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공방> 근사록의 별책부록

세콰이어
2017-08-04 13:52
187

<근사록집해>는 <대학>에서 다루는 내용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1장부터 도의 본체를 논해서 읽는 사람의 기를 죽이지만 2권부터 10권은 <대학>의 8조목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11권과 12권은 교육과 경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이자 한편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교육>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교육>의 핵심은 무엇일까?

토용샘은 '스스로'에 방점을 두었다. "스스로 惡을 고쳐서 중용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이 책에서는 교육의 목표를 밝힌다.

스스로가 목표일까, 중용에 이르는 것이 목표일까?

결론은 둘다가 아닐까?

유가에서의 교육(혹은 공부)은 관직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유가 교육의 중요한 전제는 "성인의 道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성인의 도를 가르치고 배워서 성인이 되는 것이 최대의 목표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구하고 얻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부터 스스로 구하고 얻을 수는 없기 때문에

자득하는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 스승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스승이 되려는 자의 핵심은 무엇일까?

배우려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가르쳐야 하고, 포정해우의 포정처럼 학생의 재능을 파악하고 기를 수 있을 만큼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는 歌舞를 이용해서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가르침의 技 일지도 모른다.

스승이 되려는 자는 남들이 그의 덕을 보고 모범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먼저 자기를

바르게 해야 다른 사람을 敎化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가 12권에 이어지는 까닭이다.

'경계'의 핵심은 '~해라'가 아니라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이다. 잘못이란 나쁜것 뿐만 아니라 '지나침'이다.

좋은 것도 너무 지나쳐서 중용을 잃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13권의 이단의 변별은 유가들이 변별하고자 하는 불교에 관한 이야기 이다.

당시 유불이 뒤섞여서 서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가려서 변별하지 않으면

유불이 모두 道를 논하고 있어서 얼핏 비슷한 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이 책의 짧은 내용으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갖고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유가들은 스스로 어떤 명분으로 불교와 대척했는가? 유가들은 불교를 어떻게 보았는가?

사회적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지 못한 불교는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댓글 1
  • 2017-08-04 16:47

    세콰이어샘 보다 먼저 후기를 써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오전에 천자문 수업 끝나고 어수선하게 지낸 그 사이에 먼저 후기를 올리셨네요. ^^

    이번 시간에 공부한 "교육"은 주학에서 준비하는 워크숍과 관련해서 생각할 거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눈 여겨 본 것은 교육의 목표였는데 "치우치거나 과불급이 없는 삶"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요즘 교육의 목표도 '조화로은 사람' 뭐 이런데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은 

    "더 많이 벌어서 편안하게 살기" 뭐 이런 건 아닌가 싶습니다. 

    교육이 윤리를 벗어나면 어떤 사회가 되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문탁샘은 교사에게 중요한 지점은 솔선수범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편에 가르치는 주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고....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솔선수범이라는 결국 수기가 치인이 되는 것이고 

    12권의 '경계'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고 봅니다. 

    즉 각각 자기 삶에서 경계하는 것, 잘못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감화가 되면 그것이 치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당시에는 잘못할 것 같으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했는데 

    요즘은 어떻게 되는 일단 해 보는 것이 좋고, 모자란 것보다는 지나친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배운다고 하는 것, 안다고 하는 것이 결국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자득 밖에 없다고 한다면 

    가르치는 사람은 어떤 지점에 있어야 할 까요? 

    제게는 많~~이 고민스러운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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