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가족①] 뻥치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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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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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가족①] 뻥치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이희경,『루쉰과 가족, 가족을 둘러싼 분투』를 읽고

 

 

 

문탁 선생님의 신간이 나왔다. 제목은 『루쉰과 가족, 가족을 둘러싼 분투』. 이 책은 문탁 선생님이 <감이당>에서 한 강의를 책으로 엮은, 이른바 ‘렉처-북’이다. 책을 소개하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문탁 선생님과 오랜 시간 함께 공부해왔던 나로서는 한편으로 강의의 제목을 듣자마자 대략적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문탁 선생님과 '가족'이라는 주제가 연결되면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도출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핵가족과 같은 형태의 가족은 근대의 산물이며, 오늘날 가족주의는 위기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구성해야 한다!’ 난 구어체로 쓰인 책에 도움을 받아 이런 말을 하는 문탁 선생님의 목소리와 표정까지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표정은 모르겠지만, 내용은 내 상상과 얼추(!) 맞았다.

 

그러나 내가 예상치 못했던 지점, 재미있었던 점은 이 책이 루쉰이라는 인물을 통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자면 두 가지 측면에서 재미있었다.

 

첫째로, 문탁 선생님의 가족주의에 대한 생각은 여태껏 많이 들어왔지만, 문탁 선생님이 마르고 닳도록 좋다고 말씀하셨던 루쉰에 대해선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문탁 선생님은 이 강의를 통해 루쉰이라는 인물의 생애에서 ‘가족’이라는 주제가 엮일 수 있는 다양한 지점들을 짚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효孝’에 대해 가졌던 인상이라거나, 유교가 광기에 휩싸인 당대의 현실에서 그러한 효가 발현되는 방식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 그리고 그의 유명한 저작인 『광인일기』에서 그러한 인식이 반영됐을 거라 추측되는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와 같은 지점들.

 

또 루쉰의 개인사를 통해 살펴보는 전통적 가족과 근대적 사랑 사이의 갈등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자신이 비판하던 결혼에 그 자신 또한 속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적 조건들, 그럼에도 그러한 조건들 밖으로 튀어나오는 근대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 근대 핵가족이 서양의 산물이니 만큼, 동양의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져 갔는가에 대해서는 알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 이런 생생한 이야기들―특히 그 안에서 갈등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게 읽혔다.

 

둘째로, 오늘날의 ‘근대 가족’에 대해 말하는 강의에서 루쉰이 다소 억지스럽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루쉰은 19세기 말 인물이다. 전통가족의 붕괴와 근대 가족이 막 형성되던 시점의 인물이 근대 가족의 위기를 말하기 위한 현재에 적절할까? 문탁 선생님도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그는 “근대가족에 대해 질문 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점에서는 근대가족을 열망한 사람”이다. 그래서 ‘루쉰과 가족’이라는 강의를 의뢰받은 문탁 선생님은 멀리 돌아서 그가 직접적으로 문제 삼았던 동양의 전통가족, 혹은 전근대가족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이지 않은 이런 방식이 오히려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고, 우리가 생각해볼만한 새로운 지점들을 짚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루쉰이 전통적인 가족 형태의 개혁에 대해 말할 때의 태도―문탁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자면 판타지도 없고 냉정한 그의 태도―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주의는 이미 도처에서 삐거덕대고 있다”는 말에 때론 “정말 그런가?”라고 묻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근대적인 가족제도에 대해 충분히 많은 비판적 논의가 이루어져 왔음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정상가족을 열망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상이 필요한 이 시점에 “여기 길이 있다”, “저리로 가자”라고 뻥치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길을 내는, “전통가족을 거대한 족쇄라고 생각하면서도 근대가족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는” 그의 태도. 문탁 선생님이 “그의 독특함”이라고 표현한 것. 그처럼 우리 또한 근대가족을 족쇄라 생각하며 가족주의의 위기를 낭만적으로 미화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 속에 있다. 근대 가족의 위기는 달리 최소한의 공동체적 안전망의 붕괴, 분열과 극단적인 개인화로 치닫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 길이 있다”, “저리로 가자”라고 뻥치지 않으며, 가능한 다양한 가족의 형태들을 한 땀 한 땀 짚고 ‘엮임’의 문제로 마무리 되는 문탁 선생님의 강의(렉처-북)가 나에게도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다. 그리고 루쉰이 궁금해졌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형태로든 작은 관계들이라도 엮어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네트워크의 형태들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그 중 일부는 가족을 대체하게 되지 않겠어요?”

 

 

* * * 

 

p.s. 다양한 가족의 형태 이야기가 나와서, 마침 떠오른 음악을 띄운다. 퀴어 음악가 이반지하의 ‘Family LGBT’

       가사를 음미하시길.

 

 

댓글 2
  • 2020-09-16 08:10

    뻥치지 말고.......이 부분이 중요하군!!

    • 2020-09-16 10:59

      판타지 없이 냉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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