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읽기 4주차 후기(2종지와 3종지)

여울아
2023-08-22 08:20
343

<에티카> 5부의 제목은 지성의 역량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입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지성이란? 자유란? 과연 나머지 다른 파트의 지성과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세미나 시간에는 이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1종, 2종, 3종 인식으로 분류할 때 1종인식 상상은 종종 지성으로 표기되니까요. 또한 자유는 4부에서 정념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인과 5부의 현자 사이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렘님이 세미나 초반에 스피노자가 4부까지만 썼어도 충분했다고 주장하셨을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4부에서 선명한 것처럼 보였던 개념들이 5부 세미나를 진행하는 도중에 제게는 불분명해져버렸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특히 5부는 혼자 읽을 때는 미쳐생각지 못한 부분이 많았더라구요. 

 

제게 유독 혼란스럽게 여겨졌던 개념들 중에서 2종과 3종 인식에 대해 정리해보려합니다. 

이 둘에 관해서는 지난 4부에서 요요님이 질문했던 것을 다시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4부 정리60으로부터 정신이 이성의 인도아래 영원성의 관점과 필연성의 관점에 따라 인식한다는 것을 규명하기 위해 2부 정리40 주석2와 정리44증명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정리40 마지막 부분에서는 상상과 이성, 직관을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가령 비례관계를 구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억견(상상)에 의해 상인은 자신의 수많은 경험으로 계산값을 정확히 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통해 공통성질을 발견하고 비례식을 세웁니다.  이런 경우는 이성 및 2종 인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직관을 이용하는 사람은 간단 명료하게 비례관계를 한눈에 파악합니다. 이런 예시는 쉬운데 비해 직관을 설명하는 주석의 내용은 좀 어렵습니다. 

 

(직관)이러한 종류의 인식은 신의 어떤 속성들의 형상적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으로부터 실재들의 본질에 대한 적합한 인식으로 나아간다.(2부 정리40 주석2)

 

현행적 본질과 대조적으로 형상적 본질은 실체의 본질로부터 연유하며, 이는 신의 속성들로부터 따라 나온 영원하고 무한한 양태들의 본질일 것입니다. 한마디로 형상적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 실재적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가령 위의 비례관계 예시대로 숫자 1, 2와 동일한 관계를 맺는 세번째와 네번째 숫자를 추론하는 방법은 3가지가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간단한 예시라 누구나 직관으로 비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저의 경우는 1, 2, 3 세 개의 숫자를 보고난 후 숫자 6을 직관으로 떠올리지 못하고 비례식을 세워서 풀었습니다. 1:2=3:x x=6 그렇다면 이것은 억견에 의한 상인의 계산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여기서 스피노자의 설명만으로는 상상과 이성을 구분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상인이 경험으로 아는 계산을 한 것과 혹자가 <유클리드기하학> 7권 정리19의 증명에 의해 A:B=C:D일 때 AD=BC라는 비례식으로 풀어낸 것이 과연 어떤 인식의 차이가 있을까요? 솔직히 제게 (몰랐지만) 유클리드 정리를 통해 비례식을 세웠다고 해서 상인과 다른 인식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상인이 비례관계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없이 계산으로 값을 도출해내는 것과 비례식으로 이들 (비례) 공통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스피노자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고대부터 뉴턴의 방정식이 등장하기 전까지 기하학의 비례관계(비례식)는 사물의 길이, 넓이, 폭 등을 추론할 수 있는 진리 그 자체이거나 적어도 진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따라서 직관으로 한.눈.에 비례관계를 파악한다는 것은 숫자 1과 2가 "2배"라는 비례관계라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숫자3 다음에 네번째는 숫자3의 2배 "6"을 추론하는 것입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형상적 본질과 실재적 본질을 좀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요요님은 정리44 증명에서 말하는 독특한 실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이어나갔습니다. 

 

이성의 토대는 모든 것에 공통적인 것을 설명하며, 어떠한 독특한 실재의 본질도 설명하지 않는 통념들이다. 이 때문에 이 통념들은 시간과 아무런 관계 없이, 어떤 영원의 관점에서 인식되어야 한다. (4부 정리44 증명)

 

스피노자에게 공통적인 것이란 부분과 전체에 균등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4부 정리37). 연장속성의 운동과 정지이거나 사유속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들은 무시간적이고 영원합니다. 그리고 이 속성들은 공통적인 것이기에 어떠한 독특한 실재의 본질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가령 저 위에 비례관계를 예를 들어보면, 형상적 본질이란 앞선 숫자들 간의 (2배의)비례관계를 말하며, 이에 대해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자마자(직관), "추론해낸 숫자6"을 실재적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4개의 숫자들은 둘씩 각각 2배라는 비례관계로서는 공통적이며, 네번째 숫자6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비례관계에 의해)필연적인 것으로 이성의 토대(본성)라고 스피노자는 말하고 있습니다.(44정리) 다시 말해서 이들의 비례관계는 영원하고 무한하지만 앞선 숫자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추론되는 값(독특한 실재의 본질)은 달라집니다. 가령 1, 2 와 동일한 관계를 갖는 세번째 숫자가 7이라면 네번째는 숫자14가 추론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2배라는 비례관계는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지만 추론된 숫자값은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세번째 자리 숫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네번째 자리는  숫자 6이거나 숫자14일수 있지만 이 숫자들은 우연적인 결과값이 아니라 비례관계에 의한 필연입니다. 그러나 숫자 6과 14 그 자체로는 어떠한 공통점도 없기에 우리는 이들 숫자들의 관계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연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고.. 이제 5부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비례관계로 2종지와 3종지를 설명할 때는 애매하지만 어떻게든 꿰어맞춰졌다면 5부에서는 모호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혼란에 빠지기 전에 정군샘의 노트를 옮겨봅니다. 

 

2종인식 - 이성 - 자유인(내적 원인->능동성) <->노예

3종인식 - 직관- 현자(유능성) <->무지자

 

대부분 회원들이 2종과 3종인식의 구분이나 3종인식에 대해 질문을 올려주셨는데요.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정군샘과 호수샘의 정리 방식이 결이 비슷했습니다. 정군샘은 2종과 3종인식은 인식의 순서가 정반대라고, 호수샘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2종은 독특한 실재들에 대한 인식이고 3종은 일반적 보편인식이 아니냐고. 이 두분의 비슷한 점은 이 둘의 차이점을 인식의 흐름(순서)으로 파악하고자 했다는 것인데, 그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정군샘은 2종 인식에서는 실재들(개체들)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라면, 3종인식에서는 이들 개체들의 관계를 신적 사랑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필요하다면 두 분이 각자 설명해주셔도 좋을 듯)

 

나는 여기서 이 사례를 통해 내가 직관적 인식 또는 제3종의 인식이라고 부른 독특한 실재들에 대한 인식의 힘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이것이 내가 2종 인식이라고 부른 보편적 인식보다 얼마나 더 선호할 만한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5부 정리36 주석)

 

 제3종 인식은 앞선 숫자들의 비례관계를 파악하자마자 숫자6을 떠올릴 수 있는 직관력입니다. 이것을 독특한 실재들(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인식의 힘이라고. 이런 인식의 토대는 신의 본성으로부터 따라나오며, 계속해서 신에 의존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사례란? 신의 지적사랑 혹은 신관념을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3종 인식은 독특한 실재들을 파악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정리36에서 신에 대한 지적사랑을 자칫 연장의 영원성(영원불멸)으로 착각해서는 안되고, 인간정신의 측면에서의 영원성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세븐님은 스피노자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영속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스피노자의 정신은 시대적 요청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기에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런지 의심스럽습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인간 정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처럼 말그대로 어느 시대에나 동일한 영원불멸한 속성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스피노자가 기하학의 비례관계를 가져와서 3종지까지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란 혹은 3종지란 불가능한 것일까요? 정군샘은 2종지에서 3종지로 옮겨가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둘의 인식 순서가 정반대이기에. 그런데 2종지와 3종지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 둘은 1종지와 달리 혼란하고 잘려나간 관념이 아니라, 적합한 관념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예에서 처럼 상인은 값을 계산할 줄 알지만 이들 숫자간의 비례관계를 파악하지 못하지만, 이성과 직관은 둘다 비례관계를 파악하게 됩니다. 증명된 비례식으로 푸느냐, 직관으로 푸느냐의 차이일 뿐. 비례관계뿐 아니라 신의 사랑도 노력해서 머리로는 알겠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도 몸과 마음이 신의 사랑 그 자체인 사람도 있겠지요.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그나마 명징한 것은 스피노자에게 고대부터 당대에까지 이어진 기하학의 비례관계는 무한하고 영원한 신의 사랑으로 표현할 만큼 그에게 절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비례관계의 무한성과 영원성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각각의 실재들을 필연성과 영원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지복(자유)에 이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길은 발견될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분명 그처럼 드물게 발견된 이 길은 어려운 길일 수밖에 없다. (5부 정리42 주석)

 

다음 주 부터는 <정치학논고>를 읽습니다. 진도는 2장까지 입니다.   

댓글 7
  • 2023-08-22 20:22

    와우......!!!
    후기를 쓴겨? 에세이를 쓴겨!

    • 2023-08-23 22:57

      갈음하시려는게 아닐까요?

  • 2023-08-23 20:56

    와우! 저는 지난 세미나 끝나고 어쩐지 진이 다 빠져서 한 시간쯤 의자에 기대서 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가 잘 없는데 말이죠. 아마 2종지 3종지 같은 걸 담기엔 제가 너무 간장종지...헉...죄송 ㅋㅋㅋ 여하간 답없는 문제를 푸는 건 언제나 어려운 법이죠. 어쨌든 저는 각 인식을 단계적으로 보거나, 양질전화로 보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목적론이 되거나, 스피노자의 ‘인식’을 너무 협소하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이거 싶은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 2023-08-23 21:44

    그래도 책이 하나 끝났는데 모두들 무언가 기념하거나 자축하거나 할 체력은 없었나봅니다. 저는 얼른 세미나 끝나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그랬습니다. 늦었지만 한 권 끝낸 여러샘들 고생하셨습니다.

    스압을 강요하는 여울아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직관은 잘 모르겠는 아리송한 뭐 그런 상태입니다.

  • 2023-08-23 22:12

    여울아샘의 2, 3종 인식 정리로 <윤리학>도 마무리됐네요. 정성 들여 쓴 꼼꼼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윤리학> 끝나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정치론>은 또 다른 난관이네요. ㅠㅠ

  • 2023-08-24 08:33

    저는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3종지를 알 것 같다가도 말로 표현하자면 그게 그게 돌연 오리무중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3종지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게 저는 계속 마음에 걸려요.
    이런 생각 자체가 3종지를 신비화하는 효과를 낳는 것 같거든요. 그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여전히 잘 모르겠군요.ㅎ
    여울아님도 정리하느라 고생했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3-08-24 11:50

    직관적으로 판단했는데 틀리면 1종, 맞으면 3종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저는 이것이 뭐랄까....... 한편으로는 곰곰 생각했는데 틀리면 1종, 맞으면 2종 아닌가...... 그런 면에서 다 1종이 아닌가....... 찍어서 맞췄다고 아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극단적으로는 뭐 그렇네요. 5부라도 다시 읽어야지 했는데 방학처럼 한 주를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울아샘 고뇌의 흔적이 역력한 후기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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