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강좌 후기-4강
당근
2013-09-02 13:48
731
남들은 후기며 발제며 척척 해내는 것 같은데..., 참 힙겹다. 나는.
어찌 애들 방학 때, 차려줘야 할 세 끼 밥처럼 다가온다.
오늘 아침에도 '에고 오늘까진 후기 올려야 될 텐데...'하고 멍 때리다가...
문탁에 오는 분들은 아마 집 안일에도 참 유능한 듯 보인다.
몇 십인분 식사 준비도 척척 해내는 걸 보면.
무엇 하나 잘 해나가는 게 없다. 요즘 날 보면 집에서는 공부해야 된다며, 해야 할 일은 전부 건너뛰고.
밖에 나가선 집 안일 땜에 못하겠다 핑계대며 지낸다. 문탁에 발을 내딛고,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남다를 생명력이 넘쳐흐르는데..
난 공부에 대한 욕심이 증가함에 따라, 일상과의 괴리가 더 커진다.
바람 난 여자가 만기가 서 너번 남은 적금땜에 발목 잡혀 있는 것처럼, 맘과 몸이 따로 일 때도 많다.
탈코드화도 탈주도 힘들다. 내가 서 있는 지층에서,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일 땜에 늘 너무 분주하고, 숨 가쁘다.
그래서 '아직도 그런 일에 매어있는 종족이 있었나?' 하는 눈초리가 당황스럽기도하고, 그런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나의 멘탈은 언제나 저 경지에 갈 수 있나? 마치 단 하루만 남겨둔 구미호의 백일 기도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언어는 다른 무엇도 아닌 '명령어'라 그랬다. 우리의 행위를 촉발하고 강요하는.
언어가 한 번 주어지면, 그것으로 사유의 길이 형성되고, 감정의 길을 내고,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 강요할 것이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그것은 의사소통이 아니다. 단지 이 세계에 복종하고, 복종시키기 위한 것 일뿐.
하지만 언표 행위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언표행위의 주체가 미끄러져 들어온 언표의 주체로서 명령한다. 우리는.
내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것이 틀렸다'고 상대의 말에 응답할 때 조차도, 그게 과연 '나'일까?
어디선가 들은 것들, 복수의 '나들'이 있을 뿐이다. 머리가 더 아프다. 어쩌란 말인가?
들뢰즈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전 기표작용적 기호체제로 말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대칭성의 사유'를 말한다. 오늘 내가 죽여야만 하는 저 사냥감은 일상의 층위에서 내가 살기위해 잡아야만하는 나의 적일 뿐이지만,
신화적인 층위에서 살풀이가 필요하다. '지금은 내가 너를 잡아 먹지만, 내 다음엔 너에게 잡혀 주마.' 라고
절대적 탈영토화를 꿈꾸는 자들이 자겨야할 윤리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우리는 전 기표작용적 기호체제로 역행할 수 없지만, 그것을 우리의 윤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다.
그래야 매번 기관없는 신체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같다.
이미 죽어있는 약속에 생명을 부여하면서, 그 땅을 지키는 밀양의 할머니들처럼.
지금 우리를 가두고 있는 지층에 머무르면서도, 우리는 이 지층에 새로이 생명을 불어넣으며 매순간 탈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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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 2013.09.02 | 731 |
앗! 세미나에서는 못보던
당근님의 새로운 얼굴이 언뜻 보이는 듯합니다.^^
이런 발견 또한 고정된 배치의 그들과 나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의 위치를 바꾸며 자극하고 격려하는
새로운 관계의 우리들이 되어 가는 과정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