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클래식 <전환을 위한 다른 상상> 3강 후기

토용
2021-09-22 12:08
392

문탁에서는 통과의례처럼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이번 금요클래식 강좌에서 하는 <증여론>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도 그 중 하나다.

처음 문탁에 왔을 때 사람들이 일리치, 모스, 나카자와 신이치 이런 사람들 얘기를 하는데 누군지 하나도 몰랐다. 그래서 문탁을 이해하고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를 사서 읽었었다. 1, 2권은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3권에 가서 탁! 막혔다. 그 책이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였다. 도대체 뭔 소린지....

문탁에서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아 일리치 세미나도 해본 적이 없다. 다행이 이번 기회에 모스와 신이치를 강의로 듣게 되어, 더군다나 뚜버기샘의 명강의를 듣게 되어 고마울 따름이다.

 

<증여론>의 선물 경제는 자발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의무적이다. 급부 체계가 경제영역 뿐만 아니라 정치, 종교 등 그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원리가 된다. 그런데 나카자와 신이치는 <증여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증여와 답례를 일종의 계약으로 해석함으로써 증여와 교환 사이의 구별을 없애버렸다”(강의안 3쪽)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동적 지성의 힘을 바탕으로 전체성으로서의 경제를 모색한다.

증여, 교환에 나카자와는 순수증여라는 창조적인 개념을 가져온다. 증여만으로도 충분히 교환의 한계를 넘는 다른 상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순수증여라니... 더군다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것이 틀림없는 힘이라고 한다. 증여와 교환의 고리 밖에서 순간 나타나는 순수 증여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지난주에 독일에 사는 딸이 이사를 했다. 독일 집은 우리처럼 도어락이 없고 대부분 열쇠로 문을 연다. 그런데 딸이 실수로 열쇠를 문 안에 꽂아둔 채 문을 닫아버렸다. 문을 따주는 사람이 와서 금세 문은 열었는데 비용으로 150유로(약 20만원)를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그 때 아랫집 할머니께서 그 돈을 대신 내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사선물이라면서 절대 돈을 갚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다. 순간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교환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기에). 문이 잠겨 당황하고 있을 때 아랫집 할머니, 옆집 언니 모두 나와 사람을 부르고 비용을 깎는 도움을 준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20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선뜻 막 이사 온 이웃에게 선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물론 딸이 이 때 처음 그 할머니를 본 날은 아니었다. 그 며칠 전에 할머니에게 세탁실 사용법을 물어보다 50분 동안 얘기를 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세상은 교환관계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순수증여가 침투할 때 나타나는 풍요로운 증식, 코르누코피아의 현장을 경험했다.

댓글 2
  • 2021-09-23 16:14

    강의내용을 현장에서 경험하는 멋진 일이 일어났군요

    문정이가 복이 많은가봐요^^

  • 2021-09-23 16:52

    사례로 접하니, 순수증여가 생생하게 느껴져요.
    잊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 내 주위에서도 일어났던 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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