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과 청년 #7 | '청년 루쉰', 그리고 '청년과 루쉰' (1)

문탁
2019-03-08 19:37
611

‘청년 루쉰’, 그리고 ‘청년과 루쉰’ (1)

 

 

 

1. 청년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문탁에서 공부하다 아이 낳고 독박육아를 경험한 후 페미니스트 맘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 늘 딱했고, 한편으로 기특했고, 언제나 응원하는 마음이었는데 얼마 전 그 후배로부터 한 소리를 들었다. 자기 세대들이 이렇게 힘들어 진 것은 나 같은 선배들이 가부장제와 제대로 싸우지 않고 적당히 타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노라고, 이 부당한 현실을 절대, 절대 좌시하지 않고 계속 투쟁하겠다고도 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뭣이라? 싸우질 않았다고? 아니 내가 얼마나 전투적인 페미니스트였는데... 운동권 내에서 계급 이슈를 넘어 젠더 이슈를 처음 제기한 것도,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실험한 것도, 여성들 간의 연대를 위해 물심양면, 불철주야 발로 뛴 것도 우리 세대였는데.... 그런데 우리가 싸우지 않았다고?

 

하지만 난 속에서 우글거리던 이 모든 말들을 그냥 꿀꺽 삼켜 버렸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말야 ~~”라고 입을 떼는 순간, 자신들이 젊었을 때는 청춘을 다 바쳐 산업화를 일구었다고 말하는, 심지어 그러면서 태극기를 흔드는 우리 부모 세대와 별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그 말들, 약간은 억울한 그 속내를 우리끼리 모여서 뱉어내고 풀어낸다. 얼마 전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 모임에서 나는 무슨 대단한 봉변이나 당한 냥 앞의 이야기를 토로했고, NGO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친구 한명은 젊은 간사와 소통하는 게 너무 힘들어 병까지 날 지경이라고 했다. 그날 우리의 주요 화제는 ‘요즘 것들’에 대한 뒷담화였다.^^ 혹시 그날 우리는 민주화(세대) 꼰대였을까?

 

민주화(세대) 꼰대가 산업화(세대) 꼰대 못지않게 젊은이들 사이에서 냉소와 경멸의 대상이 된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난 그런 민주화(세대) 꼰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런 말이 듣기 싫으면 청년에 대해서 관심을 딱, 끊으면 되는데(그러고도 세상에는 할 일이 많다^^) 나는 끊임없이 청년들에게 이러저런 제안을 하고, 청년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고, 심지어 지금처럼 루쉰과 청년이라는 주제로 뭔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말은 누구를 향하는 것일까? 나는 왜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청년들에게 말을 거는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그들의 말을 듣기보다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말은 혹시 남자가 여자들에게 하는 멘스플레인( (mansplain: 남성을 뜻하는 man과 설명하다의 explain의 합성어. 레베카 솔닛의 책 제목이기도 한데 국내에는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든다>로 번역되었다.)처럼 어른이 청년들에게 하는 꼰대스플레인은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청년이 아니라 청년에 대해 말하는 나 자신에 대해, 내가 발화하는 자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동시에 점점 더 청년을(에 대해) 말한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2. <청년 링컨>

 

<청년 링컨 Young Lincoln>이라는 흑백영화가 있다. 서부극의 대가 존 포드 감독의 1939년 작인데 내가 무척 사랑하는 영화이다. 물론 그 이유는 백가지도 넘지만 지금 여기서 주목하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그것이 링컨의 청년시절이 아니라 청년 링컨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링컨>은 우리가 아는 익숙한 영웅 링컨의 젊은 시절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청년 링컨은 위대한 링컨으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가 아니다. 어쩌면 그는 ‘위대한 대통령’같은 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링컨은 진짜로 ‘위대한 대통령’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또 ‘진짜’란 뭔가? 스필버그의 <링컨>은 혹시 이 질문 아니었을까?) 영화 초반부에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죽은 애인(그 애인이 링컨에게 늘 도시로 나가 변호사가 되라고 말을 했었다) 의 무덤 앞에서 막대기를 꼽아 자신의 미래를 점치는 장면이다. “내 쪽으로 넘어지면 마을에 남고, 네 쪽으로 넘어지면 법 쪽으로 갈게” 나뭇가지는 묘비 쪽으로 넘어진다. 청년 링컨은 중얼거린다. “네가 이겼으니 법을 공부할게” 그러나 곧이어 “내가 네 쪽으로 살짝 민 걸까?”라고 자문한다. 영화에서 막대기가 죽은 애인 쪽으로 넘어간 운명은 “내가 네 쪽으로 살짝 밀었”을 지도 모를 의지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운명과 의지가 구별되지 않는 영화 처음 부분의 그 장면은 영화 내내 지속되는 모호하고 느리고 침울한 링컨에 달아 붙어있다.

 

 

 

“<젊은 날의 링컨>은 불가사의한 영화다. 앞에서 ‘표현주의적’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영웅설화를 구성하는 극적 사건과 결단의 행위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사건과 행위에 포섭되지 않는 일화와 농담들, 표정과 몸짓들, 기운과 예감들, 그리고 빛과 음영과 풍경들로 가득하다.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이 잉여들이다. 반복해서 보면, 이 영화는 선형적으로 전개되기를 끝없이 망설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달리 말하면, 잉여들이 살아 움직이며 극적 사건들의 전개를 끝없이 교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고전영화와 모던영화가 이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은밀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젊은 날의 링컨>은 소명과 의지의 송가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훼손하거나 따돌리는 오점과 얼룩들의 난장이며, 그들 모두를 응시하는 어머니의 음성과 죽음과 풍경의 노래다. 그들의 소란스런 화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신화와 전설은 진리의 언명에 순종하는 정태(靜態)의 구조이지만, <젊은 날의 링컨>은 흐르고 번잡하고 활동하는 삶의 시학이다.” (허문영, <젊은 날의 링컨>에서 출발하다, http://www.kmdb.or.kr/story/6/4)

 

 

 

이 영화 안에서 노예해방의 영웅,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 속의 링컨은 없다. 영화 속의 링컨은 언변에 능하되 만담가에 가깝고, 몸을 쓰는데 능하되 반칙을 서슴치 않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인 살인사건의 법정장면. 피고를 변호하는 링컨은 치밀하고 논리적이고 사명에 넘친다기보다는 시종 딴 짓을 일삼는 듯 보이고 다소 능청스럽거나 건방져 보인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 하지만 그는 대중들의 환호에 당황한다. 그리고 승리를 구가하는 대신 예의 그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홀로 걷는 길을 택한다. 날씨는 잔뜩 찌푸렸고 바람은 불고 심지어 천둥까지 친다. 그 길을, 끝없는 울타리 옆의 길을, 청년 링컨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걷고 걸어 결국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물론 우리는 그 다음의 역사적 전개를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의 주인공은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매 순간 맞닥뜨리는 사건은 스스로 불러들인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불려간 것인지 모호하다. 다음 사건이 앞의 사건과 인과가 있는 지 없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청년 링컨은 기꺼이, 주저하며 그 사건(운명)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살아낸다. 거기에는 “흐르고 번잡하고 활동하는 삶”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하여 <청년 링컨>은 드러나고 쓰인 링컨의, 드러나지 않고 쓰이지 않은 이면이고 공백이며, 결코 언표될 수 없는 삶 그 자체이다.

 

 

 

3. 청년 루쉰

 

청년 루쉰을 <청년 링컨>처럼 쓸 수 있을까? 바라는 바이지만, 글쎄다.

 

 

루쉰은 몰락한 가문의 장손이었고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부터 가장의 역할을 떠맡았다. 전당포를 드나들면서 집안의 가재도구를 팔아 겨우 겨우 부양했던 병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비로소 자신의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열여덟 루쉰, 그는 진저리치듯 고향을 떠나 중체서용, 실학의 기치를 걸고 만들어진 ‘강남수사학당’이라는 일종의 해군양성학교에 진학한다. 그러나 그곳은 물과 배에 대해 가르치기 보다는 여전히 군자와 효도에 대해 가르쳤고, 학교의 운영 역시 연줄과 관료주의에 의해 움직였다. 결국 그곳을 그만두고 이번엔 ‘광무철로학당’이라는 곳에 진학했다. 드디어 신학문을 배우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곳은 곧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무성한 곳이었다.

 

한편, 도망치듯 고향 샤오싱을 떠난 루쉰은 과연 선장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광산개발에 관심이 있었던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중국의 몰락을 목도하면서 사서삼경이 아니라 격치, 수학, 지리, 역사, 제도, 체조 등의 신학문을 배우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중간에 과거시험은 왜 본 것일까?

 

어떤 것도 명료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사후적으로 종합할 수 없다. 루쉰은 다만 길을 나섰고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여전히 서성거리고 있는 중이었을 뿐. 그리고 그렇게 일본까지 간다. 도쿄 – 센다이. 어느새 스물 넷의 청년 루쉰은 센다이 의전에 머물고 있다. 후지노 선생을 만나고 그 유명한 ‘환등기 사건’이후 센다이를 때려 치고 도쿄로 나와 ‘문예운동’을 해야겠다고 맘을 먹는다. 스물 여섯이었다. 그러나 모처럼 – 나는 이 때가 루쉰의 생애에서 아주 드문, 거의 유일하게 파이팅 넘치는 때였다고 생각한다 – 마음 먹은 잡지 발간은 수포로 돌아가고, 전족을 한 여인과 구식 결혼을 하게 되고, 몇 가지 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기개 넘치는 몇 편의 논문을 쓰기도 하지만 결국 (어떤 점에서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귀국했다. 그는 새로운 세계에 속한 신청년–개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낡은 세계에 속한 한 가문의 종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루쉰은 귀국 후 깊은 적막에 빠진다. 그리고 후에 자신은 그 적막을 떨쳐버리기 위해 미쳐 날뛰는 영혼을 달래기 위해 “나를 국민들 속에 가라앉히기도 했고 나를 고대로 돌려보내기도”하면서 끊임없이 영혼을 마취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루쉰에게 한 친구가 찾아와서 글을 청탁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철방의 비유!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게.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무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그렇다. 비록 내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희망을 말하는 데야 차마 그걸 말살할 수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 소관이고 절대 없다는 내 증명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도 글이라는 걸 한번 써 보겠노라 대답했다.” (1922, <외침> 서문, 전집2권)

 

 

루쉰은 희망과 낙관에 결의에 불타오르는 ‘신청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눈을 뜨면 빛이 아니라 반대로 어둠이 도래한다는 삶의 역설, 반-계몽의 구도를 깊이 이해했던 인물이었다. 삶은 희망으로도 절망으로도 의미화되지 않는다. 다만 의도, 의미, 표상을 넘어서 있을 뿐이다.

 

그는 눙치면서 혹은 에둘러 자신의 글은 친구들을 응원하기 위한 ‘외침’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루쉰이 그 순간 찾은 삶의 출구였다고 생각한다. 열여덟에 고향샤오싱을 떠난 일, 다시 도쿄로 유학을 떠난 일, 단발을 감행한 일, 도쿄에서 다시 센다이 의전으로 방향을 바꾼 일, 계몽적 파토스가 가득한 논문을 썼던 일, 베이징에서 직장생활을 버티기 위해 하루하루 고문을 베끼고 비석을 탁본했던 일, 그 모든 것은 마침내 <광인일기>를 쓰기 위했던 것이 결코 아니다. <광인일기>를 쓴 일 역시 앞의 다른 일처럼 더 의미 있는 것도 의미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앞의 것들처럼 루쉰이 찾은 ‘다른’ 출구였을 뿐이다.

 

청년 루쉰. 그는 삶에는 정답 따위가 없지만 최선을 다해 답을 찾는 것 말고는 다른 삶의 방법은 없다는 것 또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도 모르고 우리도 모른다. 그래서 그도 우리도 다만 있는 힘을 다해 걸을 뿐이다.

 

 

 

 

 

 

----------------------------------다음 회에 아래로 소제목으로 이어집니다.

4. 청년‘과’ 루쉰

5. 청년과 연대한다는 것

댓글 1
  • 2019-03-11 10:02

    음...요즘 고민이 '왜 나는 내가 계획한 것과 반대로 행동하게되는가'인데..그것까지도 제가 계획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지난 연재 읽기 지원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얽거나 짜서 만드는 방법   “개인들을 이런저런 속성이 부착되는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는 원자론적 인간관은 개인적 정체성들과 여러 능력들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점에서 사회적 과정들과 관계들의 산물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 『차이의 정치와 정의』     목공 반장님이 타카 핀을 갈아 끼우다가 집어던지면서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이 형, 그렇게 성격대로 할 거면 여기 왜 왔어! 그럴 거면 직접 일 받아 해!”   ‘이 형’이라는 분도 성격이 만만찮다. “어 알았다 그래!” 하고선 작업벨트를 풀어놓고 현장에서 ‘휙’하고 나가버린다.   당황한 내가 이 형을 따라 나가려는데 반장님이 나한테도 버럭 한다. “김 실장! 내버려 둬. 내가 혼자 끝내면 되니까 가는 사람 잡지 마!” 고래 싸움에 기가 눌린 새우 실장은 현장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혹여 등이 터질까 잠자코 반장님 말을 듣는다.   버럭 반장님   지난 3년 동안 함께 일하던 목공 반장님이 최근 많이 바빠져서 이번 현장을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나는 주변 작업자 분들에게 수소문해 새로운 목공 반장님을 소개받았다. 최근에서야 함께 일을 하게 된 이 ‘버럭 반장님’은 보기 드문 목수다. 한옥으로 시작해 가구공장에서도 오랜 기간 일했고, 목공으로 할 수 있는 갖은 일들은 두루 해본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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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2 | 조회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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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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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0.09.24 | 조회 863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자누리
2020.09.22 | 조회 464
지난 연재 읽기 고은의 걸헤이 유고걸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말은 잘해도 못해도 문제      내 친구 중 나와 가장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이는 중학교 동창 A다. A를 만나면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구겨진 병뚜껑을 가지고도 10분을 웃는다. 물론 웃음기 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종종 A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내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고, 값이 나가는 작고 귀여운 가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질척거리는 공동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에 감정이입 할 때면 A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속초 영랑정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나와 A        한편으로 내 말이 A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내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던 때였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 다를수록 나의 말은 상대를 빗겨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말을 잘한 날이면 나는 종종 집에서 샤워를 하며 후회했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겉치레뿐이지 않았나? 말에 인플레이션이 생긴 것 같았다.    ...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말은 잘해도 못해도 문제      내 친구 중 나와 가장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이는 중학교 동창 A다. A를 만나면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구겨진 병뚜껑을 가지고도 10분을 웃는다. 물론 웃음기 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종종 A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내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고, 값이 나가는 작고 귀여운 가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질척거리는 공동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에 감정이입 할 때면 A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속초 영랑정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나와 A        한편으로 내 말이 A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내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던 때였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 다를수록 나의 말은 상대를 빗겨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말을 잘한 날이면 나는 종종 집에서 샤워를 하며 후회했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겉치레뿐이지 않았나? 말에 인플레이션이 생긴 것 같았다.    ...
고은
2020.09.21 | 조회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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