿔옹
2019-05-24 16:48
341

5고원 후반부에서는 기호체제의 4번째이자,

들/가가 가장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탈기표적 기호체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들/가는 탈기표적 기호체제를 한 마디로, 정념적 체제, 주체화의 체제라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탈기표를 주체화의 점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탈기표적 체제라는 것은 일단 기표적 기호체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표적 기호체제라는 것은 전제군주적 중심을 거점으로 만들어진 원과

그 주위를 둘러싸는 기호들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주체'란 따로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중심과의 관계만으로 파악되고 중심과의 거리로서 정의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난 기호다발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벗어남, 삐져나옴은 주로 정념적으로 이뤄진다.

사랑에 빠진 남녀를 보면 알 수 있다.

왕의 딸로 규정되어 있는 공주가, 상인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그 체제를 빠져나오는 경우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탈기표적=정념적=주체화의 체제!

그런데, 이렇게 탈기표화가 된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

어떤 '도망'이든, 어떤 방식으로의 '얼굴돌리기', 모든 '배반'을 주체화라고 할 수 있는가?

다른 방식으로 묻는다면, 모든 주체화가 다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

이층카페조에서는 이 질문의 초점이 잘못된것 같다고 결론내렸다.

즉 텍스트로만 보면, 어떤 도망/배반이든 주체화가 되는 것이 맞다고 여겨지지만,

들/가의 초점은 주체화가 이뤄지는 방식이 아주 '우연적'이라는 점인 듯 하다.

라라샘이 말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가 딱 이런 케이스인 것 같다.

주인공 멜깁슨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한 투사가 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영주가 행사하려는  초야권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 점에 멜깁슨에게는 주체화의 점이었고, 여기서부터는 전제군주적 기호체제로부터 벗어나

선형적인 주체화의 점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외로 나눴던 이야기는 도표(diagram)적 성분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것은 도표적이라고 말하는가? <천개의 고원>에서는 diagram을 도표로 번역했는데,

<노마디즘>에서 이진경은 이를 다이어그램적이라고 그대로 말하고 있다.

오늘은 추상기계를 다루지 않았지만,

들/가는 추상기계는 "실체가 아니라 질료에 의해 작동하며, 형식이 아니라 기능에 의해 작동한다."면서

매우 도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층카페조에서는 이에 대한 예로서 벤담/푸코가 말한 판옵티콘을 예로 들었다.

판옵티콘이라는 것이 바로 감옥이라는 표현의 형식이나 내용의 형식을 말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판옵티곤이라는 도표는 이 두 가지(표현(규율,감시,처벌)/내용(감시대, 벽, 보이지 않는 유리))를 한 번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잉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

기표적 기호체제가 주파수(빈도)라는 잉여를 갖는다면, 탈기표적 기호체제는 공명이라는 잉여를 갖는다는 정도까지.

(4장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게 좋을 것 같다.)

이층카페조에서 빠진 내용, 풀리지 않았던 내용들 댓글로 달아주시길.

다음주에는 7고원 0년 얼굴성입니다.

발제는 고은 & 지원!

댓글 3
  • 2019-05-28 10:38

     저도 추상기계의 다이어그램적인 것에 대하여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질 않는데, 판옵티콘의 예시는 무언가 이해의 여지를 주네요. 

  • 2019-05-30 08:33

    저는 주체화의 양상 안에 언표 행위의 주체가 발생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설명한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고대의 유대인들, 이른바 근대 철학 또는 기독교 철학, 그리고 19세기 정신의학은 단지 역사적인 구분이 아닙니다. 화행론은 여러 기호계들이 서로를 참조, 변형시키고 혼합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들/가는 주체화의 기호계가 유대인의 고대 역사 속에서도 발견될 뿐만 아니라 19세기 정신의학적 진단 속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각 기호체제 안에서 가능한 변형 외에 들/가가 도표적(다이어그램적) 변형이 있습니다.  이것이 추상적인 기계와 배치의 변형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암튼 기호체제의 변형이 중요한 것은 배치의 변형이 기호체제들로 나타나는 언표행위라는 배치물과 물체의 배치인 기계적 배치물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5장의 후반은 이 복잡한 관계에 관한 것인 것 같은데 추상적인 기계들, 도표 혹은 다이어그램, 탈지층화와 탈영토화와 같은 개념들은 다음 시간으로 미루어졌습니다.

    7장에서 그 어렵다는 얼굴성과 추상기계의 맥락을 조금이라도 파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2019-05-30 12:59

    지난번 성기현쌤의 들뢰즈 강의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의 하나가,

    폭력과 강요에 의한 비자발적 사유였습니다. <푸르스트와 기호들>을 인용해 중요한 것은 사유에 가해지는 폭력과 강요다. 그것들만이 미리 합의된 진리를 뛰어 넘어 예기치 못한 것, 새로운 것, 발생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준다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내 삶이 순조롭다면, 나는 문제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뭔가 불편한 것, ‘이건 아니지하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올라오는 것, 그것들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순간, 나는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들뢰즈는 사유에 가해지는 폭력과 강요라고 언어화, 개념화했습니다. 내 느낌과 감정, 경험의 그 막연한 불편함과 애매함을 이렇게 개념화 할 때, 제게는 뭔가 실마리가 생기고, 빛이 보이고, 해방감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렇게 버거울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작한 들뢰즈 공부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

    주체화의 점은 이런 폭력과 강요에 의해 우발적으로 의식과 정염이 폭발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브레이브 하트>의 멜 깁슨은 스코틀랜드의 독립이나 주체화의 점을 의식하고 반기를 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커플의 정염에 휩싸인 그가 자신의 연인을 폭력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우발적인 살인을 하게 되고, 그의 의식과 정염의 불길이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면서 독립항쟁이라는 사건을 만들어 갑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배치들과 탈주선, 즉 디아그람이 형성되어 갑니다. 비록 우발적으로 기표작용적 기호체제를 떠났지만 그것이 주체화의 탈 기표적 기호체제로 접어든 것이지요. 그러한 상대적 탈영토화의 과정 속에서도 그는 계속 새로운 생성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마침내 절대적 탈영토화의 길로 접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는 협상하러 온 잉글랜드의 왕세자비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커플의 정염적 검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는 않습니다. 그가 잡힌 후 거열형의 과정에서 더 이상의 고통은 없는 즉각적인 죽음을 조건으로 복종을 강요당할 때, 그는 바닥으로부터 끌어 모은 마지막 힘과 숨을 모아 크게 외칩니다. “FREEDOM”

    이 영화는 주체화의 점으로부터 탈주가 시작됐지만 마침내 그 주체화마저 벗어나는 절대적 탈영토화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62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5주차 질문들 (12)
정군 | 2023.08.23 | 조회 325
정군 2023.08.23 325
761
[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읽기 4주차 후기(2종지와 3종지) (7)
여울아 | 2023.08.22 | 조회 342
여울아 2023.08.22 342
760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4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8.16 | 조회 355
정군 2023.08.16 355
759
[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읽기 3주차 후기 (5)
봄날 | 2023.08.15 | 조회 376
봄날 2023.08.15 376
758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3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8.09 | 조회 391
정군 2023.08.09 391
757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2주차 후기- 정리37 세미나? (8)
세븐 | 2023.08.04 | 조회 425
세븐 2023.08.04 425
756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2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8.02 | 조회 380
정군 2023.08.02 380
755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1주차 후기_도의적 책임이란? (9)
호수 | 2023.07.29 | 조회 491
호수 2023.07.29 491
754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1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7.26 | 조회 568
정군 2023.07.26 568
753
'스피노자 vs 스토아학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4)
세븐 | 2023.07.25 | 조회 376
세븐 2023.07.25 376
752
2023 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읽기]2가 시작됩니다! (2)
정군 | 2023.07.10 | 조회 1446
정군 2023.07.10 1446
751
[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9주차 후기 (8)
김재선 | 2023.07.09 | 조회 488
김재선 2023.07.09 48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