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정치론 3 후기 - 스피노자는 남자다

진달래
2023-09-11 15:21
356

『정치론』 마지막 시간이다. 더불어 <스피노자 시즌> 마지막 세미나이기도 했다. 이제 스피노자 세미나는 마지막 에세이 쓰기로 마무리 된다.

『정치론』에서 볼 수 있는 국가 형태는 세 가지이다. 군주국가, 귀족국가, 민주국가. 이번 시간에는 8장, 9장, 10장에서는 귀족국가를 11장에서는 민주국가를 보았다. 그런데 11장 민주국가에 대한 내용은 4절까지 밖에 없어 미완성이다.

 

“그런데 여자들이 남자들의 권력 아래 있는 것이 자연에 의한 것인지 제도에 의한 것인지를 어쩌면 누군가가 물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오직 제도에 의해 이런 질서가 만들어졌다면 우리로 하여금 여자들을 정부에서 배제하도록 강제할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경험을 참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질서가 여자들의 연약함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중략 … 그 밖에 만약에 우리가 인간적인 정서를 고려한다면, 즉 남자들이 대부분 오직 욕망이라는 정서를 따라 여자들을 사랑한다는 것과 여자들의 재능과 지혜를 바로 여자들의 아름다운 면에서 뛰어난 만큼만 제대로 평가한다는 것, 그 밖에서 남자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그 어떤 방식으로든지 호의를 베푸는 것을 매우 고통스러워서 견디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비슷한 다른 것들을 고려한다면 평화를 크게 해치지 않고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다스리는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큰 수고 없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 11장 4절 p371

 

11장 4절의 내용은 무척 길다. 대략 여자가 정치를 한다는 것에 대해 경험적으로 그런 사례가 없음을 밝히면서 여자들을 배제하게 된 이유가 연약함에서 비롯한다고, 여자가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미완성 원고인데 민주국가의 내용을 이렇게 끝낸다고? 좀 당황스럽기도 하여 세미나 시간에도 이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오고 갔다. 논란이 되는 부분이라고 한다.

일단 『정치론』이 17세기에 쓰인 책이라는 점을 참고하면 - 아마 스피노자도 당시의 시대의 사고를 뛰어넘지 못했을 것이다. - 여성의 참정권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인정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여성차별주의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모든 사람의 본성을 똑같이 여기고 계층 간의 우열을 부정한 스피노자가 남녀의 우열을 긍정하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 해제 중 p28

 

하지만 해제에 나온 것처럼 스피노자의 주장에 비추어보아 이런 발언은 이상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그에 대하여 『윤리학』에서 ‘동물’에 대한 논의가 나왔을 때처럼 -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나냐 아니냐를 논의했던 것처럼 - 스피노자가 ‘역량’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4절의 내용에 ‘연약함’을 논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논리적으로 여성을 남성 아래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스피노자는 여자의 지위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했을까? 아마도 ‘질투’라는 정서의 역할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세미나 시간에 본 8장 9장 10장의 내용이 귀족국가에 대한 것인데 여기서도 ‘질투’가 등장한다.

 

“첫 번째 과제와 관련해 가장 큰 어려움이 질투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사람들은 본성상 서로 적이어서 아무리 법률이 그들을 묶고 구속할지라고 그 적대적 본성을 계속 보유한다.” 8장 12절 중 p257

 

(사실 8장의 내용은 귀족국가를 구성하는데 최고회의는 규모가 몇 명이 되어야 하고 감찰관은 얼마나 뽑아야 하며 원로회의는 어떻게 구성하고 재판관의 임기는 어떻고 등등 너무 내용이 길고, 숫자도 많이 나오고 하여 힘들었다.)

스피노자는 정치에 있어서 '질투'라는 정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듯하다. 질투는 화합을 해치기 때문에 정치체에 해롭다고 여겨 관리해야 하는 정념으로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11장 민주국가를 시작하면서 여자에 대해 논하는 것도 이러한 질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뭐 이런 맥락인 듯하다. 그럼에도 스피노자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인습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한계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뭐가 맞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실 고전을 읽을 때는 자주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공자님도 여성을 차별한다고. 자기 조건을 뛰어넘는 일은 어렵다.

 

“절대적인 국가”에 대한 논의도 인상적이었다. 8장 ‘하나의 도시가 중심이 되는 귀족국가의 기초’ 서문에 “군주국가보다 절대적 국가에 더 가까우며” 그리고 11장 ‘민주국가’의 1절에서 “민주국가라는 세 번째 유형의 완전히 절대적인 국가로 넘어간다.” 라는 말에서 보이는 ‘절대적인 국가’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세미나 시간에 이야기를 나눈 대로 이해하자면 ‘절대적’이라고 말한 것은 ‘정치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권력을 한 사람이나 소수가 갖지 않고 다수가 갖도록 하는 것이 국가가 망할 위험성을 낮춘다고 본다. 여기서 윤리학에서 말한 ‘인간 본성의 전형’이 떠올랐다. 스피노자가 인간의 본질 같은 것은 이야기하지 않지만 일종의 기준을 제공한다는 것을 보면 여기서 ‘절대적인 국가’도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피노자는 정치체를 세 가지로 나누어 쓰고 있는데 이 세 가지 정치체가 우리가 흔히 아는 군주국가, 귀족국가 민주국가는 아니다. 세 정치체는 모두 공화정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권력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군주가 있지만 군주를 견제하는 자문관이 어마어마하고, 혈통이 아닌 선출된 귀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귀족국가와 민주국가를 구별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오히려 궁금해지는데 이는 아마도 ‘법’인 듯하다. 귀족국가의 귀족은 최고회의에 의해서 선출되는 것이라면 민주국가에서는 법에 의해 권리와 의무가 주어진다.

 

『정치론』에서 보이는 세 가지 정치체는 어떤 것이 더 우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각 정치체가 잘 운영,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스피노자는 어떤 경우에도 한 사람, 혹은 소수에게 권력이 모이는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또 이들 정치체 역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변용되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정념’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윤리학』을 읽는 내내 ‘이런 이야기는 왜 하는 걸까?’ 뭐 이런 질문이 많았는데 상대적으로 『정치론』은 당시 네덜란드의 상황이 많이 반영되어 나온 글이라고 해서 그런지 ‘그래서 이런 글을 썼나보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어 좀 읽기 편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들이 단지 이론에 불과한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현실이 아닌 이론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나저나 에세이는 어떻게 써야할지 깜깜하다.

댓글 6
  • 2023-09-11 17:18

    이미 에세이를 쓰셨네요.....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 2023-09-11 17:57

    저는 세미나 때 질문과 공진성 교수님의 답변으로 댓글 대신할께요.

    <정치론> 제8장 14절(263p) 괄호안 내용 "마지막으로 여관 주인과 종업원처럼 그 어떤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지 않아야 한다."

    질문 3-1) 위 번역과 관련해 라틴어 원문에는 '여관 주인'이라는 단어가 전혀 없습니다. 또 주석 28에선 "스피노자는 어쩌면 그 시대의 (성적으로 문란한) 여관집 모습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며 수용하기 어려운 해석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번역과 주석 모두 문제인 듯 합니다.

    <공진성 교수님의 답변 내용>

    안녕하십니까?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아보았습니다. 제가 번역한 <정치론>을 좋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부분은 8장 14절 마지막 부분의 번역에 관한 것입니다. 왜 와인 만드는 사람과 맥주 만드는 사람을 "여관 주인과 종업원"이라고 옮겼느냐인데, 간단히 말씀드리면 단어 뜻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제가 이해한 대로 의역한 것입니다.
    포도주인지 맥주인지도 중요하지 않고, 양조장인지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이 글에서 술을 취급하는 곳, 즉 당시의 여관들의 업태에 대해 스피노자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7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당시의 여관은 매음굴이기도 했고 양조장이기도 했습니다.
    술도 팔고, 여자도 팔고, 잠 자리도 제공하고 그랬습니다. 그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스피노자는 정상적인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스피노자를 좋게 얘기하면 공화주의적 덕성을 추구하는, 나쁘게 얘기하면 '유행에 뒤진', '고풍스러운'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물론 유전적으로 가지게 된 폐병 때문이기도 했지만, 성적으로 금욕적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단사표음을 했습니다.
    그런 여러가지 정황을 미루어 "여관 주인과 종업원"이라고 옮기고 주석에 당시의 성적으로 문란한 여관집 모습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르겠다고 써놓은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해석입니다만, 그냥 단어 그대로 "와인 만드는 사람들과 맥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옮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것처럼 "여관 주인과 종업원"이라고 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혹시 다음에 수정할 기회가 생기면 고민해보겠습니다.
    문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공진성 

  • 2023-09-12 13:56

    회고적으로 생각해 보니, <정치론>은 '정치체의 에티카다'와 1종인식, 2종인식, 3종인식을 각 정치체에 대입해서 설명하려 한, 찬반을 불러 일으킨 주장이 생각나는군요.^^ 음.. 아무래도 난 아닌 것 같은디.. ㅋㅋ

    • 2023-09-12 15:07

      아이고 또 이렇게... 멍석을 깔아주시다니...
      일단, 세미나 때도 제가 3/1쯤 철회하면서 ‘정치체의 변용역량에 관한 저작‘이라고 말씀드렸는디요. 네, 일단 저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1-3종 인식에 각 정치체가 상응한다는 생각은 다시 생각해 보니 약간 무리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때 생겨나는 논점이 분명 있는 것도 같습니다.
      ‘민주정체’를 다루는 마지막 부분의 ‘완전히 절대적인 국가’ 말이나, ’군주정‘을 다루는 6장 4절의 ’모든 권력을 한 사람에게 양도 하는 것은 예속과 관련된다’는 말(물론 그게 허구라고 5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만), 8장 4절의 ‘귀족국가가 절대적이지 않다면’ 같은 문구를 보면, 군주정-귀족정-민주정 사이에는 ‘절대성‘을 척도로 하는 위상차가 단계적으로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 ‘절대성’을 ‘존속할 수 있는 능력-집합적 개체의 코나투스’로 본다면, 이 저작을 ’정치체의 역량‘에 관한 저작으로, 기본값인 ‘예속’으로부터 ‘자유’로 이행해 가는 ‘정치체의 윤리학’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다시 ‘윤리학’이 되고 말았군요). ㅎㅎㅎ 일단,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물론, 인간 개체와 정치체는 다른 개체이므로 ‘본성’ 역시 다를테고, 그러하다면 서술 역시 1:1로 대응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상응하는 구조는 분명 있는 듯 싶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조금 더 과감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치론>은 생각보다 더욱 ‘초반’만 쓴 작품일지도 모른다고요. 아니라면, 최소한 <정치론> 이후에 스피노자는 ‘집합적 개체’로서 ‘다중’의 존재론-윤리학에 상응하는 작품을 썼을 것 같기도 합니다. 원래 쓰고 싶었다는 <자연학>과 더불어서, ‘자연’에서 ‘다중’까지 일관된 논리로 전개되는 ‘체계’를 완성했을지도 모를 일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과감의 연속이군요 ㅎㅎㅎ)

      • 2023-09-13 01:49

        상상에 따라 정군샘 편을 들어봅니다. 각 정치체가 절대적이기 위한 조건들을 다루는 저작으로 정치론을 좀 들여다본다면…

        군주정: 일인 군주의 자의에 따라 정치체가 굴러간다면, 더군다나 그 일인 군주가 정서에 시달리는(1종) 사람일 확률이 높은게 사실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절대국가로 가는 길은 일인 군주의 자의성과 정서에 끄달림을 거세시키는 방법 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군주정을 정서에 끄달릴 확률이 현저히 높은 상황에서 절대국가로 가는 길로 해석하면 나름 1종과 붙여 볼 수도 있습니다.

        귀족정: 대체로 지금의 대의민주주의와 흡사해 보입니다만, 여기서 스피노자가 설명하는 제도들이 모두 정서에 끄달리는 상황에서 이성적인 활동이 살아날 여지를 항상 살려두는 정치체로 해석한다면 나름 2종에 붙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정: 쓰다 말았으니 상상을 해봅니다. 민주정은 정군샘이 지적하셨듯이 완전히 절대적인 국가겠지요? 절대적 국가(자유로운 국가겠지요)를 만들 수 밖에 없는 제도와 법들을 스피노자는 설명하면서 아마도 절대적으로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국가가 가능해짐을 보였을거라 상상을 좀 해보시지요. 3종 냄새가 나지 않으시는지요? 그 3종에 여성이 없어 유감입니다.

        에세이를 갈음하는…이상은 제 상상이었습니다.

  • 2023-09-13 10:32

    여성들과 인간적으로 교류한 데카르트와 대비되는 모습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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