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강좌후기] 3강 두번째입니다.

벤호건
2013-12-02 14:01
814

응답하라! 벤호건을 연호하신 깨알님과 낭만고양이님에 대한 응답으로 3강에서 제기된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해서 올립니다. 저도 아직 이해가 덜 된 부분이어서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거창하게 철학적인 문제라고 말하긴 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의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붓다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둘째,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에서 내세우는 핵심 철학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나하나 살펴보죠.

 

먼저, 붓다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주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초기불교의 붓다는 고타마 싯타르타라는 주인공인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되어 여든 나이에 입멸하신 바로 그 분입니다. 이후 붓다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여러 가지로 나뉘어지게 되고(부파불교), 부처님의 말씀을 새롭게 정리하면서 신개념 부처인 보살이 등장하게 되었죠(대승불교).

 

이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부처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여든 나이로 입멸한 그 몸뚱이인가, 아니면 그 이후 등장한 구원자로서의 붓다, 즉 새로운 불격(佛格)인가? 주지하다시피 전자의 관점이 초기불교이며, 후자의 관점이 대승불교죠. 초기불교에서의 인격 주체였던 붓다가 불격으로 승격되었죠. 한마디로 인간이었던 붓다가 신에 가깝게 된 셈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건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고타마 붓다가 살아계셨을 때는 굳이 신격화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겁니다. 그냥 보여주면 되거든요. 하지만 그가 입멸하자, 이제 실제로 보여줄 존재가 없어졌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에게 소위 약빨(?)이 잘 먹히지 않게 됩니다. 해서 좀더 미화시킬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죠. 마치 김일성, 김정일이 죽자, 그들을 우상화한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격화 과정은 비판 받아야 마땅한 것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실재적 모델이 사라진 이후, 붓다를 신격화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이론과 논리적 백그라운드가 필요하지 않았겠습니까? 해서 대승불교에 와서는 철학적으로는 한 단계 발전하게 된 것이죠.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승불교에서의 부처는 초기 고타마 붓다의 신체에서 벗어나 초월적 실재로서의 법신불(法身佛)이 되었습니다. 실재보다 초월하기에, 이제 붓다의 능력은 세계를 구하는 만화영화의 주인공과 비슷해집니다. 미간백호에서 빛을 발사하여 온 세상을 밝히고 악을 무찌르는 로보트 태권브이와 같은 화엄경 붓다, 어려움이 처한 중생을 보면 짠~ 하고 나타나서 구제해주는 마징가제트같은 법화경 붓다, 극락왕생을 도와주는 아미타불과 무량수불 등 초능력을 가진 여러 종류의 붓다가 출현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 수가 독수리 오형제보다 많았던 것 같습니다. 중생들은 이제 안심이 되겠죠. 여기저기 도와주려는 신과 같은 존재가 넘쳐나니까요. 늙은 시봉인 아난을 이끌고 선정에 들었던 여든의 늙은 붓다와 비교해보면 천양지차입니다. 힘도 세지고 능력도 훨씬 대단해졌죠. 고통 받는 중생의 입장에서 보자면, 초기 붓다 보다는 신적인 능력을 가진 붓다가 더 든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우리는 붓다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인간의 몸으로 깨달음을 얻는 자일까요, 아니면 진리체로서의 붓다 일까요? 초기불교에서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고타마 붓다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붓다의 존재가 곧 믿음이었죠.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신적인 능력을 가진 법신불, 신격화된 붓다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존재로서의 믿음이 아니라 신으로서, 진리로서의 믿음을 갖게 된 것이죠. 다시 말해 존재론적 개념으로서의 붓다가 인식론적 개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신자을 넘어서 환자(?)’의 경지로 넘어갔다고 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종교성이 심화된 것이죠.

 

또한, 신격화된 붓다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 나도 수행하면 붓다가 될 수 있어’라는 일원론의 관점에서 신과 인간이 분리되는 이원론적 관점이 나타나게 됩니다. 초기불교에서는 범인들과 붓다는 내공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레벨에 있었습니다. 범인들도 수행하면 붓다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죠. 하지만, 신격화된 붓다는 인간과는 레벨 자체가 다릅니다. 인간이 아니라 신()에 가깝죠. 무신론에서 유신론이 됩니다. 이제 인간과 붓다는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죠. 인간은 지상에 있고 신이 된 붓다는 천상에 있죠. 인간은 불성(佛性)을 갖고, 붓다는 불법을 가지죠. 여기서 불법()이란 이데아나 하늘의 이치()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불성()을 닦아 하늘의 이치()에 도달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해탈에 이르는 길이 되죠. 이러한 이원적 구조가 나중에 주희에게 영향을 미쳐서 성리학의 기초가 됩니다. 요컨대 대승불교로 넘어오면서 붓다의 신격화, 이로 인한 불교의 유신론화가 이루어진 것이죠.

 

다음은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의 핵심 철학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죠.

아시다시피 초기불교는 연기론을 기반으로 한 무상, 무아설이 핵심입니다. 연기론은 ‘A(원인)가 있기 때문에 B(결과)가 있다는 공식을 말합니다. 이것은 실체론적 철학을 기반으로 합니다. B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A의 실체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죠. 물론 무아설에서는 실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철학적으로는 실체론적 그림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 때문에 많이 헷갈렸죠.

 

인간의 실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불교에서 인간은 색////식 등 오온으로 구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오온이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초기불교에서는 이 다섯 가지는 사실로 인정하지만 그것의 구성물인 인간은 실체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요소론적 실재론이라고 하더군요. 요소는 인정하지만, 실체는 아니다. 뭐 이런 논리죠. 아무튼 이것이 오온설이 무아설을 지지하는 논리입니다. 오온을 벗어나 별도로 존재하는 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근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초기불교나 부파불교에서는 비록 찰나지만 오온을 존재로 인정합니다. 많은 분들이 3강에서 유의법은 생주멸한다고 김법사님께서 말씀하실 때 고개를 갸우뚱하신 것으로 압니다만, 바로 이 대목입니다. 부파불교에서는 존재자를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나누었습니다. 유위법은 인연에 의해서 생멸하는 만유 일체의 법으로, //멸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령 ‘A때문에 B가 생겼다는 연기의 공식을 보면, B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 A가 태어날 것[] , B가 생겨나는 시점에 A가 있을 것[] , B가 생겨난 뒤에는 A가 없어질 것[].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에서 A가 찰나의 순간이나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실체를 인정하는 셈이죠.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실재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가르주나의 개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부분은 4강에서 배울 예정이니까 더 이상 기술하지 않겠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초기(부파)불교나 대승불교 모두 인간의 자아 없음은 인정합니다만, 요소인 오온의 존재에 대해서는 서로의 주장이 갈립니다. 부파불교는 오온의 존재를 실체로 인정하는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다섯 요소에 대해서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온개공이 바로 그 개념입니다. 오온이 공()함을 아는 것, 다시 말해 실체론을 격파하는 것으로 불교의 목표인 고통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상 3강에서 논의되었던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도 이해가 안돼서 김법사님의 책 <공이란 무엇인가>의 내용도 참조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책을 읽으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3강은 강의 듣는 시간보다 후기 작성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었네요. 덕분에 나름 공부는 많이 된 듯 합니다. 이게 다 공부해서 男주자를 몸소 실천하신 깨알님, 낭만고양이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PS) 후기에서 실체와 실재론이라는 말을 혼용해서 사용했습니다. 실재론은 '실체가 존재한다는 논리'이므로 둘다 같은 것으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댓글 4
  • 2013-12-02 22:29

    너무나 기다렸던 벤호건님의 후기~~ 감사합니다~~^^

    정말 이해가 쏙쏙되게 잘 정리해주시네요~

    저도 김법사님 책 보니 좀더 이해가 가는 부분이 생기더라구요~

    공부해서 男주자’ ㅋㅋㅋ 좋은데요~ㅋㅋㅋ

  • 2013-12-03 01:25

    강의실에 이어 이곳에서 계속되는 열공모드...참 좋습니다^^

    여러분들, 불교 세미나 꼭 하실거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2013-12-03 09:09

    응답해 주신 벤호건님 감사합니다.^^

     

    역시 저에겐 아직 어렵습니다.

    김영진샘의  책을 읽어도 2장 '공은 무엇이 아닌가'에서 멈춰버렸습니다.

    나가르주나샘의 공 개념 설명도 수학적 증명으로 느껴지며 쫓아가기 힘들었습니다.

    인도인들이 숫자 0을 발명하고 수학의 천재라더니, 불교 교리의 역사에서도 꽉 잡고 있구나!

    경험과 풍문과 읽기만을 인식의 지평 전부로 삼아온 나로서는 이성적 인식의 증명, 명제 이런 것에 제일 골치아프거든요.

    외면하고픈 불편한 진실 같은, 그러나 언제나 어느 지점에서 딱 맞닥뜨려지는... 

    언제나 습관적으로 되뇌는 방식, '이걸 꼭 내가 알고, 해야  하나?' 

     

    근데 아직 우리에겐 6강까지 김법사님도 계시고,

    이후 불교 세미나에서 동학들과  찬찬히 하면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공부해서 男주자' ㅋㅋㅋ 

  • 2013-12-03 11:09

    와우, 생주멸 부분이 좀 이해가 됐습니다. 감솨~

    벤호건님을   우리의 조교로 임명할 것을 건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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