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를 보는 전략가이자 부분을 엮어낼줄 알았던 전술의 대가 ( 불 밝히기 아톰님 캠페인 동참)

동천동 해리슨
2010-08-23 11:37
2954





타이틀 - 1.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

              ( Red Cliff, 2008년 개봉 )

             2.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 


감독 - 오우삼

출연 - 양조위 (주유 역), 금성무 (제갈량 역), 장첸 (손권 역),

         린즈 링 (소교 역), 장풍의 (조조 역)  


1. 위, 촉, 오 3국이 대립하던 서기208년 중국.


 <삼국지>의 하이라이트는 적벽대전이다. 홍콩 누아르 대가로 꼽히는 오우삼감독은 유명세에 걸맞게 원작의 장중함을 적벽대전 두 편에 집중시켰다. 너무 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해 자칫 산만해질 나열구조를 오나라 명장 주유와 촉나라 전략가 제갈량의 투톱 구조로 몰고 갔다.

 

 오나라와 촉나라는 중원 통일을 꿈꾸는 위나라 승상 조조의 100만 대군을 막기 위해 손을 잡는다. 양국의 동맹을 이끄는 이는 주유와 제갈량. 혈혈단신 오나라로 들어간 제갈량은 세 치 혀로 주유와 손권을 맞상대하고 결국 설득해낸다.

 

 영화 <적벽대전 1,2>에서 주인공은 유비 관우 장비 3총사가 아니다. 깊은 눈빛이 우러나는 양조위가 주유 역할로 뛰어난 지략을 내뿜었고, 부드러운 꽃미남 금성무가 '백우선'을 손에 든 제갈량의 멋을 살려냈다. 오 촉 연합군은 양쯔강 '적벽'에서 조조 100만 수군과 운명의 대혈투를 준비한다.

 

 오우삼 감독은 제갈량과 주유 관계를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냉혹한 전장에서 속 깊은 우정으로 승화시킨다. 두 사람의 팽팽한 심리적 대결도 볼만하다. 동시에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고 서로 연합세력으로 손잡는 과정이 박진감 있게 전개된다. <적벽대전 1,2>는 삼국지라는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도록 이끌어주는 유람선 역할을 해준다.



2. 유일하게 통하는 ‘삼국지 코드’ 


세계지도 오른쪽 상단 韓-中-日이 속한 동북아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가장 민감하게 주목받는 전략적 공간이다. 동시에 가장 역동적인 곳이다. 세계 제조업의 메카인 중국이 15억 인구의 큰 덩치로 시장경제로 내달리고 있고, 일본의 기술과 자본은 지구촌 경제위기에도 흔들림 없이 여전하다. 엔화의 높은 가치를 앞세운 일본 쇼핑객들은 서울 도심 백화점과 면세점을 휘젓고 있다.  분단된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은 간난신고 끝에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압축적으로 치러내면서 50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IT 강국 ,무역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한중일은 2000년 가깝게 역사적 교류를 지속했다. 중국은 세계 패권을 행사하며 주변국을 거느린 역사의 중심 무대였다. 한국 일본은 변방이었다. 동시에 한중일 3국은 생각만큼 친하지 않다. 상호 친선보다는 침략과 종속의 문제가 앞섰다. 같은 황인종 아시아권, 젓가락을 쓰며 유교 영향권에 한자 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침략적 근현대사로 인해 정서적 거리는 여전하다.

 

 하지만 이들 세 나라 모두에게 통하는 코드가 하나 있다. 바로 三國志 (소설 삼국지연의) 다. 삼국지 스토리와 등장인물은 한중일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친숙하게 다가온다. 유교 사서삼경, 불교 경전을 두루 읽어본 사람들은 드물다. 반면 삼국지는 동북아 사람이면 한 번 씩은 읽어본 경험이 있다.

 

  어떤 문자텍스트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대중친화력을 갖고 있다. 수많은 사자성어와 인생 경구가 피어나는 동북아인의 필수 교양목록이다. 정치경제적 문제를 놓고 한중일 국민들이 토론을 하면 3국의 주의 주장이 충돌할 수 있지만 삼국지를 놓고 이야기 마당을 펼치면 금방 정서적 소통이 이뤄지면서 ‘삼국지 코드’를 공유할 수 있다. 

 

삼국지에는 참으로 멋진 남자들이 등장하고 스러진다. 독특한 성격과 기질로 인간군상의  면면들을 대변해준다. 주연 조연할 것 없이 삼국지에 출몰했던 영웅호걸들의 무용담은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독서의 재미를 준다. 어린이땐 만화로 보고 청소년 때는 요약본을 읽고 어른이 되면 완역판을 읽는다. 요즘엔 인터넷 게임으로도 삼국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중국과 대만서 제작한 영화물, TV시리즈는 부지기수다.  

 

 삼국지가 펼치는 거대한 스케일과 중원을 가로지르는 호연지기는 한자문화권 동양인들이 항상 가까이 하고픈 상상력의 샘이 된다. 위 촉 오 숱한 쾌걸 남아들이 지략과 모략을 짜내면서, 서로 일합을 겨루는 무협지적 장면들은 3세기 당시 세계 최고수준 중원문명을 과시하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삼국지 불세출의 영웅들 중에서 누구를 자신의 캐릭터로 삼고 싶은가? 아마 촉나라 창업주 유비와 공명선생이 가장 인기가 있을 것이다. 촉나라 주공 유비와 전략가 제갈량의 최후의 순간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혼연일체가 된 두 사람은 군신간의 주종 관계를 뛰어넘는 사나이 우정의 모델이 된다. (몇몇 삼국지 완역본과 중국 성인만화 ‘진유동 삼국지’를 참조했다.)

 

천하대의와 일장춘몽의 간극에서 한 시대를 휘날렸던 두 영웅이 눈을 감는 장엄한 시간을 떠올린다. 적벽대전 시리즈에 이어 오우삼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고 삼국지를 영상에 담는다면 아마 유비와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전략을 집중 조명할 것이다. 


 


3. 내 일생에 군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유비는 거친 숨을 몰아쉰다.

“난 이제 틀렸어. 이젠 그만 아우들 곁으로 가고 싶으이. 역적 토벌도 천하통일도 다 이루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나 내 뒤에는 그대들이 있으니 다행이네. 軍師, 그리고 자룡...부디 내 뜻을 이어 천하를 통일하여 大漢을 잇게.

공명은 고개를 조아리며 아뢴다.

“소신들 목숨을 다해 폐하의 유지를 받들 것이니 심려치 마옵소서.”

유비는 자룡에게 이른다.

“자룡, 나가서 대전회의를 소집해 내 유지를 전하게”

자룡이 물러나자

“공명, 긴히 할 말이... 헉헉... ”

“소신, 성심을 다해 성지를 받들겠습니다.”

“이제... 군신의 예는 그만두게. 내 일생에 군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 만큼의 위업도 없었을 것이네. 어렵고도 고단한 시기마다 자네가 있었기에 슬기롭게 헤쳐 나왔네. 못난 주인을 섬기느라 고생이 많았네 ”

“ 아닙니다. 폐하의 은혜 갚을 길이 없사옵니다.”

“이릉전투의 대패가 너무나 부끄럽구려. 천하를 위한 대업을 순간의 실수로 물거품으로 만들다니... ”

“아직 새털같은 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데 어찌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공명, 나는 이미 천수를 다했어. 또한 삶에 미련도 죽음의 두려움도 없다네. 남아로 태어나 혈육보다 더한 형제를 얻었고 천하를 위해 강호를 누볐으니 족하고도 넘치는 일이지 ”

 

유비는 큰 기침을 하면서 피를 토한다.

“ 군사, 군사는 뛰어난 지략에 기개와 충의까지 겸비하지 않았나. 군사야말로. 하늘이 내린 큰 그릇이니... 만약 내 아들 유선이 천하를 이을 그릇이 아니라면... 군사가 부디 나의 後事를 잇기를 바라오 ”

공명은 무릎을 꿇으며 아연실색한다.

“폐하! 그, 그것은...”

“새가 죽게 되면 우짖음이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선하다고 했듯이 내가 지금 부탁한 말은 내 진심을 다한 말이라오.”

“폐하, 부디 그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소신은 살이 녹고 뼈가 가루가 될 때까지 폐하의 유지를 받들 것이나 제위를 계승하란 말씀만은 따를 수 없사옵니다”

“이보게. 공명. 마지 못하는 척 받아들이면 될 것을 고집을 피우는구려. 그 또한 나와 닮았으니 군사나 나나 천성이란 쉽게 바꿀 수 없나 보이. 이제 이 세상에 한 줌의 원망도 회한도 없소. 이제 칼을 씻고 편히 쉬고 싶을 뿐...”

유비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홀로 임종을 지켜보는 공명의 무릎엔 굵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유비 나이 63세. 궁벽한 시골 가난하게 태어나 황실종친이란 혈연배경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던 한 풍운아가 스러졌다. 그가 태자 유선에게 내린 유언은 공명을 아버지로 섬기라는 것이었다. 때는 223년 4월 24일이다.

 



4. 미리 설계해놓은 듯 주도면밀한 공명의 죽음


소설을 읽다 보면 촉한을 이끄는 공명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하는 모습은 장엄하다. 혼탁한 시대, 난세에서 치세로 이끌기 위하여 공명은 자신이 섬길 주군을 기다리며 천문지리 병법을 두루 익힌다. 그는 유비를 삼고초려(三顧草廬)하도록 의도하여 항차 주군이 될 거목을 테스트한다. 유비의 인물됨을 확인한 다음 전 생애를 바쳐 유비의 책사로서 전력투구한다.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 오나라 손권과의 연합, 적벽에서의 조조 대군 대파, 위나라를 상대로 오랜 전투와 대치, 유비 관우 장비가 사라진 촉나라 기반다지기와 內治... 공명은 쉬지 않고 일했다. 나라의 모든 큰 일 작은 일이 그의 지혜를 기다렸다. 

 

 위 촉 오 세 나라 중 촉나라는 상대적으로 인재가 드물었다. 인재들이 협소한 단점을 와룡(臥龍)선생 홀로 감당하다가 결국 위나라를 치기위한 북벌 전투 중 오장원에서 숨을 거둔다. 세상을 뜨는 마지막 장면은 유장하고 비장하다. 마치 미리 설계해놓은 듯 그의 죽음은 주도면밀하기까지 하다.

 


‘선제께서 베풀어주신 큰 은혜를 생각하고 촉에 계신 어린 폐하의 장래를 생각하면 누워서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하늘이 정해준 수명이 있는데.... 내가 죽기 전 선제의 유지를 받들고 폐하의 걱정을 덜어 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마음이 앞서고 초조해진다. 나라 안과 나라 밖의 일을 다 챙겨야 하니 심신이 노곤하구나’ 

공명은 군 막사를 나가 별들이 쏟아질 듯 찬란한 밤하늘을 바라본다. 

“ 아름다운 밤이다. ”

공명은 자신의 별자리를 살폈다.

“강유를 불러라”

“강유, 오늘밤 천문을 본 결과 내 수명이 다했구나. 보아라. 三臺星座에 客星의 빛이 강하고 主星은 희미하니 주성을 보좌하는 별들도 빛을 잃고 있다. 이는 곧 내 수명이 다했다는 의미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스러지겠지. 슬퍼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아니지.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는가”

“강유, 이것들이 내가 이제껏 배우고 터득한 것을 기록한 것인데 어느새 24편이 되었다. 나의 병법, 나의 이론, 내가 발명한 기구들, 앞으로 만들려고 구상한 것들, 그 모두가 적혀있다. 이것을 물려줄 이는 강유 너밖에 없구나. 이걸 더욱 갈고 닦아 촉을 위해 충성을 다해다오.”

“아, 선제 폐하, 세 번이나 손수 찾아오셔서 신을 불러주신 은혜를 보답하고자 온 힘을 다해 오늘에 이르렀으나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나이다. 이제 촉의 무궁한 안녕을 빌며 지금 폐하이신 유선님을 지킬 방도를 전력을 다해 마련해놓고 페하 곁으로 가는 일만 남았나이다. ”

“진중을 돌아보고 싶다. 수레를 준비하라. 병사들에게 내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가을바람이 촉의 진영을 휩쓸고 지나가는 구나.”

 

공명은 의연하게 진중을 돌아본다. 

“아, 인생은 이렇게도 부질없는 것인가.... 저 하늘의 끝은 어디 쯤일까 ”

그의 심중을 헤아리는 부하장군들이 가만히 뒤따르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내가 죽더라도 그 사실을 알려서는 안된다. 魏나라 사마의가 알면 전력을 다해 쳐들어 올 것이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木像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이용해 적과 아군 모두에게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면 큰 성과를 얻을 것이다. 만일 사마의가 쳐들어오면 그 목상을 진 앞에 세워라. 그러면 사마의는 놀라서 달아 날것이다. ”

“보아라! 저기 휘황하게 빛나고 있는 별이 내 별이다. 스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빛을 내고 있구나. 이제 곧 떨어지겠구나 ”


제갈 승상의 별이 갑자기 사선으로 길게 떨어지며 사라진다. 수레 좌석에 바르게 앉은 공명의 고개가 이때 한쪽으로 툭 기울어진다. 공명의 주위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인다. 그의 타계를 확인한 부하들이 숨죽여 울기 시작한다. 때는 서기 232년 촉의 건흥 12년 8월 13일 공명의 나이 쉰네 살이었다. 

 

 한나라 재건을 꿈꾸며 싸워온 영웅들. 유비, 관우, 장비, 조운, 마초... 마침내 그 최후의 큰 별이 떨어진 것. 건너편 위의 진영. 공명의 별이 떨어지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사마의(司馬懿) 중달이었다. 

 

 공명에겐 최후의 라이벌. 공명에 비해 늘 한 치가 부족했던 중달의 지략. 사마의가 있었기에 위나라는 나중에 촉을 흡수한다. 공명이 사라진 중원의 판세는 사마의가 의도하는 대로 그려진다.  위나라 또한 사마 집안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흰 깃털 부채를 들고 천하통일의 대전략을 도모하다 전장의 가을 속으로 스러져간 공명 선생. 사심 없이 주군을 모시며 충절의 미학을 보여준 선비정신. 전체를 보는 전략가이자 부분을 엮어낼 줄 알았던 전술의 대가. 1700여년 전 오장원 들판에 불던 초가을 바람, 완벽한 삶으로 완벽한 죽음을 맞이한 와룡선생의 흰 도포자락이 아련하게 흔들린다. . 


har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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