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고원> 3강 후기

반얀나무
2013-08-25 13:01
888

 

<천의 고원> 3강의 주제는 ‘기관없는 신체와 道’였다

채운 선생님은 강의의 시작을 동양 성인들의 오감에 얽매이지 않는 인식과 어린아이들의 인식에 대한 이야기로 열었다.

‘기관없는 신체’와 동양철학?

동양철학과의 접속을 보여주실래나 싶어 나로선 호기심이 일었다.

아니나다를까, 채운 선생님의 ‘기관없는 신체’는 동양철학과 접속한 결과물이었다. 나로선 강의 전까지 ‘기관없는 신체’와 관련해 갖고 있던 이미지는, 대략 생물학에서 말하는 ‘배아’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쏠라리스>에 나오는 ‘에너지로 들끓는 바다’ 정도였다. 그리고 동양철학과 관련해서는 ‘太虛’의 이미지 정도.

채운 선생님은 여기서 더 밀고 들어가 ‘道’ ‘無’ ‘虛’ 불교의 ‘空’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기관없는 신체’의 개념이 아르또에게서 비롯되고, 그가 <도덕경>에서 영향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개념들과의 연결이 그리 특이할 게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피상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영민한 사람이 시간을 두고 곱씹은 결과물이라면 얘기는 좀 다르겠다 싶어 흥미를 갖고 들었다.


강의는 크게 3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져 진행됐고, 첫 단락은 ‘기관없는 신체’, CsO가 지층화 이전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란 설명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공자와 노자의 대립을 지층화란 문제와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가 당시의 지층화된 흐름과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려 했지만 그가 주장한 ‘禮’란 것이 노자가 보기에 코드화된 지층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동양철학에 대한 내 이해가 천박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라 엉터리일 수 있겠지만 아무튼 강의는 계속 뭔가 자극을 해 왔다. 채운 선생의 강의는 쉽게 전달하지만, 전달에만 치우치지 않고 자신이 질문해 들어가는 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사유를 촉발했다.


두 번째 단락은 아르토가 ‘기관없는 신체’를 발견하는 과정과 그것을 연극에 도입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었다. 말하자면 이론적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 여겨져 편하게 들었다.


나로선 가장 흥미로운 게 세 번째 단락의 이야기였다.

주제는 ‘기관없는 신체와 신중함의 기예’

들/가의 정치적 실천과 관련한 관점을 가장 잘 엿볼수 있는 대목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들/가 는 시몽동의 말처럼 생성을 존재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생성론자다.

이 대목에서도 채운 선생은 물이 얼음과 수증기로 변하는 상전이(相轉移)를 설명하며 오행개념의 유용성에 대해 말했다. 말하자면 개체화된 것은 前 개체적인 것으로부터 야기된, 부분적으로 결정된 존재의 한 양상이란 것이다.(이 대목에서 주역의 궤를 그려 보여주시기도...)

이 이야기는 결국 모든 지층에는 탈영토화, 탈코드화의 여백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관점에 서면 들/가 가 CsO란 개념으로 최종적으로 가리키는 지점이 보인다. CsO가 유기체에 반하는 것이란 말의 의미 또한 분명해진다. 코드화, 지층화의 흐름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동시에 항상 조직화되지 않고 끈질기게 잔류하는 힘이 있다고 들/가는 보는 것이다. 지층화란 결국 언재나 내재하는 혼효면混淆面(plan de consistance)위에서 이루어진 부산물이자 집약이 되는 것이다. (혼효면과 관련해서도 채운 선생은 <장자>의 제물을 언급했다.)

 이런 예를 우리는 쉽게 우울증의 몸체, 편집증의 몸체, 분열자의 몸체, 마약을 한 몸체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잡한 CsO다.

심지어 파시즘의 순결체 같은 암적인 CsO도 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긍정적 생산성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CsO가 가진 욕망, 즉 생산성을 인식하고 신중하게 지층의 흐름을 살피면서 탈주선을 모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주변에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의 작동 양상을 살피고, 자본주의와 국가를 새롭게 사유하며 실험하는 것. 부정적 체제와 흐름에 구멍을 내는 것일 것이다.


* 개인적으로 이번 CsO와 관련한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안빈낙도(安貧樂道)에 대해 ‘가난 가운데 누리는 행복’ 정도로 이해해 오던 것을 ‘어떤 상황 속에서도 행복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란 해석을 들은 것.(채운 선생은 이것을 공자와 안회의 ‘내재성immanence의 평면, CsO라 불렀다.)

이 말은 돌아오는 내내, 내 속에서 많은 사유를 촉발시켰다. 감사드린다.





댓글 1
  • 2013-08-26 13:43

    집안일로 시골 가느라 결석했는데..

    후기를 읽으니.. 하루의 결석이 무지 아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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