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습니다 ⑭] 1940년, 폴란드 남쪽의 기억 - 아트 슈피겔만, 『쥐』

차명식
2019-03-15 00:14
577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⑭

 

1940년, 폴란드 남쪽의 기억

아트 슈피겔만, 『쥐

 

 

 

 

프로필 2.jpg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되었고 수업도 그 해의 마지막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상.

 

  봄에는 ‘학교’였다. 여름에는 ‘집’이었다. 가을에는 ‘마을’을 하고, 겨울에는 ‘세상’. 처음부터 그렇게 네 가지 주제를 정하고 그 해의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 익숙한 관계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깨어있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했기에 집보다도 학교를 먼저 놓았다. 익숙하다 여길 테지만 실은 턱없이 낯설 ‘집’이 두 번째였다. 늘 거닐면서도 지각 밖에 있을 ‘마을’은 그 다음이었다. ‘세상’은 마지막이었다.

 

  앞의 주제들을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시즌을 시작할 때에도 나는 어떤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에게서 가장 멀게 느낄 이야기일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우리조차도 자신의 이야기로 느끼기 힘들 테마들 - 역사와 정치. 이것들은 매일 같이 드나드는 학교나 집 이야기와도 다르고 단지 지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리 멀지는 않은 마을과도 다르다. 세상이라 하는 것은 한 번 낯설게 느끼기 시작하면 끝없이 낯설어질 수 있다. 타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그건 그쪽 사정이죠.”라는 의미로. 혹은 “그렇군요. 뭐 당신이 그렇다면야…….”란 의미로, 그리고 어쩌면 또 달라질 수도 있는 의미로.

 

  나의 두려움은 아이들이 그러한 반응을 보이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녀석들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래서요?’하고 되묻는다면 어쩌지. 혹은 ‘뭐 그렇다면야’ 하고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면 어쩌지. 나름대로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올 수 있게 했다고 믿었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여전히 녀석들에게 낯설기만 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겨울의 첫 번째 책으로 만화책인 『쥐』를 고른 데에는, 그러한 까닭도 조금은 더해져 있었다.

 

 

 

  2.

 

  내가 중학생일 때에는 학교 도서실이나 공공 도서관이 지금보다도 훨씬 만화책에 관대하지 못했다. 『원피스』나 『드래곤볼』 같은 만화책은 물론이고 학습만화조차도 흔치 않았다. 사실 학습만화 붐이 아직 일지 않았을 때이기도 하고, 만화책을 보려면 대여점엘 가지 도서관으로 가진 않는 때이기도 했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이 무언가 하면, 그런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꼭 두 종류 정도의 만화책은 도서실이든 도서관이든 꼭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나카자와 케이지의 『맨발의 겐』이었고 다른 하나가 아트 슈피겔만의 『쥐』였다. 앞의 것은 패전 후의 일본을, 뒤의 것은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를 다룬다. 공교롭게도 양쪽 다 2차 대전의 상흔을 되새기고 있다. 정확히는 후벼 파고 있다. (아트 슈피겔만은 『맨발의 겐』 영문판에 추천사를 썼다)

 

  나는 아버지가 직장 서점에서 『쥐』를 처음 사다주었을 때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아이들을 둘러봤다. 우선 늘 하던 질문부터 시작했다.

 

  “물론 책은 다 읽어왔지?”

 

  과연, 녀석들의 눈빛에 평소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역시 책을 읽는 수업에서 만화책의 힘이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다. 나는 좀 더 기대하며 물었다.

 

  “그래서, 어땠니?”
  “잔인했어요.”
  “끔찍했어요.”

 

  다양한 장면들이 차례차례 나왔다. 하루아침에 폴란드에 들이닥친 독일인들, 그들의 추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은신처를 만들고 숨어드는 유태인들, 그럼에도 피할 수 없었던 아우슈비츠행, 처참한 수용소의 나날들과 마지막까지도 방심할 수 없었던 최후의 도주……. 나는 열띠게 장면들을 짚어내는 녀석들을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었다. 『쥐』는 유태인은 쥐, 독일인은 고양이, 폴란드인은 돼지 등 등장인물을 의인화된 동물로 그려내지만 그럼에도 극도로 세밀한 디테일들이 그 모든 이야기들을 너무나 생생하게 만든다. 이 책은 작가 아트 슈피겔만이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을 인터뷰하여 만든 것인데 그에 힘입어 보통은 그냥 넘어가는 작은 부분들까지 놓치지 않고 치밀하게 묘사해 놓았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책들을 많지만 자기가 만든 은신처의 구조나 수용소 음식들의 구성, 아우슈비츠에서 살기 위해 만들었던 연줄들까지 묘사하는 책은 흔치 않다.

 

  바로 그 디테일 덕분에 아이들은 쉽게 책에 몰입할 수 있었던 듯 했다. 다들 주인공 블라덱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그가 맞닥뜨렸던 참상에 대해 한껏 빠져들어 이야기를 했다.
  한참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문득 누군가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 차 태워주는 장면이요.”
  “차 태워주는 장면?”
  “흑인이 차 태워달라고 하는 장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처음 『쥐』를 읽었을 때도 깊은 인상을 받았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아버지 블라덱을 인터뷰할 때 있었던 일을 그린 장면인데, 작가가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히치하이킹을 하던 흑인 한 사람을 태우게 된다. 헌데 아버지는 흑인들은 모두 도둑놈이라며 내내 폴란드어로(흑인이 알아들을 수 없게) 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를 목적지에 내려준 후 동승하고 있던 작가의 아내는 분노를 터뜨린다. “아니, 어떻게 홀로코스트를 겪은 아버님이 인종차별을 할 수 있어요?!” 아버지는 받아친다. “검둥이는 유태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질문을 한 아이는 작가의 아내와 똑같은 물음을 되풀이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도 그런 일을 겪었으면서…….”

 

  왜 그랬을까.

  열띠게 이야기를 하던 다른 아이들도 말문이 막힌 듯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몇 가지 대답들을 떠올렸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다만 잠자코 기다렸다.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손꼽히게 참혹한 인종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어떻게 인종차별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대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다들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말로 대답을 찾는 게 쉽지 않은 듯 했다.

 

  그 때, 또 다른 녀석이 침묵을 깼다.

 

  “저는 ‘카포’의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카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중간관리자들 - 『쥐』에서는 주로 폴란드인들로 등장한다 – 이다. 수용소의 죄수이기는 하나 유태인은 아니기에 간수 노릇을 하는 자들.
  녀석의 말이 이어졌다.

 

  “나치는 그렇다 치고 카포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렇게 엄청나게 사람들이 죽는데, 중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유태인들을 감시하고 때리고……아무 것도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는 것처럼……또 그 때 독일 사람들은 뭘 했어요……? 독일 사람들 중 아무도 이런 일을 문제라도 느끼지 않은 거예요? 그냥 자기네 정부가 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한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이번에도 몇 가지 대답들을 떠올렸지만 잠자코 있었다. 아이들은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자기 생각에 잠긴 녀석도 있고 눈치를 보는 녀석도 있었다. 이번에도 대답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러한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 또한 분명히 중요한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까.

 

  바로, 『쥐』와 같은 텍스트를 읽고 녀석들이 던진 것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
  그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3.

 

  『쥐』는 분명한 역사 텍스트다. 다만 전지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역사이다. 아득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한 사람 개인의 기억으로 읽어내고자 하는 텍스트이다.
 

  이러한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는 역사책을 볼 때보다 훨씬 더 가깝게 한 사건을, 한 시대를 체감할 수 있다. 사건에 맞닥뜨린 주인공의 감정과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그 역사적 사건의 일부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우리가 역사라 부르는 것이 개인들과 유리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그 개인들과 연결되어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러한 텍스트들을 읽는 의의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개인의 시선에 마냥 파묻혀서는 안 된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도 그런 일을 겪었으면서…….”

 

  한참동안 블라덱 슈피겔만의 이야기를 따라 들어가던 우리는, 작가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묘사하는 장면들에서 순간순간 멈칫거린다. 작가는 아버지 자신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작가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의 모습 또한 여과 없이 그려낸다. 아우슈비츠의 기억은 블라덱 슈피겔만에게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수용소에서의 물질적 곤궁은 블라덱으로 하여금 하잘 것 없는 물건 하나, 동전 한 푼에도 병적으로 집착하게 했고, 몇 번이고 당했던 배신은 그로 하여금 주변의 모든 이들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평온의 시대에도 언제나 위험을 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의 신념 속에서 자신이 홀로코스트를 겪었다는 사실과 ‘검둥이의 도둑질’을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은 충돌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극히 당연한 삶의 교훈이자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순간 우리는 블라덱의 이야기 궤도에서 한 발짝 물러선다. 그가 되어 그의 눈을 통해 1940년 폴란드 남부에서 일어난 그 참상을 응시하다가, 한 발짝 물러나 그의 뒤통수를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는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됐을까? 그 기억들은 어떻게 그를 바꾸어 놓은 것일까? 그 기억이란 그에게 대체 무얼까?
  그건 – 아우슈비츠는 그들에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그 위로 또 다른 질문이 던져진다.

 

  “나치는 그렇다 치고 카포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이 질문을 던진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에게는 이 질문을 던져할 이유가 있었다. 그 아이는 이전에 학교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사건들을 목도한 경험이 있었고, 봄 시즌 ‘학교’부터 꾸준히 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그 아이가 ‘카포’와 ‘독일 사람들’에 대해 물었을 때 사실 그것은 그 때 부당한 사건들에 대하여 무심히 지나쳤던 ‘선생님들’과 ‘친구, 선배들’에 대하여 물은 것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 순간 그 녀석은 이미 ‘나에게 아우슈비츠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4.

 

  이 날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아이들에게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를 다룬 몇 가지 텍스트들을 더 전해주었다. 『쉰들러리스트』, 『피아니스트』, 『비밀일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매우 어려운 책이기에 이것만은 직접 읽지 말고 네이버에서 찾아보라고만 했다) 등등.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유대계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였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질문은, 우리 모두의 질문이다. 또한 우리 모두가 던져야 할 질문, 우리 모두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역사와 정치, 아득히 멀어보는 이야기들이 학교, 집, 마을과 마찬가지로 나와 맞닿아 있음을 말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질문들이 던져져야 한다.

 

  그것을 되새기면서 나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로 했다.

댓글 4
  • 2019-03-15 19:37

    사람들이...어떻게 그럴수 있죠?

    이 질문을 따라가며 머리 속으로는 답을 찾아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게 되는 나를 발견하는군요. 

    도대체 왜 그럴까요? 

    고차원의 질문을 요약적으로 풀어내는 솜씨에 감탄하는 정도로 멈춥니다. 대신 이 질문은 계속 가져가야겠네요. 잘 읽었어요^^

  • 2019-03-16 00:45

    아주

    아주

    아주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19-03-16 10:14

    늘 생각을 좀더 하게 만들어주는 글.. 

    잘 읽었어요..

  • 2019-03-17 09:33

    명식샘 글을 읽다보면 아이들의 이야기가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우리도 아이들처럼 느끼고 질문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굼떠서 쉽지 않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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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얽거나 짜서 만드는 방법   “개인들을 이런저런 속성이 부착되는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는 원자론적 인간관은 개인적 정체성들과 여러 능력들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점에서 사회적 과정들과 관계들의 산물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 『차이의 정치와 정의』     목공 반장님이 타카 핀을 갈아 끼우다가 집어던지면서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이 형, 그렇게 성격대로 할 거면 여기 왜 왔어! 그럴 거면 직접 일 받아 해!”   ‘이 형’이라는 분도 성격이 만만찮다. “어 알았다 그래!” 하고선 작업벨트를 풀어놓고 현장에서 ‘휙’하고 나가버린다.   당황한 내가 이 형을 따라 나가려는데 반장님이 나한테도 버럭 한다. “김 실장! 내버려 둬. 내가 혼자 끝내면 되니까 가는 사람 잡지 마!” 고래 싸움에 기가 눌린 새우 실장은 현장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혹여 등이 터질까 잠자코 반장님 말을 듣는다.   버럭 반장님   지난 3년 동안 함께 일하던 목공 반장님이 최근 많이 바빠져서 이번 현장을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나는 주변 작업자 분들에게 수소문해 새로운 목공 반장님을 소개받았다. 최근에서야 함께 일을 하게 된 이 ‘버럭 반장님’은 보기 드문 목수다. 한옥으로 시작해 가구공장에서도 오랜 기간 일했고, 목공으로 할 수 있는 갖은 일들은 두루 해본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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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봄날
2020.09.24 | 조회 864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자누리
2020.09.22 | 조회 464
지난 연재 읽기 고은의 걸헤이 유고걸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말은 잘해도 못해도 문제      내 친구 중 나와 가장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이는 중학교 동창 A다. A를 만나면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구겨진 병뚜껑을 가지고도 10분을 웃는다. 물론 웃음기 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종종 A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내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고, 값이 나가는 작고 귀여운 가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질척거리는 공동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에 감정이입 할 때면 A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속초 영랑정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나와 A        한편으로 내 말이 A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내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던 때였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 다를수록 나의 말은 상대를 빗겨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말을 잘한 날이면 나는 종종 집에서 샤워를 하며 후회했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겉치레뿐이지 않았나? 말에 인플레이션이 생긴 것 같았다.    ...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말은 잘해도 못해도 문제      내 친구 중 나와 가장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이는 중학교 동창 A다. A를 만나면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구겨진 병뚜껑을 가지고도 10분을 웃는다. 물론 웃음기 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종종 A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내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고, 값이 나가는 작고 귀여운 가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질척거리는 공동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에 감정이입 할 때면 A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속초 영랑정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나와 A        한편으로 내 말이 A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내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던 때였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 다를수록 나의 말은 상대를 빗겨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말을 잘한 날이면 나는 종종 집에서 샤워를 하며 후회했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겉치레뿐이지 않았나? 말에 인플레이션이 생긴 것 같았다.    ...
고은
2020.09.21 | 조회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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